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메이커 없는 이유

옆집 고등학생이 ‘위성’을 만든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십중팔구 “돌아이가 사는군”이라면서 쯧쯧거릴 게다. 그런데 이 고등학생이 진짜 위성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어쩌겠는가. 우리의 무서운 편견이 ‘가능성’을 잠식하고 있을지 모른다.

▲ 2015년 전 세계에서 열린 메이커페어에 약 120만명이 참가했다. 사진은 2016년 서울 메이커페어.[사진=한국과학창의재단 제공]

그동안 사람들은 완성된 것들을 손쉽게 구매하고 소비했다. 요즘은 다르다. 남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를 무턱대고 사지 않고, 가성비를 따진다. 디자인ㆍ스토리ㆍ교감 등을 고려해 ‘의미 있는 소비’를 하는가 하면 ‘내 것은 내가 직접 만들어 쓴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대량화나 규격화보단 독특함, 좀 더 특별하고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시대다.

중요한 건 인공지능(AI)가 그런 인간의 욕구를 충족해줄 수 있느냐는 거다.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AI는 인간처럼 차별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거나 ‘의미’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호기심과 도전 정신에서 비롯된 ‘창조적인 활동’도 기대하기 힘들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메이커(Maker)’가 주목을 받는 건 이 때문이다.

메이커는 ‘생활 속 실천적 학습자로서 필요한 것을 손수 만들고, 공유하며 혁신하는 사람 또는 기업’이다. 넓은 의미로 보면 가내 수공업자, 발명가, 과학자, 예술가, 디자이너 등을 포함해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낸 사람들 모두가 메이커에 해당한다. 실천을 통해 수많은 실패를 거치면서 자신이 생각한 새로운 무언가를 현실로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그게 바로 메이커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며, AI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세계 각국은 메이커들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2014년 ‘메이커의 국가’를 선언하고, 메이커들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밑바닥에는 바로 ‘차고문화’가 있다. 미국에선 자동차가 필수지만 자동차 서비스 비용이 비싸다. 그래서 부품을 사서 직접 고치는 게 일상생활이다. 애플이나 구글, MS 같은 글로벌 IT기업들이 가정집 차고에서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다.
 

미국에 차고문화가 있다면 일본엔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 문화’가 있다. 이 문화가 자국의 강력한 제조업과 협업한다면 독창적인 메이커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일본 정부는 관련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다양한 메이커들을 발굴ㆍ지원하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메이커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 ‘돌아이’라는 편견도 여전하다. 가령 고등학생이 위성을 만든다고 하면 “공부는 언제 하나” “고등학생이 무슨 위성을 만드나” “위험하다”는 식으로 열정과 능력들을 깎아내린다. 흥미롭게도 이 고등학생이 만들고 있는 위성은 거의 완성 단계다. 편견이 가능성을 가려버린 셈이다.

산업혁명 전에 우리 모두는 메이커였다. 산업사회에서 소비자로 살면서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메이커로서의 능력을 잊고 살았을 뿐이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빠르고 쉽게 접할 수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즉각적인 피드백과 협업도 가능하다. 3D프린터는 뭐든 만들 수 있다. 메이커를 깎아내려선 안 되는 이유다.
김보경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원 bk@kofac.re.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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