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개정 협상에 임하는 자세

▲ 미국의 한미 FTA 개정 협상 요구가 한번으로 끝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또다른 꼬투리를 잡아 개정 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한미 FTA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사진=뉴시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이 한미 FTA 개정을 논의할 특별공동위원회 소집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수조원대 투자와 셰일가스 수입 등을 약속했지만, 미국은 정상회담이 끝난 지 12일 만에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보한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FTA에 적대적 태도를 보여 왔다. 급기야 대통령 취임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철회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착수했다. 한미 FTA에도 “끔찍하다” “최악”이라는 등 감정 섞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한미정상회담에선 의제에 없던 FTA를 “재협상 중”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수정(amendments)을 위한 협상’을 제안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재협상(renegotiaion)’ 표현을 쓴다. 트럼프 대통령은 USTR이 개정 협상 요구를 한 이튿날 프랑스 방문길에 “한국과 재협상(renegotiating)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우리는 한국을 보호하고 있지만 무역에서 한해에 400억 달러(약 45조원)를 잃고 있다”고 강조하며.

사실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는 역대 최고였던 2015년에도 258억 달러였고, 이후 줄어드는 추세다. 올 들어 5월까진 68억6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억 달러 감소했다.

무역수지 통계를 잘못 알고 있든, 억지 주장이든 트럼프의 한미 FTA 인식은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을 보호하고 있다’는 표현에서 보듯 그는 미국이 한국을 안보 위협에서 보호해주는데 왜 교역에서까지 손해를 봐야 하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은 상품수지 적자 해소에 집중할 것이다. 특히 자동차와 철강 등 주력 제조업의 무역역조 시정을 들고 나올 게다. 2012년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의 대한對韓 상품수지 적자가 132억 달러에서 276억 달러로 급증했다면서. 법률시장 개방이나 스크린쿼터 폐지, 신문ㆍ방송사 지분 소유 허용 등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로선 객관적 데이터를 제시하며 냉철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지난 5년간 세계 교역 규모가 10% 감소한 가운데에서도 양국간 교역은 1.7% 증가했다.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가 두배로 늘었지만, 미국의 서비스수지 흑자도 109억 달러에서 141억 달러로 증가했다. 또 한국의 대미 투자가 60% 이상 늘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한국은 주한미군 방위비를 부담하는 동시에 미국산 무기를 수입하는 주요 국가다. 꿀릴 게 없다. 당당한 자세로 협상하라. 우리가 적자를 보는 지식재산권과 여행서비스 분야의 불균형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유리하게 설계된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개선도 요구하자. 한미 FTA가 양쪽 모두에게 이득임을 부각하는 협상 전략을 구사하자.

트럼프가 FTA 뒤집기를 시도하면서 ‘재협상’이란 자극적 용어를 쓰는 것은 다목적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지지층 결집을 꾀하는 한편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계산이 숨어 있다. 트럼프 정부로선 한반도 안보 문제와 관련된 압력과 한미 FTA 개정 협상 요구를 동시에 가하면서 한국의 양보를 얻어내려 들 수 있다.

미국의 이번 개정 협상 요구가 최종이라는 보장도 없다. 또다른 빌미로 개정 협상을 요구하거나 한미 FTA 자체를 종료하겠다는 엄포를 놓을 수도 있다. 우리로선 기존 한미 FTA를 지고지선으로 여기지 말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식 무역적자 줄이기가 목표여선 곤란하다.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과 미래 변화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국익’을 고려해야 마땅하다.

일자리 창출과 서비스산업 발전 및 산업 구조조정 등과 연계하는 협상 전략이 요구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커지는 데이터 경제와 모바일 경제 부문에서 양국이 협력하는 방안을 찾는 것도 긴요하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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