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016년 유통 혁신기술 분석해보니 …

 

▲ 유통업체들이 4차 산업혁명 기술 도입을 통한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불황 앞에 선 유통은 초라하다.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데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아서다. 소득이 준 만큼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않으니 딱히 해볼 수 있는 것도 없다. 숱하게 많은 유통업체가 최근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속속 도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래를 위해 사과나무를 심는 유통업체들이 수두룩하다는 건데, 이런 노력은 유통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불황. 이리도 질길 수 없다. 내수는 수년째 침체해 있고, 수출이 살아났다지만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 경제 상황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걸 감안해도 불황의 긴 터널은 야속하기만 하다.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걷는데, 물가는 솟구쳤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가장 달갑지 않은 건 유통업체들이다.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히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주요 대형업체들의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통 공룡 중 하나인 신세계의 영업이익은 2014년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다. 롯데쇼핑, GS리테일 등도 성장세가 둔화한 지 오래다.

유통업황의 실적도 신통치 않다. 유통업계 대표 채널인 대형마트의 매출은 2012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통업계가 사면초가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숱한 유통업체들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속속 도입하는 까닭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특허청이 공개한 혁신기술 특허출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유통ㆍ쇼핑 분야에서 출원된 혁신기술 특허는 총 185개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64개의 특허를 낸 교육기관(학교산학협력단체 등)을 제외하면 대형 유통업체(49개)와 중소 유통업체(44개)의 출원활동이 가장 눈에 띈다. 기술별로는 AR과 빅데이터, IoT가 각각 86개, 53개, 27개로 가장 많이 출원됐고, VR과 AI는 각각 14개, 5개로 다소 저조했다.


가령 현대백화점이 지난해 8월 도입한 VR스토어가 대표적이다. 현대백화점 VR스토어는 오프라인 매장을 VR 기술로 재현,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과 같은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쇼핑 정보를 전달하는 마케팅 앱을 선보이고 있는 건데, 매일 5억여건의 구매패턴을 분석해 소비자의 취향에 맞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올수록 개인화에 초점이 맞춰질 거라는 점을 파고든 셈이다.

롯데백화점 본점엔 쇼핑 도우미 로봇이 들어섰다. 맛집을 추천하거나, 3D 가상 피팅 서비스를 안내하는 식인데, 이후엔 고객과 직접적인 대화가 가능한 AI 기반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은 소비자에게 흥미롭다. 유통업체는 소비자가 시장과 만나는 장場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추상적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소비자들이 실감할 수 있는 첫번째 관문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얘기다.

유통업 혁신기술 특허 5년간 185개

더스쿠프(The SCOOP)는 이 특허들을 더 자세하게 분석했다. 소비자와 맞닿아 있는 유통의 미래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1차적으로 지금껏 출원된 유통쇼핑 분야 특허기술 중 2012~2016년에 등록된 것을 추렸다. 그다음엔 VR, AR, AI, 빅데이터, IoT 등 다섯가지 분야로 다시 분류했다. 그 결과, 빅데이터 12개VR 11개AR 11개IoT 5개AI 1개 등 총 40개의 혁신기술 특허가 엄선됐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특허는 소프트기획(소프트웨어개발업체)의 ‘센서 융합기술을 활용한 소비자 참여형 쇼핑 및 마케팅 시스템’이었다. AR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 특허는 제품에 부착해놓은 센서를 한번만 스캔해놓으면 언제 어디서든 관련 정보를 얻고 구매까지 할 수 있다.


그외에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았다. DID(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 전문업체 엘리비젼은 최신 트렌드나 유명인의 헤어스타일을 VR 기술을 통해 자신의 얼굴에 적용해볼 수 있는 특허를 냈다. 실패의 쓴맛을 보기 전에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미리 확인해보자는 것이다. 소프트웨어개발업체 셀로코의 특허도 흥미롭다.

인터넷에 매장 등 장소를 검색하면 실시간 현장 영상을 통해 대기시간과 실내 분위기 등을 모니터할 수 있는 IoT 기반 기술이다. 김민희 특허청 정보고객지원국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유통과 쇼핑은 이전과 전혀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진행될 전망”이라면서 “소비자들은 유통의 변신을 통해 4차 산업혁명시대가 어떻게 열릴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은 선택 아닌 필수

그렇다면 이런 혁신기술들은 부진의 늪에 빠져 있는 유통의 ‘메시아’가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부) 교수는 “유통업계에 부는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은 비껴갈 수 없는 자연적인 흐름”이라면서 “가령, VR을 통한 쇼핑, 마케팅에 이용되는 빅데이터 등 유통업계가 4차 산업혁명을 통하지 않고선 변화를 꾀할 수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이런 혁신 기술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셈이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트렌드나 기술이 언제나 생각만큼의 도움을 주는 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기술도 마찬가지다. 점진적인 발전이지 완전히 새로운 걸 생각하면 안 된다. 기존에 하던 걸 좀 더 효율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생각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잡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오프라인 채널과 온라인 채널 중 어느 채널 하나가 절대 강자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벽을 허무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은 두 채널 모두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건데, 중요한 건 누가 대응을 잘 하느냐에 달렸다는 거다.

정 교수는 “온라인, 오프라인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대응을 잘하는 업체는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업체엔 위기가 올 것이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 혁신기술은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그걸 얼마나 유용하게 쓸지는 유통업체들에 달렸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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