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이대로 괜찮나

우리네 골목 풍경이 달라졌다. 대기업 브랜드를 단 가게들이 골목을 파고들자 슈퍼마켓, 문구점, 서점 등이 힘없이 무너졌다. 그 때문인지 7년 전 도입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신통치 않은 성과만큼이나 반응도 싸늘하다. 새 정부가 유명무실해진 적합업종제도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법제화 과정에서 중소 상인들의 목소리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 적합업종제도의 민낯을 목도하고 있는 중소상인 5인. 왼쪽부터 이성원 사무처장, 방기홍 회장, 인태연 회장, 강갑봉 회장, 정성훈 위원장.[사진=천막사진관]

시행 7년차를 맞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이하 적합업종제도)’가 새 국면을 맞았다. 올해 74개 품목 중 49개의 기간이 해제되기 때문이다. 이중 민생에 영향이 큰 업종은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를 통해서다.

2011년 도입된 적합업종제도는 중소 소상공인을 위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지금껏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가장 큰 원인은 운영주체에 있었다. 민간자율합의체에 불과한 동반성장위원회가 운영한 탓에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적합업종에 지정되더라도 ‘권고사항’에 불과했다. 해당 업종에 진출하는 대기업을 사실상 제재할 수단이 없었다는 거다.

이런 부실한 시스템은 갈수록 약해졌다. 불황 속 터져나온 대기업의 반론에 갈수록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적합업종제도가 소비자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해 산업 경쟁력을 저해한다.” 일부 소상공인은 “볼멘소리나 늘어놓는 사람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적합업종제도를 법제화하겠다고 나섰으니, 중소 소상공인으로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게다. 그런데 막상 현장의 표정은 밝지 않다.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적합업종제도의 민낯을 목도하고 있는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장, 강갑봉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 정성훈 서울서점조합 대외협력위원장, 방기홍 전국문구점살리기연합회 회장, 이성원 을살리기운동본부 사무처장 등 5명을 만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적합업종 법제화가 현실이 되고 있다. 왜 표정이 밝지 않나.
인태연 회장 : “적합업종 제도의 법제화는 당연히 필요하다. 우리를 보호하겠다며 만든 제도에 법적인 힘이 실린다는 데 누가 반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현장에 있는 우리는 법제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잘 모른다.”

✚ 적합업종 법제화 과정이 뒤틀려 있다는 건가.
인태연 회장 : “기존 적합업종제도를 만들 때에도 우리보단 대기업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됐다.”

✚ 무슨 말인가.
방기홍 회장 : “정부의 법제화 방침을 보면 ‘동반성장위’가 등장한다. 동반위가 생계형 업종을 정부에 추천하면 중기청이 직접 적합업종을 지정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동반위의 태도다. 동반위가 포함된 법제화는 의미가 없다.”

말 많고 탈 많은 적합업종제도

✚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방기홍 회장 : “우리가 100을 요구하면 10만 통과된다. 우리는 이 10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이마저도 동반위에서 ‘못 하겠다’ 하면 끝이다. 정부 방침대로 동반위가 업종 선정의 창구로 남는다면 법제화가 되도 큰 의미가 없다.”

인태연 회장 : “꽃집의 예를 들어보자. 롯데마트는 최근 카페와 꽃집을 결합한 형태인 ‘페이지그린’ 매장수를 늘리고 있다. 꽃 소매업은 적합업종 품목이다. 그래서 업계는 동반위에 ‘확장 금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곤란하다’는 입장만 전달 받았다. 이유가 뭔지 아는가?”

✚ 뭔가?
인태연 회장 : “꽃을 파는 페이지그린이 카페도 하고 있으니 적합업종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반위는 우리 입장에서 우리를 보호하려는 제스처를 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강갑봉 회장 : “대기업과 협상 테이블을 차리는 데만 해도 한 세월이 걸린다. 동반위가 우리를 협상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적합업종 제도 이후 소상공인들의 삶이 크게 나아지지 않은 이유다.”

운영주체 동반위 괜찮나

이성원 처장 : “동반위는 지금껏 적합업종제도를 7년 운영하면서 적합업종이 상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됐는지 실태조사를 진행한 적이 없다. 이 제도의 운영주체인데도 적합업종의 우수성을 알리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에게 ‘대기업에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스스로 증명하라고 한다. 이게 동반위의 실체다. ‘동네경제성장반대위원회’의 줄임말 같다.”

이들의 불만은 적합업종제도의 운영주체인 ‘동반위’로 모아졌다. 동반위가 대기업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는 거다.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동반위의 ‘태생적 한계’가 워낙 뚜렷하기 때문이다. 동반위의 운영 기금이 대기업 주머니에서 나온다. 2011~2015년까지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에서 매년 20억원씩 총 100억원을 냈다. 지난해부터는 전경련이 직접 5개 대기업의 지원금을 모아 동반위에 전달했다. 동반위가 대기업 목소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대기업은 ‘적합업종제도는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무용론ㆍ폐지론과 엮어서 말이다.
강갑봉 회장 : “적합업종 제도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뿌리를 내린 업종에 대기업이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는 거다. 하지만 대기업은 이 울타리를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 있다. ‘자본’의 힘으로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무용론ㆍ폐지론을 입에 담나. 이미 그렇게 하고 있으면서….”

