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상인들은 정말 무단점거했나

1986년 정부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서울의 노점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서슬퍼런 군사정부는 무력을 앞세워 반발을 잠재웠고, 자릿세를 내면 쫓아내지 않겠다면서 당근을 줬다. 아현동 포차거리는 그렇게 조성됐다. 그로부터 31년이 흐른 2017년, 아현동 노점 상인들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똑같은 취급을 당했다.

▲ 일부 아파트 입주민들은 아현동 노점을 유지하는 것에 찬성한다. 마포구청이 무조건 노점을 밀어버려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다.[사진=천막사진관]
“노점상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강제철거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 같이 살자! 상생하자!” 지하철 2호선 아현역에서 아현초등학교로 들어가는 길목, 그 한편을 차지한 노점들 옆으로 붙어 있는 현수막에 쓰인 문구들이다. 노점을 단속할 때 상인들이 으레 내놓는 구호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 사정은 조금 다르다. 그 사정을 이해하려면 옛일을 살펴봐야 한다. 1986년만 해도 이 지역은 낙후된 곳이었다. 쓰레기를 쌓아놓은 곳도 있어 깔끔하지도 않았다. 현재의 노점상 대부분은 당시 이곳으로 쫓겨 왔다.

전두환 정권 시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정부가 대대적인 환경미화(노점들을 서울 구석으로 몰아내는 작업)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노점상인 A씨의 말을 들어보자.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니까 옮겨가지 않으면 두들겨 맞는 건 예삿일이었다. 무서워서 도망치듯 온 거다. 와보니 길도 정비가 잘 안 돼 있었다. 쫓겨온 노점 상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땅을 고르게 폈다. 리어카가 없으면 노점도 안 된다고 해서 쓰레기장에 버린 리어카를 고쳐서 썼다. 정부는 그렇게 도로만 내어주고 때가 되면(분기마다) 자릿세를 받아갔다. 돈을 내면 더 이상 안 쫓겨나도 된다고 그랬으니까. 그게 벌써 30여년이다.”

과거 군사정부가 ‘환경미화’를 이유로 노점들을 구석으로 몰아냈고, 그 과정에서 말을 안 들으면 공권력을 행사했으며, 허허벌판 같은 곳을 대체 부지랍시고 내주면서 자릿세까지 받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게 31년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발단은 지난해 초 새로 입주한 인근의 대단지 아파트 입주민들이 마포구청에 넣은 “진출입로가 막히니 차선을 넓혀 달라”는 민원이었다. 아현초등학교에서 아현역 쪽으로 나오는 길목이 아파트의 유일한 진출입로이기 때문이다. 마포구청에서 노점을 철거하겠다고 하자 일부는 “나랏일을 어찌 막겠느냐”면서 자리를 비웠지만 10여명의 상인은 버텼다. 대신 마포구청에 다음과 같은 수정안을 제시했다.

“1차선을 더 낼 수 있게 안쪽으로 들어가겠다. 비좁아도 상관없으니 장사만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 그들은(아파트 입주민) 길이 막히는 문제지만 우리는 생계 문제다. 그러니 대화로 풀어보자.”

▲ 아현동 노점상인들은 마포구청에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마포구청은 요지부동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마포구청 “노점과 협의는 없다”
 
마포구청의 대답은 ‘그렇게는 안 된다’였다. 노점상인들은 또다른 제안을 냈다. “차선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은 물론 판자때기를 걷어내고 우리 돈으로 여길 박스형 점포처럼 예쁘게 꾸미겠다. 그럼 환경미화 문제도 해결되지 않겠는가. 이미 많은 노점이 나갔으니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하지만 마포구청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좋은 제안이지만 그것도 안 된다. 어차피 도로를 점용하는 건 불법이다. 이젠 비킬 때도 됐다. 정 장사를 하려거든 정해진 장소를 마련해 줄테니 푸드트럭을 하라.” 환갑을 훨씬 넘긴 할머니들에게 장사를 위해 운전면허를 따라는 얘기다. 그러면 선정과정에서 가점을 주겠다는 거다. 푸드트럭 제작비용은 노점상인들 부담이다.

