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사각지대에 놓인 건설기계

▲ 건설기계는 승용차보다 미세먼지 배출량이 많은데도 별다른 규제가 없다.[사진=뉴시스]

경유차는 ‘미세먼지의 주범’이다. 하지만 경유차를 억제한다고 미세먼지를 목표한 만큼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굴삭기, 크레인 등 건설기계의 미세먼지 배출량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건설기계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경유세 인상’ 논란의 여진이 거세다. “경유세 인상안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정부의 해명에도 경유세 인상 가능성과 여론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서다. 정부의 태도 역시 애매하다. “지금 인상을 하지 않을 뿐 이후엔 경유세 인상안을 꺼내들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서다.

정부가 여론의 뭇매를 감수하면서까지 경유세를 건드리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떠오른 경유차의 운행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경유차 퇴출’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공약 중 하나였던 만큼 경유차 억제 정책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경유차를 줄이면 미세먼지가 감소할 것이냐다.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굴삭기지게차불도저로더 등 건설기계 때문이다. 용도상 큰 힘을 내야 하는 이 기계들은 일반적으로 경유를 연료로 사용하고, 미세먼지 배출량이 일반 경유 승용차보다 많다.

환경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비도로이동오염원(건설기계)의 PM10(미세먼지) 배출량은 1만4861t이었다. 전체 미세먼지 배출량의 15.2%로, 도로이동오염원(자동차)의 배출 비중인 10.2%(1만19t)를 한참 웃돈다. PM2.5(초미세먼지) 배출량도 1만3671t(21.6%)에 달한다.

하지만 이런 건설기계는 정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반적으로 경유차는 노후화가 진행될수록 문제가 커진다. 환경부가 노후화한 경유차를 조기폐차할 경우 지원금을 주는 제도를 시행한 이유다. 건설기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세먼지 배출량의 대부분은 낡은 건설기계가 차지하고 있다.

건설기계 제조업체 관계자는 “요즘 출시되는 모델은 문제가 없다”면서 “강화된 배출 규제인 티어4 파이널(Tier4 Final)을 충족하지 못하면 판매가 안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만들어진 건설기계들은 티어2, 티어3를 따랐는데, 이 기계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티어는 미국 환경청(EPA)이 도입한 배출가스 규제 제도로, 단계가 올라갈수록 규제가 강화된다. 미국에선 티어2가 2000~2006년, 티어3가 2006~2008년에 시행됐다. 티어4에선 최근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는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규제를 강화했다. 우리나라에 티어4 파이널이 적용된 건 2015년 1월 1일. 2년7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건설현장엔 규제 강화 전 만들어진 건설기계들이 숱하게 배치돼 있을 공산이 크다.

건설기계에도 조기폐차 지원금, 최신형 엔진 교체 지원 등 지원정책이나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환경부 관계자는 “서울 시내 현장에 노후화한 장비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규제를 검토한 적은 있는 것 같은데 현재는 별다른 지원ㆍ규제 정책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낡은 건설기계를 규제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배출 규제를 강화해도 오염물질은 발생하는데다 새 기계도 낡으면 다량의 미세먼지를 배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송철한 광주과학기술원(지구ㆍ환경공학부) 교수는 “경유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이 무해한 수준까지 감소하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특히 건설기계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은 그 양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정책팀장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기술개발로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여나갈 수 있다는 게 산업계의 입장이다. 하지만 디젤엔진 자체는 아무리 개발해도 한계가 있다. 오래 운용하다보면 진동 탓에 매연 저감장치가 파손되거나 무용지물이 되는데, 이게 보통 3~5년이 걸린다. 티어가 높으면 좀 더 개선되긴 하겠지만 일반 자동차 주행에 비해 일의 강도가 심하니 노후화도 더 심각하고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해답은 건설기계에도 친환경 연료를 주입해야 한다는 건데,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이브리드 건설기계의 단가가 아직은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건설기계 제조업체들은 2007년 하이브리드 건설기계 개발을 시작해 2012년 연비향상효과를 검증받았지만 비싼 단가 탓에 시장에선 외면 받았다.

단가 높은 하이브리드 기계

제조사 관계자는 “소비자가 하이브리드 장비를 사서 가격 절감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5년이 걸리는데, 그땐 이미 노후화가 진행된 뒤”라면서 “별다른 지원 정책이 없다면 당장은 비전이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현재로선 어렵다. 우선 환경부가 지원하는 친환경차 구매 보조금을 받으려면 시장에 제품이 나와 있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개발단계에서의 지원은 어렵다는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건설기계는 자동차와 달리 금액 규모가 커서 힘들다”면서 “현재는 경유의 연료효율 개선 등 기술개발에만 지원하고 있을 뿐 친환경 분야는 논의된 게 없다”고 말했다.

이지언 지구의벗 에너지기후팀장은 “우리나라 경제에서 건설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건설기계를 규제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젠 사회적 비용을 따져봐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석탄ㆍ원전을 비롯해 경유도 사용 가격에 비해 이후 들어갈 사회적 비용이 상당히 크다. 이런 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무분별한 사용은 막을 수 없다.” 오염물질 배출로 인한 피해가 일부 지역ㆍ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 정책에 예외를 둬선 안 되는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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