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교육만 해도 점수 받는데 뭘…

▲ 대기업의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는 개선됐지만 중소기업 동반성장 체감도조사는 되레 떨어졌다.[사진=뉴시스]

2016년도 ‘동반성장지수’가 발표됐다. 155개 대기업 중 최우수 등급을 받은 곳은 25개, 우수 등급을 받은 곳은 50개였다. 대기업의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 결과도 좋았다. 언론들은 ‘재계의 상생지수가 높아졌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특히 이 지수엔 중소기업의 설문조사 결과가 반영돼 있어 신뢰성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면서 삐쭉댄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거다.

‘상생’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화두 중 하나다. 기업-노동자, 대기업-중소기업 등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불평등을 조장하는 걸림돌을 제거하고, 상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건 문재인 정부의 목표이자 경제민주화로 가는 첫걸음이다. 요즘 들어 ‘동반성장지수’에 더 많은 이목이 쏠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동반성장지수는 민간자율합의체인 동반성장위원회가 2011년부터 매해 발표하는 일종의 ‘상생 척도’다. 평가 지표는 크게 두가지로, 대기업을 대상으로 평가하는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기업의 상태를 묻는 ‘중소기업 동반성장 체감도조사(동반성장위)’다. 두 지표의 결과를 합쳐서  평가대상 기업을 최우수ㆍ우수ㆍ양호ㆍ보통ㆍ미흡(2016년 추가) 등 5개 등급으로 나눈다.

그렇다면 지난해 결과는 어땠을까. 평가대상 155개 대기업 중 최우수 25개사, 우수 50개사, 양호 58개사, 보통 12개사, 미흡 10개사로 나타났다. 2015년 결과와 비교해보면 분명히 개선됐다. 2015년엔 최우수 25개사, 우수 41개사, 양호 21개사, 보통 21개사(미흡 등급 구분 전)였다.

문제는 이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데, 어떻게 동반성장지수는 개선됐느냐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동반성장지수와 달리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체감도 조사결과는 되레 뒷걸음질쳤다.
 
동반위가 중소기업 1만226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6년도 ‘중소기업 동반성장 체감도조사’의 평점은 80.3점이었다. 지난해 평점인 82.3점보다 2점이 낮다. 심지어 ‘거래관계’ ‘협력관계’ ‘운영체계’ ‘가ㆍ감점’ 등 모든 평가항목에서 지난해보다 점수가 떨어졌다. 동반성장지수는 ‘대기업이 상생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고 주장하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펴고 있는 셈이다.

두 결과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앞서 언급했듯 동반성장지수는 대기업 평가지수(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와 중소기업 체감도조사 점수를 합친 것이다.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평가항목을 합쳐놓으니 ‘오류’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中企 동반성장 체감도 하락

실제로 2016년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는 중소기업 체감도조사와 달리 지난해보다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를 담당한 공정위는 “기술지원과 1ㆍ2차 협력사 간 협약체결은 미흡했지만 표준계약서 사용, 현금ㆍ현금성 결제비율ㆍ금융지원 등은 지난해보다 증가했다”면서 “전반적으로 대ㆍ중소기업간 상생협력 문화가 확산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방법적인 문제도 있다. 중소기업 동반성장 체감도조사를 정성평가로 진행하는 것과 달리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의 방식은 정량평가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정량평가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것들을 반영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면서 “가령 대기업들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동반성장 관련 교육 등은 실질적인 개선효과를 가늠할 순 없지만 점수에는 반영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원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중소기업 체감도조사는 현실보다 긍정적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아무래도 갑인 대기업을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동반성장지수의 개선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중소기업 관련 단체의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실제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 지난 4월 동반성장지수에 관한 대기업의 인식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대기업들은 스스로 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평했지만 중소기업은 크게 공감하지 못한 적이 있다”면서 “중소기업들의 평가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는데 대기업의 자체적인 평가만으로 동반성장 수준을 판단하는데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정량평가와 정성평가의 간극

동반성장지수가 도입된 이후로 대기업들이 상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든 상생을 위해서든 공정거래협약 실적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실적들이 상생을 위한 생태계 조성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있을 지는 의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온도차는 여전히 크다. 갑은 갑이고 을은 을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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