기관투자자 사회책임투자 가능할까

▲ 국민연금의 투자행위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주요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지침이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고객의 미래 투자가치를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하지만 국내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그다지 관심을 쏟고 있지 않다. 왜일까.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은 두고두고 책임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이 고객인 국민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오너 일가가 삼성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거수기 노릇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사건 이후 ‘사회책임투자(SRIㆍ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라는 용어가 주목을 받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회책임투자는 술이나 담배 같은 유해산업이나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투자대상의 사회적ㆍ환경적 성과를 감안하는 것까지 다양한 행동지침을 포함한다. 핵심은 자산운용자의 책무를 ‘투자자에게 충분한 수익을 보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투자 행위로 인한 환경적ㆍ사회적 영향에 책임을 지는 것으로 확장’하는 데 있다.

결국 사회책임투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자산을 운용할 때 환경(Environment)ㆍ사회(Social)ㆍ기업지배구조(Governance), 이를테면 ESG 요소를 감안하는 투자다.”

그럼 기업은 왜 ESG 요소를 감안해야 할까. 기업의 재무적 성과가 과거의 가치를 반영한 것이라면 ESG 성과는 미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다. 대형 환경 사고, 심각한 인권 침해,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을 이유로 하루아침에 주가가 폭락하거나 심지어 파산한 기업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 때문에 사회책임투자는 기업을 향해 이윤 추구 그 이상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도록 독려한다.

사회책임투자는 전세계 추세

세계적으로도 사회책임투자는 대세다. 2016년 기준 총 사회책임투자 자산 규모는 22조9000억 달러로 2014년보다 25.2% 더 늘었다. 총 투자 자산에서 사회책임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6.3%, 연기금 비중이 높은 유럽의 사회책임투자 비중은 52.6%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수치는 초라하기만 하다. 2015년 말 기준 우리나라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7조9000억원이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의 비중은 0.6%에 불과하다. 그나마 91%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고 민간의 공모펀드는 고작 9%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조사에 따르면 2016년말 사회책임투자는 연기금이 6조6000억원, 공모펀드가 3000억원, 총 6조9000억원으로 2015년보다 약 1조원이 줄었다. 2014년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ESG를 고려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음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19일 기업지배구조원, 금융투자협회 등으로 구성된 ‘스튜어드십코드제정위원회’가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수탁자 책무에 관한 원칙)’를 제정했다. 주인 대신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기관투자자들도 고객의 돈을 소중히 운용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기관투자자 행동지침이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는 7개의 원칙과 각 원칙의 이행을 위한 안내지침으로 구성돼 있다. 7개 원칙은 ▲수탁자 책임 활동에 대한 정책과 그 내용의 공개 ▲이해상충 해결을 위한 정책과 내용의 공개 ▲투자대상회사의 중장기적 가치 제고를 위한 주기적 점검 ▲수탁자 책임 이행을 위한 활동 전개 시기와 절차, 방법에 관한 내부 지침 마련 ▲충실한 의결권 행사를 위한 지침ㆍ절차ㆍ세부기준을 포함한 의결권 정책과 내용, 그리고 사유의 공개 ▲의결권 행사와 수탁자 책임 이행 활동의 주기적 보고 ▲수탁자 책임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이행을 위한 역량과 전문성 확보 등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은 침체된 국내 사회책임투자에도 활력을 넣을 가능성이 높다. 이 코드의 도입 목적이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통한 투자 수익의 극대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은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는데, 184개 모든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했다. 그 결과, 사회책임투자 규모가 2014년 70억 달러에서 2016년 4740억 달러로 증가했다.

한국에선 어떨까. 안타깝게도 긍정적인 분위기는 아직 아니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여부를 기관투자자의 자율에 맡겼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대로 작동하더라도 순기능(지속가능경영 강화, 공적 역할의 분담,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보호 등)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문재인 대통령이 스튜어드십 코드 활성화를 꾀하겠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손보지 않으면 무용지물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까. 먼저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연기금 운용을 규정하고 있는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기금의 운용 시 ESG 요소를 고려하는 정도와 이유를 공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투자 대상 기업이 ESG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 내놓은 자본시장법 개정안 역시 ESG 정보 공개 여부를 기업 자율에 맡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국민연금 등 운용자산 규모가 큰 기관투자자들이 하루빨리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지금 3개의 자산운용사가 참여했고, 앞으로 36개 자산운용사가 추가로 참여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규모가 큰 연기금이나 대형 보험사 등의 참여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넷째, ESG 정보를 분석ㆍ평가하는 리서치 기관을 활성화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정확한 정보와 날카로운 분석만이 ESG 성과에서 파생되는 기업의 미실현 가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시장에서 단기 투기성 자금의 농단을 막고 장기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주식의 장기 보유자에게 1주2표의 예외적 주주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사회책임투자와 ESG 정보공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경제 등을 촉진하기 위한 29개 정도의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부적으로는 차이들이 있지만 여러 국회의원들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법만으로는 부족하다. 성공 여부는 기관투자자들이 사회책임투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그들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지식협동조합=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karlcsy@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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