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매트릭스(Matrix) ❾

모피어스 일당은 기계와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당하고 인공지능의 노예신세로 전락한 인간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 분연히 떨쳐나선다. 투쟁의 성과도 미미하고 인간해방의 목표도 요원한 암울한 상황에서 지도자 모피어스는 ‘네오’라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대어大漁 영입에 성공한다. 모피어스는 네오의 잠재력만 제대로 폭발해준다면 기울어진 전세를 일거에 뒤집고 인간해방의 꿈이 실현될 수도 있다고 기대한다.

 
모피어스가 ‘차세대 메시아’로 심혈을 기울여 영입한 네오는 심드렁하기 짝이 없다. 기계의 노예로 전락한 인간을 해방시켜야겠다는 결의에 찬 눈빛이 결코 아니다. 권태롭고 피곤해보인다. 네오의 심각한 무기력증의 원인은 선지자 오라클과의 짧은 대화에서 정체가 드러난다. 오라클은 역시 선지자先知者답다. 네오를 일별一瞥하는 순간 즉석에서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네오가 오라클에게 묻는다. “당신이 나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나의 선택에 달린 문제인가?” 오라클이 대답한다. “네가 여기에 온 것은 선택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너는 이미 선택을 마쳤다. 너는 네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이해하려고 여기에 온 것이다.” 그리고 네오에게 “네가 너의 선택을 이해했다면 너의 선택에 믿음을 가져라”고 말한다.

네오는 자신의 운명을 누군가 알려주고 정해주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한다. 모피어스가 정해주는 삶을 살고 싶지도 않다.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고 싶어도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닌 운명적으로 예정돼 있거나 누군가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내키지 않는다. 네오가 오라클을 찾아온 이유는 자신이 메시아의 운명을 타고 났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 네오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오히려 반대로 자신이 메시아의 운명을 타고 났다면 그것을 거부하고 싶어서였다. 대책 없는 ‘반항정신’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단히 주체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문득 주체적인 불굴의 정신의 상징처럼 인용되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면서도 운명에 굴하지 않았던 윌리엄 헨리(William Earnest Henley)가 남긴 처절한 시 ‘인빅투스(Invictus)’의 마지막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오라클은 네오의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반항’을 시종 넉넉한 미소로 받아준다. 오라클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선지자 아닌 선사禪師처럼 네오에게 ‘이해’라는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이해라는 말만큼 상용常用되면서도 남용濫用되는 말도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이해라는 말은 내로라하는 수많은 지성들이 그 해석에 매달리지만 아마도 스피노자(Spinoza)가 가장 무릎을 칠만큼 명쾌한 정의를 내려주는 듯하다.

스피노자는 부당하고 불의不義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에 대해 ‘비웃지도 말라, 개탄하지도 말 것이며 분노하지도 말라. 이해하라(Non Ridere, Non Lugere, Neque Detestari, Sed Intelligere)’고 가르친다. 여기에서 라틴어 ‘intelligere’는 ‘지적知的’이 아니라 통상 ‘이해’로 번역된다. 스피노자는 ‘지성’의 궁극적 목표 역시 세상에 대한 ‘이해’임을 가르친다. 대상을 무시하면 비웃게 된다. 대상에 압도당해 버리면 주저앉아 개탄하고 한탄할 뿐이다. 대상에 분노하면 폭력적이 된다. 그렇듯 이해란 상대를 무시하지도 않고, 상대의 기세에 눌려버리지도 않고 상대를 미워하지도 말고 본질과 의미를 헤아리는 일이다.

▲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은 독선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사진=뉴시스]
오라클의 가르침은 결국 기계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매트릭스’의 세계를 조롱하거나 대책없이 한탄만 늘어놓거나 분노하지 않고 지적知的으로 이해한다면, 그리고 그래도 반드시 인류를 매트릭스에서 해방시켜야만 한다고 믿는다면 해방자가 되라는 것이다. 또한 네오 스스로 자신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조롱하거나 한탄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이해하라는 것이다. 그렇듯 상대와 자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는  누구를 해방시키겠다고 함부로 ‘나대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매트릭스 세계에 대한 이해가 결핍된 해방은 벌거벗은 폭력으로 변질되고 누군가에게는 억압과 점령과 또다른 불의가 될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매트릭스 세계로부터 해방을 원한다는 생각은 모피어스만의 독선獨善(dogma)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모피어스의 일당 중에서조차 사이퍼(Sypher)라는 인물은 매트릭스로부터의 해방보다 차라리 복속을 원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오슈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는 ‘모든 종교는 도그마(dogma)일 뿐’이라고 선언하지만, 도그마가 단지 종교뿐일까. 이념이나 민족, 인종, 성性도 모두 도그마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우리사회 곳곳에서 이념과 종교, 민족과 인종, 성性의 외피로 포장된 온갖 ‘해방의 도그마’들이 조롱과 한탄, 분노와 저주로 뒤범벅되어 횡행한다. 오라클과 스피노자의 가르침을 한번쯤 새겨볼 일이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