✚ 예를 들어달라.
강갑봉 회장 : “슈퍼마켓 업종은 유통산업발전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은 ‘공휴일 2일 의무휴일 지정’ 등의 규제를 받는다. 그런데 대기업은 변종 SSM으로 이를 넘어섰다. 최근에는 복합쇼핑몰, 아웃렛 등으로 ‘이단점프’를 했다.”

인태연 회장 : “재계는 ‘반反시장 정책’ ‘대기업 산업 경쟁력 악화’ ‘통상 이슈’ 등 다양한 주장을 펼치며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본질을 벗어났다. 적합업종제도의 본질은 생존을 위협받는 중소상공인들에게 작은 우산을 씌워주자는 거다. 코스피지수를 봐라. 우리 경제가 지금 대기업을 걱정할 때인가.”

강갑봉 회장 : “다른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례없는 규제라는 비판도 있다. 난 되묻고 싶다. 다른 국가에도 이런 수준의 양극화가 있는지.”

방기홍 회장 : “‘실효성이 없다’고 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더 촘촘히 제도를 짜서 소상공인을 일으킬 생각을 하는 게 맞다.”

✚ 적합업종 제도가 강화되면 ‘소비자 후생’이 불편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성훈 위원장 :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한다. 경제는 생태계다. 대형서점, 중고서점, 온라인서점의 유통 독점으로 당장 소비자들은 편리하게 책을 살 수 있게 된 건 맞다. 하지만 이 때문에 출판 생태계 전체가 병들었다. 요즘 출판사들은 좋은 콘텐트의 책을 만들 생각이 없다. 대형서점 메인 가판대에 쭉 깔아놓으면 알아서 팔린다. 출판업계가 콘텐트보다 마케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방기홍 회장 : “집 근처에 문구점이 없으면 도화지 한장 사러 멀리 떨어진 대형마트까지 가야 한다.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문구점과 대형마트가 적절하게 공존할 때 소비자 편익도 더해진다.”

▲ 중소상인들은 “중소기업 법제화를 촘촘하게 하지 않으면 소상공인들은 다시 생존 위기에 몰릴 것”이라고 지적했다.[사진=천막사진관]


✚ 문재인 정부는 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적합업종제도의 법제화 과정에서도 소상공인들의 말을 듣지 않겠나.
인태연 회장 : “법제화의 길은 멀다. 그간 충분한 토론도 없었다. 더구나 여소야대 아닌가. 설익은 법제화는 ‘이번엔 달라지겠지’라는 환상만 줄 거다. 적합업종제도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도 그랬다. 이렇게 치열하게 싸워야 할지 몰랐다.”

강갑봉 회장 : “여당 국회의원이 우리를 마음으로 지지한다고 보는가. 이들도 지역 민원만 본다. 다음 총선에 나와야 하니까. 대형마트를 지어주면 표로 돌아온다. 그래서 기업과 결탁한다. 법제화는 치열한 반대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방기홍 회장 : “우리는 당장 오늘 내일이 걱정이다. 장기 이슈가 될 법제화는 오히려 기업들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 ‘법제화가 진행 중인데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니냐’는 태도로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사이 골목은 다 죽을지 모른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성원 처장 : “보수정권 9년간 기운 운동장을 평평하게 맞추기 위해선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프랜차이즈 업계를 보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시그널’을 주자 콧대 높던 가맹본사들이 바짝 엎드렸다. 적합업종에도 확실한 시그널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진정성’ 있다면…

방기홍 회장 : “사실 동반위의 권고사항을 대기업이 제대로 지켰어도 우리가 법제화를 요구할 일은 없었다. 적합업종은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는 제도가 아니다. 몸집 작은 상인들이 하고 있는 업종이니 대기업이 마음대로 들어와서 판을 깨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하는 거다. 우리의 절박한 목소리를 억지나 생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정성훈 위원장 : “골목상권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적합업종’만 있는 게 아니다. 일례로 서점업계는 일부 지자체와 협업을 통해 공공기관에 공급하는 서적을 ‘동네서점’에서만 받기로 했다. 해당 지역 동네서점들은 당장 숨통이 트였다. 소상공인 육성 이슈가 적합업종에만 매몰되면 곤란하다. 조례, 대통령령 등 당장에 바꿀 수 있는 규칙들도 많다.”

인태연 회장 : “상인들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일부 상인은 ‘최저임금 인상 이슈’에 반대하고 있는데, 서민들 지갑이 두툼해져야 우리가 산다. 이들이 우리의 주요 고객들 아닌가. 물론 당장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한목소리로 대책을 요구하면 된다. 무작정 반대만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새 정부의 개혁에 우리도 공감하고 움직여야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들은 끝으로 소상공인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매번 바뀌는 게 두렵다고 입을 모았다. 공들여 만든 법도 정권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뒤집힌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각 정부는 소상공인을 위한 제도를 만들 때 정작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우愚’를 범해왔다.

하지만 소상공인은 어엿한 경제주체이자 지역경제의 근간이다. 이들이 무너지면 실업률 증가, 빈곤층 확대, 사회적비용 증가 등 나쁜 나비효과가 판을 치는 이유다. 새 정부가 ‘적합업종 법제화’ 추진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아쉽게도 지금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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