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생리학적으로 졸음운전을 극복할 방법은 없다.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시속 90㎞ 속도로 달리던 중 어느 순간 눈이 감겼고 무언가 짓밟혀 부서지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 앞부분이 공중에 떠 있었다.” 얼마 전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 부근에서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낸 버스 기사의 증언이다. 버스는 승용차 위에 올라탄 형상으로 미끄러졌고 완파된 승용차 안의 50대 부부는 참변을 당했다.  

버스 속 CCTV에 담긴 버스 기사의 모습은 방금 전 자신이 뭘 했는지조차 모르는 듯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애꿎은 부부를 숨지게 하고, 16명에게 중ㆍ경상을 입힌 대형사고를 유발했음에도 잠이 들었다 깬 듯 몽롱한 그의 모습에서 진한 허탈감을 느꼈다.

더구나 봉제일을 하며 열심히 살던 부부는 석달 뒤 첫 손주를 볼 예정이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샀다. 동시에 구속된 버스 운전기사의 살인적 운행 스케줄 역시 도마에 올랐다. 사고 전날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19시간가량 근무를 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상해한 이유가 합리화될 수는 없다. 하지만 가해자의 입장을 철저히 무시할 수도 없다. 졸음운전도 술을 마시고 오감이 무뎌진 상태로 운전대를 잡는 음주운전만큼 위험하다. 오죽하면 버스 기사들이 졸음을 저승사자라 표현하겠나. 

일반인의 졸음운전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한국도로공사의 통계에 따르면 졸음운전 사고의 치사율은 19%에 육박한다. 일반 교통사고 치사율 11%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2~3초를 졸면 약 100m 거리를 총알처럼 질주하는 셈이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필자의 지인은 운전대만 잡으면 졸음이 쏟아져 걱정이라 한다. 당연하지만 그럴 경우 운전을 삼가야 한다. 20년 무사고인 필자도 졸음운전이 두렵다. 그래서 운전 중 졸음이 쏟아지면 내 볼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양쪽 귀싸대기를 번갈아 후리는데 얼마나 세게 치는지 옆 사람이 놀라 잠에서 깨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졸음운전의 예방은 수면을 포함한 충분한 휴식이나 운행 거리 단축이다. 하지만 이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필자는 각국의 졸음운전 예방대책 중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미국 사례를 꼽는다.

필자가 미국 동서부를 장거리 버스로 여행하며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버스에 10시간짜리 타이머가 장착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버스가 자동으로 멎어 버스 기사는 더이상 운행할 수 없다. 운행 중 대화를 할 수 없어 버스 기사에게 자세히 묻지 못했지만, 이 제도를 잘 가다듬어 도입하면 알찬 성과가 있지 않을까. 

애매한 권유나 당부, 또는 형식적 교육으로 사고를 예방하는 건 한계가 있다. 감시카메라가 과속이나 범죄를 예방하듯 물리적 방법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제어해야 한다. 졸음운전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 이 시간에도 자신의 뺨을 때리거나 허벅지를 꼬집고 있을 많은 버스 기사들 생각에 써 본 글이다. <다음호에 계속>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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