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플운동 10년’ 민병철 선플재단 이사장

 수학여행을 가던 버스가 전복됐다. 버스에 탔던 한 학생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은 생존가능성이 1%라고 했다. 친구들은 학생이 깨어나길 바라며 응원의 선플을 달았다. 삽시간에 전교생이 그의 쾌유를 빌었다. 친구들은 병실에 누워있는 학생에게 그 마음 하나하나를 읽어주었다. 그러자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던 학생이 기적처럼 자가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선플이 불러온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 민병철 이사장은 선플운동을 통해 세상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파되길 희망한다. 해바라기(sunflower)는 선플운동본부의 로고다.[사진=천막사진관]

“2007년 초 유명 연예인이 악플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당시 모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그 소식을 접하고 570명의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죠. 악플로 힘들어하는 연예인 10명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찾아보고, 인신공격성 악플을 다는 사람에게 ‘그 악플이 왜 잘못됐는지’ 설명하라고 했어요. 악플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선플을 달아보라고 했죠. 악플에 시달리던 연예인의 홈페이지와 블로그엔 순식간에 5700개의 아름다운 선플이 달렸습니다.”

과제이긴 했지만 선플달기에 참여한 학생들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악플의 폐해를 알게 됐고, 동시에 선플의 중요성도 깨닫게 됐다는 거다. 이렇게 출발한 (재)선플재단 선플운동본부의 취지는 악플을 추방하고, 응원과 소통, 화합과 치유의 인터넷문화를 확산하자는 것이다. 현재 7000여개 학교와 단체에서 63만명의 회원들이 선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사람들은 왜 악플을 달까. 민병철 이사장은 한 설문조사 결과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악플을 다는 이유를 물어본 설문조사를 보면, 초등학생들의 45.7%는 ‘장난’이라고 답했어요. 일반인의 41.7%는 ‘상대방에게 화가 나서’라고 했고요. ‘장난 삼아서’ 악플을 달았다는 이들도 37.5%나 돼요. 이 결과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심각한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는 거예요. 익명성 뒤에 숨어서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사람들을 비난하고 깔보면서 우월감을 느껴보려는 거죠.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악플러들은 공통적으로 자존감이 낮다는 특징을 갖고 있대요.”

선플운동본부가 법무부에서 실시한 ‘조건부 기소유예 선플교육’에서도 비슷한 점을 엿볼 수 있다고 민 이사장은 말했다. “상대방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 악플러에게 자신이 쓴 악플을 읽어보라고 했어요. 결과가 어땠을 거 같아요? 눈물을 흘리면서 크게 후회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악플러들에게 제도적인 장치도 중요하지만 사이버 인성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민병철 이사장은 선플운동을 통해 세상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파되길 희망한다. 해바라기(sunflower)는 선플운동본부의 로고다.[사진=천막사진관]

선플운동본부는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와 ‘악플 피해자 법률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악플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악플로 고통 받는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100여명의 변호사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인터넷 악플 피해자들에게 상담과 법률지원을 할 국내 최초의 ‘SNS 인권위원회’를 발족할 예정입니다.”

선플운동은 어릴 때부터

선플운동은 대부분 학교와 학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선플운동을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10대 청소년들이 악플을 가장 많이 달고, 피해도 가장 많이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령이 낮을수록 교육 효과가 크다는 이유도 있었다. “울산교육청의 경우, 교육청 차원에서 선플운동을 전교에 도입했어요. 그 결과, 학교폭력이 64% 감소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는 94%, 중학교는 74%, 고등학교는 33% 감소했다는 교육부 발표도 있었어요.”

국회에서도 선플운동을 전개 중이다. 2007년 국회선플정치선언식을 개최한 후 19대 국회의원부터 본격적으로 ‘아름다운 말과 글, 태도와 행동으로 화합과 통합의 정치에 앞장서겠다’는 선플정치선언문에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민 이사장은 “막말과 고성이 오가는 국회에서 선플이 가장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국민들이 바라는 건 막말보다는 품위 있는 언어로 정책 경쟁을 하는 모습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19대 국회에선 294명(98%), 20대 국회에선 296명(99%ㆍ19대 서명 국회의원 포함)이 선플운동에 동참할 것을 서명했다. 매년 300여명의 청소년선플SNS기자단이 국회회의록시스템을 분석해 선플을 실천하는 국회의원을 선정해 직접 상패를 수여하는 ‘국회의원 선플상 시상식’도 올해로 5회째를 맞았다.

2007년 시작한 선플운동은 올해로 벌써 10년째다. 10년이란 기간, 민 이사장에게 남은 가장 또렷한 기억은 무엇일까. “5년 전 대전 우송중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중에 버스 전복 사고가 났어요. 그중 임재윤 학생이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힘내라, 재윤아’ ‘학교가자’ ‘너는 꼭 일어날 수 있을 거야’라는 선플을 달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전교생 모두 선플을 달게 됐죠.”

 

친구들은 게시판에 올라온 선플을 접착메모지에 옮겨 적고, 병문안을 가 임군에게 읽어주기도 했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의사들이 ‘생존가능성 1%’라고 판단했던 임군이 자가호흡을 시작했다. 지금은 인공호홉기를 떼고, 친구들이 찾아가면 반갑다면서 눈도 깜빡인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땐 미소를 지을 정도로 병세가 호전됐다.

선플이 불러온 놀라운 변화

“더 놀라운 건 이 학교에서 악플과 학교폭력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겁니다. 병실에 누워 있는 재윤 학생에게 선플달기를 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변하기 시작한 거죠.” 선플운동을 해오고 있는 10년 동안 민 이사장이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자 선플운동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플운동본부의 노력에도 누군가는 지금도 익명성 뒤에 숨어 악플을 달고 있을 거다. 그건 민 이사장도 잘 알고 있다. “악플을 달고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악플러들에게 ‘악플로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더 크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선플을 달면 세 사람이 행복해집니다. 선플을 받는 사람, 선플을 보는 사람, 선플을 쓰는 사람. 그중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굴까요? 선플을 쓰는 사람입니다. 선플로 인터넷상에 건전한 토론문화가 형성되고 긍정적 에너지가 확산되면 250조원에 이르는 사회갈등비용도 확 줄일 수 있습니다. 그 비용을 청년일자리 창출하는데 사용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더 밝아지지 않을까요?”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