노점 상인들은 절망했다. “군사정권 때나 지금이나 노점들은 청소대상일 뿐, 그토록 오래 머물렀어도 대화의 당사자가 아니었다”면서 한탄한 이들도 많았다. 약자의 볼멘소리가 아니다. 마포구청은 남은 노점상인 10여명을 몰아내기 위해 1억원에 이르는 행정대집행예산까지 짜놓은 상태다. 어쩌면 대화는 형식이었을지 모른다.

더구나 이 노점은 마포구청의 주장처럼 생판 공짜도, 완전히 불법도 아니었다. 상인들은 마포구청에 일종의 자릿세를 꾸준히 내왔다. 정확한 명칭은 ‘도로변상금(예전엔 도로부당이득금)’이다. 노점상인 A씨는 4㎡의 도로를 점용한 대가로 분기마다 28만2200원씩 지난해 총 112만8800원을 도로변상금으로 냈다.

20년 전인 1997년에는 연 95만2000원을 납부했다. A씨는 “1986년 이곳으로 쫓겨오면서 정부가 ‘돈을 내고 합법적으로 장사를 하라’고 했지만 믿을 수 없었다”면서 “그래서 고지서를 지금까지 모았다”고 말했다.

A씨가 이곳에서 노점을 해온 기간은 약 30년. 단순하게 계산해도 A씨는 적어도 3000만원을 도로변상금으로 납부한 셈이다. 저렴한 비용을 지불한 것도 아니다. 2016~2017년 2분기 거래된 토지가격을 보면 아현동 제2종일반주거지역 도로가격은 1㎡당 400만~500만원선(준주거지역 도로는 180만원선)이다. 4㎡면 2000만원이다. A씨로선 현재 시세로 도로를 사고도 남을 만큼의 돈을 납부했다는 얘기다. ‘나가란다고 무작정 나가기엔’ 노점 상인들이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박재정 IBS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그간 도로점용료도 지급한 노점상에게 일방적으로 나가라는 건 신뢰보호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면서 “도로를 넓힐 수 있도록 안쪽으로 물러나겠다는 대안이 있음에도 무조건적인 퇴거를 요구하는 것은 비례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선 “노점상인들이 보상금을 받기 위해 버티는 것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오해다. 도로점용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한 마포구청은 보상금을 줄 수 없다. 노점 상인들이 보상금을 운운한 적도 없다.

사실 아현동 주민 전체가 노점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1000여명의 입주민들은 노점 유지를 위한 서명에 참여하기도 했고, 노점에서 물건을 구매하기도 한다. 구청이 나서 공청회를 열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노점상인 B씨는 이렇게 말했다. “구청이 나가라고 하면 최소한 수년 전에 이야기를 해서 협의도 하고 해야지 무조건 불법이었던 걸 봐준 거라면서 나가라고 하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무덤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함부로 못 치우는 법인데, 노점은 무덤보다도 못하다는 건가. 민원을 넣은 아파트 주민들을 욕할 생각은 없다. 행정을 하는 이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야 할 것 아닌가. 인원이 적고 만만하다고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는가. 우리는 구민이 아닌가.”

대화 없이는 노점 문제 되풀이

최인기 민주노련 사무처장은 “노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지난 6월 19일 강북구청이 용역철거반을 동원해 노점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할머니 한분이 돌아가셨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마포구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방법이 개선되지 않아서다. 대화를 하고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무조건 나가라고 하고, 싫다고 하면 행정대집행을 한다면서 용역철거반을 동원해 밀어붙인다. 행정대집행 비용은 전액 노점상인들에게 청구한다. 용역철거반이 철거 과정에서 지켜야 할 사항이 있지만 이를 어겨도 처벌은 미약하다. 용역업체를 이용한 철거가 위험한 이유다. 결국 노점상인들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한 노점 문제는 갈등의 연속이 될 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