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성공조건

▲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위가 만든 100대 과제를 보고 “귀신 같은 사람들”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잘 반영했다는 거다. 하지만 100대 과제의 성패는 국민 및 야당과의 소통에 달려 있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19일 국정운영 청사진을 내놨다. 임기 5년 동안의 로드맵을 담은 이른바 ‘100대 과제’다. 이를 실행하는데 178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공약 가계부’도 덧붙였다. 새 정부가 100대 과제를 제대로 실천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막대한 재원 조달 방안이다. 둘째, 과제를 실행하는데 필요한 법 제정이나 개정 과정에서 야당의 협조, 즉 정부ㆍ여당과 야당의 ‘협치協治’다.

모든 일에 필요한 돈 문제부터 들여다보자. 정부가 특정 정책을 펴면서 돈을 더 쓰려면 크게 두가지 방법 중 하나를 동원하거나 병행해야 한다. 세금을 더 걷거나 다른 분야의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100대 과제를 마련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후자를 택했다. 세입 확충(82조6000억원)과 세출 절감(95조4000억원)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했다. 증세 계획은 없다고 했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세입 확충의 대부분은 세수 자연증가분(60조5000억원)인데 5년 내내 세금이 잘 걷힌다는 보장이 없다. 잠재성장률이 2%대로 낮아진데다 내수 부진이 지속돼 3%대 경제성장이 어려운 상황 아닌가. 세출 절감 또한 주던 돈을 멈추면 수혜자가 반발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증세 없는 복지’를 강조한 박근혜 정부의 판박이다. 박근혜 정부도 2013년 공약 가계부를 발표하며 5년간 재원 소요액 134조8000억원을 세입 확충(50조7000억원)과 세출 절감(84조1000억원)으로 조달하겠다고 했다. 지하경제 양성화 및 비과세ㆍ감면 정비, 예산 구조조정을 방안으로 제시했으나 한계에 봉착해 국가채무가 급증하자 담뱃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했다.

박근혜 정부 때보다 많은 178조원짜리 국정과제 수행이 증세 없이 가능하냐는 비판이 제기되자 여당과 정부 일각에서 방향을 틀었다. 100대 과제를 주도한 청와대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증세를 거론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자 여당과 일부 장관들이 ‘부자 증세’ 깃발을 들고 나온 모양새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표 때문에 증세 문제 얘기 안하고 복지는 확대해야 하는 이 상태로 언제까지 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법인세 및 소득세 과세구간 신설을 제안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화답했다. 연소득 2000억원 초과 초대기업에 법인세율 25%를 적용하고, 현행 40%인 5억원 초과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도 42%로 높이자는 것이다.

돈 들어갈 일이 많은데 선거를 의식해 증세를 외면하다 재정적자를 부풀리면 국민 기만이다. 어디에 어떻게 쓸지 소상하게 밝힌 뒤 합리적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증세를 거론하는 마당에 종교인 과세는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해야 마땅하다.

초우량기업과 고소득자를 겨냥해 세금을 더 걷자는 여당 제안이 성사돼도 세수증대 효과는 연간 3조원 정도다. 다른 증세 방안도 함께 토론에 부쳐야 할 것이다. 미세먼지 절감 대책으로 거론됐다가 잠복한 경유세 인상이나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분리과세 축소 등 세금 인상은 한결같이 민감한 문제다. 국민에 부담을 지우는 정책 변경은 국정수행 지지도가 높은 정권 초기에 정면 돌파해야 가능하다. 국민 대다수가 믿고 따를 정직하고 정교한 세제개편 방안을 만들어 증세를 공론화하라.

정부조직법이 새 정부 출범 72일 만에 국회를 통과한 데서 보듯 협치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정을 수행하는 문재인 정부의 숙명이다. 이를 아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선 “100대 과제 중 91개는 국회 입법이 필요하다”며 독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제2야당인 국민의당도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중단 같은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으로 목표 달성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협치를 압박했다. 탈脫원전ㆍ비정규직 제로(0)화 선언처럼 ‘내가 옳으니 따르라’는 식의 소통은 곤란하다. 사안에 따라 대비책을 내놓으며 반대세력을 설득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결국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의 성패는 국민 및 야당과의 소통에 달려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국정기획위가 만든 100대 과제를 보고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잘 반영했다며 “귀신같은 사람들”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대통령이나 국정기획위가 간과한 과제가 증세와 협치다. 100대 과제에 우선해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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