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집단행동의 이유

“탈핵 공론화 과정에서 공사를 중단해 달라는 정부 요청을 받아들였을 뿐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지난 14일 “신고리 5ㆍ6호기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던 한수원이 단 3일 만에 입장을 바꿨다. 톤을 낮춘 정도가 아니라 주장의 결이 달라졌다. ‘원전을 없애면 안 된다’는 한수원 노조의 격한 반발이 어느 정도 먹힌 결과다. 문제는 그들에게 국가에너지정책의 판을 뒤흔들만한 자격이 있느냐다.

▲ 한수원 직원들은 이해관계가 얽힌 원전 건설 공사 중단에는 적극적이지만, 원전리비의 책임을 지는 데는 소홀했다.[사진=뉴시스]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결과가 우려한 것(영구 중단)처럼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건설을 영구 중단하면 1조6000억원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계속 짓는 게 바람직하다. 14일 신고리 5ㆍ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한 건 공기업 특성상 국무회의 결정 사안을 반대하기 곤란해 공론화 과정 동안 공사를 중단해 달라는 정부 요청을 받아들인 거다. 영구적인 공사 중단을 막기 위해 적극 방어할 것이다.”

지난 17일 이관섭 한수원 사장이 3일 전 열린 이사회에서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 밝힌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 기조에 맞춰 공사 중단을 결정했던 한수원 경영진이 입장을 살짝 바꾼 것이다. 탈핵 갑론을박은 길어지고, 친환경 에너지 정책으로의 전환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공론화를 통한 대화와 설득, 타협의 과정은 민주주의의 기본 절차다. 탈핵 정책이 현 정부의 공약사항이더라도 원칙이 변해선 안 된다. 탈핵은 ‘국민의 안전한 삶’이나 ‘에너지 안보’ 문제와 직결돼 있어서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사안을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얽힌 당사자들이 좌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 바로 한수원 노동조합이 있다. 실제로 한수원 사장이 3일 만에 입장을 바꾸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배경엔 이들 노조의 입김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그렇다면 그들은 국가에너지 정책의 판을 흔들만한 자격이 있을까.

한수원 노조 집단행동 명분 있나


한수원 노조는 한수원 측이 14일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공사 중단’에 관한 이사회를 개최하려 하자 “건설 중단 반대”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이사회 개최를 막았다. 노조에 막힌 한수원은 경북 경주 스위트호텔에서 이사회를 개최,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했다. 그러자 김병기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한수원 이사회의 날치기 통과는 원천무효”라면서 19일 대구지법 경주지원에 한수원 이사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냈다.

 

노조의 논리는 이랬다. “환경문제에 대처하고,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원자력발전만큼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물론 국민에게 좀 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보급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로의 정책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막대한 전력을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는 없다. 대체에너지 확보를 위한 막대한 비용 역시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진다.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LNG발전을 병행하면서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신재생에너지로 원전을 100% 대체하겠다는 게 아니다. 탈핵으로 전기요금이 상승할 거라는 주장도 아직은 논란의 대상이다. 한수원 노조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얘기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노조는 “신재생에너지로의 정책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고 해명하지만 “원자력 발전이 가장 완벽하다”고 주장한다. 원전 옹호론자들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수원 노조가 원전을 결코 포기할 생각도 딱히 없어 보인다. 한편에서 ‘원전이 없으면 한수원의 존재가치가 사라지니까 집단행동을 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하는 이유다. ‘밥그릇 지키기’용 항변이라는 일침이다.

이 일침은 감정적일까. 문빠(문재인 옹호자)들의 편견 가득한 공격일 뿐일까. 답을 찾기 위해선 한수원의 민낯을 들여다봐야 한다. 한수원은 5년 전인 2012년 온 나라를 원전비리로 시끄럽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원전부품 납품 비리와 각종 뇌물수수, 일부 직원의 마약 복용까지 줄줄이 터져 나오면서 ‘비리백화점’ ‘원전마피아’라는 비판을 한몸에 받았다.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을 비롯한 수십명의 직원이 줄줄이 구속됐다. 당시 원전비리와 고장으로 인한 피해액만 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지만, 손해배상은 1000억원대에 그쳤다.

노조는 혈세 안 챙겼나

비리에 연루되지 않은 상당수의 한수원 직원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리 사태 와중에도 한수원은 자신들의 밥그릇만은 용케도 잘 지켜냈다. 1인당 평균 연봉은 비리 사건이 터진 이듬해인 2013년에 잠깐 낮아졌을 뿐,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4.3%가량 올랐다.

지난해 한수원의 정규직 1인당 평균 연봉은 8236만원으로 30개 공기업 가운데 5위였다. 공기업 전체 평균 연봉(7905만원)보다 331만원 더 받았다. 남자직원 1인당(정규ㆍ비정규 합산) 평균 연봉은 9229만5000원으로 공기업 전체 평균 연봉보다 1324만5000원 더 많았다. 비리로 수조원의 혈세를 낭비해놓고도 반성은커녕 연봉 올리기에만 급급했다는 얘기다.

노조는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중단 반대를 외치면서 “수조원의 국민 혈세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한수원 이사진은 즉각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자신들이 수혜자라는 사실은 꽁꽁 숨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수원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안전이나 납품, 투명경영 등과 관련해 감사원으로부터 받은 지적사항만 18건에 이른다. ‘원전마피아’라는 지적을 받은 후에도 크게 바뀐 게 없다는 방증이다.

남건호 한수원 노조 사무처장은 “너무 오해가 많다”면서 한수원 노조에 가해지는 비판을 조목조목 해명했다.

“노조원들 가운데 원전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정치적 비리를 노조가 알기도 힘들다. 당연히 책임질 일도 없다. 노조가 경영진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연봉은 잔업이 많아서 높은 것이지 기본급은 결코 높지 않다. 이해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선 안 된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 물론 한수원 노조도 원전산업에 종사하는 이상 친親 원전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원전옹호론자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밥그릇 지키기’로 몰아가선 곤란하다.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고, 대안이 잘 마련되는 등 민주적 절차가 이뤄지면 탈핵 정책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정부가 대안 마련과 절차에 더 신중해야 하지 않느냐는 한수원 노조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익명을 원한 모 대학 에너지학과 교수 역시 “탈핵 정책에 찬성하지만, 충분한 대안 마련 논의 없이 무작정 건설 공사 중단부터 결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수원 직원들의 연봉 인상과 혈세 낭비를 별개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노조원들 역시 국민 혈세로 급여를 받고 있어서다. 더구나 “친親 원전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탈핵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분명 상충된다. 말로는 탈핵 정책을 반대하지 않는다지만 실제로는 탈핵을 원치 않는다고 볼 만한 여지가 충분한 셈이다.

20년간 노동운동을 해온 노동계의 한 간부 조합원은 한수원 노조의 행동을 이렇게 꼬집었다.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의 모순점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거다. 환경문제는 자본주의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점 중 하나다. 원전은 결코 친환경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노조가 원전을 옹호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한수원 노조의 원전 반대는 전체 노동운동의 방향성과 맞지 않다.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소지가 매우 크다.” 한수원 노조가 귀 기울여야 할 조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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