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젠트리피케이션과 다른 공식들

예술 덕이든 음식 덕이든 동네가 뜬다. 임대료가 치솟아 기존 상인이 버티질 못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일반적 절차다. 아현동은 다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했는데, 예술 탓도 음식 탓도 아니다. 공룡 같은 아파트 때문이다. 그래서 아현동을 관통한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는 상인이 아니라 주민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아현동의 이상한 젠트리피케이션을 취재했다.

▲ 아현동 상권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아현동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대단지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다. 무엇보다 4000가구에 육박하는 ‘마포래미안푸르지오(마래푸)’가 들어선 게 크다. 이 단지를 중심으로 새 지도가 그려졌다. 과거 노후주택이 즐비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현동은 뜨거운 서울 부동산 시장 중에서도 핫이슈다. 새 정부가 ‘신규 분양 아파트의 분양권 전매를 소유권 이전 등기 시점’으로 제한하던 지역을 서울 전역으로 확대했음에도 이 지역 아파트 시장은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다. 마포구 아현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대책과 관계없이 계속해서 가격이 오르고 있다”면서 “매매 수요도 여전히 많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5월 5억9800만원에 손바뀜이 이뤄졌던 마래푸 아파트 10층 59㎡(약 18평)이 올해 5월에는 7억원에 거래됐다. 땅값도 상승세다. 올해 서울 개별 공시지가가 5.3% 오르는 사이 마포구는 14.1% 올랐다. 서울 자치구 중 유일한 두자릿수 상승률이다. 더구나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전면철거 후 신축’에서 도시재생으로 개발 패러다임이 바뀌고 대규모 뉴타운ㆍ재개발사업이 줄줄이 좌초되면서 희소성까지 높아졌다.

 

입지도 더없이 좋다. 5호선 애오개역과 2호선 아현역ㆍ이대역을 도보로 갈 수 있는데다 주변에 상업ㆍ편의시설도 많다. 연세대ㆍ이화여대ㆍ서강대 등 서울시내 주요 대학과 인접해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서울역 고가공원화사업이 최근 준공을 마치면서 관광 인프라도 생겼다.

집값과 땅값의 상승은 상권에도 영향을 미친다. 집값이 올랐다는 건 해당 지역에 사는 수요자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그렇게 배후인구가 늘면 상권도 자연스럽게 발달한다.

그런데 아현동 인근의 상권은 집값이 오르는 동안 변화가 없었다. 역세권을 중심으로 봐도 그렇다. 아파트 외엔 5층 이하 소규모 빌딩이 대부분이어서다. 임대료도 인근 신촌 상권과 비교하면 훨씬 저렴하다.

아현동 상권은 괜찮을까

이럴 때 우리 사회가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서촌, 연남동, 망원동, 경리단길 등이 앞서 겪은 사회 현상이다. 진행 과정은 이렇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교통이 좋은 곳에 분위기 좋은 공연장, 갤러리, 카페, 식당 등이 입주해 장사를 한다 → 사람들이 몰려든다 → 이른바 핫플레이스가 되고 장사가 잘 된다 → 땅값ㆍ보증금ㆍ임대료ㆍ권리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 견디다 못한 임차인들이 변두리로 쫓겨난다 → 그 자리에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들어선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점은 땅값이 오르면서 생기는 이익이 전부 ‘건물주’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해당 지역에서 쫓겨난 세입자나 상인들은 당장 생존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거대 자본이 밀려들어 지역 특유의 문화적 다양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다. 아현동은 ‘임대료가 저렴하고 교통이 좋은 곳’이라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시작점에 딱 들어맞는다. 당장 부작용을 걱정해야 할 때다.

그럼에도 아현동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지 않는다. 이 지역 부동산 시장을 이끄는 게 ‘예술ㆍ문화 시설’이 아닌 ‘대단지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아현동 공인중개사의 말을 들어보자. “아현동은 인근의 연남동, 서교동과는 뿌리가 다르다. 대단지 아파트로 구성된 주거지역인 만큼 많은 방문객들의 소비와 여가를 위한 핫플레이스로 개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아현동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젠트리피케이션의 ‘원래 의미’를 떠올리면 그렇지도 않다. 이 단어는 단순하게 ‘기존 상인의 쫓겨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부유한 중산층이 자본과 함께 지역에 유입되면서 도심 인프라가 개선되는 동시에 기존 주민이 쫓겨나는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 낙후된 구도심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투자를 유발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강조한다. 상인이 아닌 주민에 타깃이 맞춰져 있다.

▲ 아현동 상권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하기는 어렵다.[사진=김다린 기자]

아현동은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건물이나 도시 인프라가 개선되고, 기존 주민보다 부유한 사람들이 유입되면 지역 경제가 살아날 수 있어서다. 소득 수준이 높은 주민들을 중심으로 상권도 고급화할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진짜 의미

문제는 여기서도 ‘내몰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현동 포장마차 거리에 철거 명령이 내려진 게 신호탄일지 모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정형화된 공식을 벗어난 아현동 상권은 부작용 억제 대책에도 비껴갈 공산이 크다. 이미 서울시가 2015년 말에 발표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 대책’은 문화ㆍ예술 공간을 지키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아현동 상권에는 이런 ‘문화와 예술’이 없다. 조금씩 치솟는 임대료를 자연스러운 도시개발 과정의 일부로만 인식할 수 있다는 거다. 정기황 문화도시연구소 소장은 “사람이 몰리는 곳에 어김없이 땅값과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건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갖고 있는 천성”이라면서 “자본은 여기에 따른 지역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안전지대는 없다. 아현동도 당연히 예외일 수 없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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