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특혜 의혹에 실적 악화까지…

사업권만 따내면 ‘대박’이라고 여겨졌던 면세점 시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 실적 악화에 이어 심사 특혜 의혹까지 불거졌다. 한편에서는 ‘공멸할 것’이라는 무서운 비관론도 꺼낸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예측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책없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만 바라보고 판을 벌였다가 큰코다쳤다.

▲ 면세점 시장은 유커의 급격한 감소로 위기에 봉착했다.[사진=뉴시스]

“면세점 사업은 한국 유통산업의 성장동력이 아니다. 그냥 가격이 저렴한 쇼핑 공간일 뿐이다. 이렇게 아귀다툼을 할 정도로 성장성이 담보된 시장이 아니다.” 2015년 4월,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시내면세점 입찰 의사를 밝히자 한 유통업계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그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시내면세점은 명실상부한 유통업계의 화두였기 때문이다. 백화점ㆍ대형마트 등 기존 유통채널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와중에도 시내면세점만은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별명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근거도 충분했다. 면세점 사업의 주요 고객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인데, 롯데면세점ㆍ신라면세점 등 이미 서울에 둥지를 튼 면세점에는 평일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유커가 찼다. 한국관광공사는 매년 유커 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더군다나 15년 만의 신규출점이었다. 수많은 유통기업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따로 기자회견을 열고 출점 이후의 청사진을 그리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관심이 쏠린 건 당연했다. 선정 예상 기업을 두고 연일 기사가 쏟아졌다. 심사 끝에 한화갤러리아와 현대아이파크-신라면세점의 합작법인인 HDC신라면세점이 신규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일제히 올랐다. 뒤이어 10월 특허가 만료되는 면세점을 유치하기 위한 심사에는 ‘시내 면세점 2차 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경쟁도 치열하긴 마찬가지였다. 선정된 업체들은 각자 면세점 사업을 ‘새로운 캐시카우 모델’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상황은 완전히 ‘딴판’이 됐다. ‘승자의 저주’란 말이 차라리 칭찬처럼 들릴 정도로 면세점 업계는 공멸 위기다. 시내면세점 선정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는 이른바 감사원발發 ‘면세점 게이트’가 터진 탓이다.

감사원에 이어 검찰도 조사에 들어갔다. 조작으로 최종 면세사업자가 뒤바뀐 1~2차 특허심사는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신규 특허수를 크게 늘린 지난해 3차 특허심사도 검찰수사 선상에 올랐다. 그 결과에 따라 새로 문을 연 면세점들의 특허가 무더기로 취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수사가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흐른다고 하더라도 마냥 웃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장 상황이 워낙 엉망이기 때문이다. 1~2위 사업자인 롯데면세점과 HDC신라면세점만 겨우 적자를 면하고 있을 뿐 나머지 업체들의 실적은 심각하다.

황금알 낳아준다더니…

두산면세점은 지난해 300억원대 적자를 냈고, 1분기에도 100억원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심야영업 중단에 이어 5월부터 2개층을 축소하는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효과는 없었다. SM면세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 1분기 80억원의 적자를 내면서 4월부터 매장 규모를 축소해 운영하고 있다. 여행 사업으로 번 돈을 면세점 적자로 메우고 있다.

한화갤러리아가 최근 제주공항 면세점 운영권을 반납하면서 면세사업 축소 움직임에 시동을 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한화갤러리아의 면세사업 부분 영업적자는 438억원에 달한다. 올해 1분기에도 영업적자는 127억원을 기록했다. 이들 기업이 면세점 시장에 필사적으로 뛰어든 게 오판이 됐다는 얘기다.

사실 이런 리스크는 예측할 수 있었다. 면세점 사업 성장성을 담보한 건 순전히 유커다. 이들의 꾸준한 방문을 장담한 게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경고음은 2015년부터 울렸다. 떼로 몰려오던 유커들이 개별 자유여행을 즐기는 싼커散客로 바뀌기 시작했다.

‘외풍’에도 영향을 받았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유커가 급감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가 확정된 이후엔 아예 발길을 끊다시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실한 관광 콘텐트 탓에 외국인 관광객의 재방문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중국ㆍ일본ㆍ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면세산업 규모를 키우자 ‘재앙’이 시작됐다.

그렇다고 면세사업이 수익을 내는 게 간단한 것도 아니다. 면세점은 기본적으로 사업자가 물건을 선매입해 판다. 팔지 못한 물건은 고스란히 재고로 남아 창고에 쌓인다. 세금이 면제된 상품으로 면세구역 이외의 장소에서 덤핑 처리도 불가능하다. 판매하는 물건 대부분이 고가의 명품이어서 재고 부담은 더하다.

여기에 ‘송객 수수료 지출’ ‘대형 명품 브랜드 유치’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더구나 면세사업은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잦은 정책 변경으로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관세청이 면세사업 특허권을 남발하면서 시장은 레드오션이 됐다. 

 


전병욱 경희대(관광호텔경영학) 교수는 “그럼에도 주요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면세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은 특허권만 있으면 별다른 노력 없이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라며 “이런 안이한 기대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고 꼬집었다.
김다린ㆍ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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