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휠체어 경영

▲ 경영복귀 3개월째를 맞은 이재현 회장은 CJ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다.[사진=뉴시스]

올 들어 국내 기업인들도 많은 부침을 겪었다. 옥고를 치르는가 하면 수십년 지켜온 회장 자리를 2세에게 물려주고 2선 후퇴한 기업인도 있었다. 실적 호조나 후퇴로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회사를 넘긴 이가 있는가 하면 투자에 적극 나서면서 회사 재건을 시도한 이도 있었다. 투자와 회사 재건에 승부수를 던진 기업인으로는 이재현(57) CJ그룹 회장이 돋보인다.

5월 17일 이재현 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경영 일선 복귀를 선언했다. 총수 자리를 비운 지 4년 만이었다. 그의 용태를 궁금해 했던 사람들은 휠체어에 의지했지만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고 “아, 정체됐던 CJ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겠구나”라는 생각들을 많이 했다. 

옥고와 병마, 국정농단 연루 의혹 등을 딛고 4년 만에 기사회생한 그가 그동안 회사에 끼쳤던 오너 리스크를 어떻게 해소할지가 주목거리였다.

한창 일할 나이인 50대 중반에 옥고와 병마를 만난 그는 ‘휠체어 회장’이 돼 임직원과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휠체어’는 몸이 불편해 운신하기 힘든 사람들이 쓰는 기구다. 이 때문에 ‘휠체어 회장 이재현’이란 말은 사람들에게 이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몸이 성치 않지만 투지를 갖고 회장직을 수행하려 한다’는 동정적 메시지와 ‘몸이 성치 않으면 좀 더 쉴 일이지 저래서 회사에 누를 끼치진 않을까’라는 비판적 메시지가 뒤섞여서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복귀 후 3개월 동안 그가 보여준 활동은 ‘투지를 가진 휠체어 회장’이란 메시지를 더 강하게 부각시킨 것 같다. 1990년대 얘기지만 작고한 한라그룹 정인영 명예회장의 경우도 그랬다. 70세 때인 1989년 중풍으로 쓰러진 그는 휠체어를 타고 경영에 복귀해 해외를 안방처럼 누볐다.

1995년 해외 출장 일수 217일을 기록하는 등 당시 30대 그룹 회장 중 해외출장 일수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그에게 붙었던 별명이 ‘휠체어의 부도옹不倒翁’이었다. 휠체어가 오히려 경영 의욕을 북돋운 케이스다.

사실 이 회장은 그동안 심신 양면에 걸쳐 큰 고통을 치렀다. 조세포탈ㆍ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돼 3년이 넘도록 감옥과 병원을 오갔다. 삼성가家의 장손인 그는 전도유망한 오너 3세 총수였다. 삼성에서 독립한 CJ를 키우는데 나름대로 혼신을 다했고 성과도 냈던 만큼 옥고는 정신적으로 큰 타격이 됐을 것이다.

그에 대해 대중들이 갖는 이미지가 나빠진 건 더 큰 손해였다. 병마도 그를 괴롭혔다. 만성신부전증이 있었던 그는 옥고를 치르면서 신경근육계 희귀 유전병인 샤르코 마리 투스(CMT)란 병이 급속하게 진행돼 고통이 가중됐다. 발과 손의 변형이 심해 보행은 물론 식사를 위한 젓가락질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휠체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경영 복귀 3개월째를 맞은 그는 자신의 부재로 정체됐던 CJ를 재건하는 데 가속도를 내고 있다. 그룹 비전을 새로 제시하는 가운데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그룹 문화 혁신 방안도 내놨다. 휠체어를 탄 채 국내외 현장 경영에도 시동을 걸었다.

5월 17일 경영 복귀 선언 때는 경기도 수원시 광교에서 열린 CJ그룹 통합연구개발센터 ‘CJ블로썸파크’ 개관식 겸 ‘2017 온리원 콘퍼런스’에 나타나 인사를 했다. “가슴 아프고 깊은 책임을 느낀다”면서 “다시 경영에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7월 17일에는 세계 최대의 아이맥스(IMAX)관이 들어선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을 직접 찾았다. 이날 오후 4시께 CGV용산아이파크몰을 방문한 그는 2시간가량 휠체어를 탄 채 현장을 둘러보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복귀 후 첫번째 공식 현장 방문이었다. CGV 관계자는 “이 회장이 용산 CGV 시설을 둘러보며 글로벌 사업을 잘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 이재현 회장이 경영복귀 후 첫번째로 찾은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현장.[사진=뉴시스]

그의 영화 사업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그룹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1990년대 30대 초반이었던 그가 일찌감치 영화 사업을 밀어붙인 일화는 꽤 유명하다. CJ CGV는 지난해 매출 1조4322억원을 올리는 그룹 내 주력 계열사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세계 영화관의 진화를 선도한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이번에 CJ CGV는 11개였던 상영관을 20개로 늘렸다. 특수효과를 내는 4DX 상영관과 스크린을 3면으로 늘린 스크린 X, 세계 최대 크기 아이맥스(IMAX) 레이저관 등의 첨단 영화관을 갖췄다.

그는 8월 중순에 경영 복귀 후 첫 해외 출장에도 나선다. 회사 일을 위한 해외 출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로벌 경영에도 시동을 걸었다는 의미다. 그는 8월 18~20일(현지 시간) 미국 LA에서 열리는 ‘케이콘(KCON) 2017 LA’를 참관하고 미국 사업 전반에 대한 보고를 받을 계획이다. 행사에는 이미경 부회장도 참석할 가능성이 있어 오랜만에 남매가 나란히 공식 석상에 설 수도 있게 됐다. 이 부회장의 공식 복귀 무대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케이콘은 CJ그룹이 2012년부터 주최해 온 행사로 세계 주요 지역에서 연 5~6회가량 열리는 한류 축제다. 기획 단계에부터 이 회장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그의 관심이 높은 사업이다.

지난해 6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케이콘에는 약 4만2000명이 몰렸다. 2015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경영사례 연구집에 케이콘 사례가 실리기도 했다.

CJ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이 케이콘 행사에 맞춰 8월 중순 출국 예정”이라며 “귀국 일자와 수행 인원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이번 출장을 시작으로 글로벌 사업에 무게 중심을 두고 본격적인 현장 경영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그가 이번 출장 시 신병 치료도 겸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5월 복귀하면서 그룹 목표인 2020년 ‘그레이트CJ’와 2030년 ‘월드베스트 CJ’를 달성하기 위해 2020년까지 인수ㆍ합병(M&A) 등에 총 36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투자 대상은 물류, 바이오, 문화콘텐트 분야다.

‘그레이트 CJ’는 2020년까지 매출 100조원를 달성하고 그중 70%는 해외에서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월드베스트 CJ’는 2030년까지 3개 이상 사업에서 세계 1등이 되고 다른 사업들도 세계 최고 수준이 되겠다는 목표다. 6월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상회담 당시엔 향후 5년간 1조2000억원(10억5000만 달러)을 투자하겠다며 북미시장 공략 의지를 과시하기도 했다.

투자와 회사 재건에 ‘발동’

복귀 직후 발표한 기업 문화 혁신 방안도 눈길을 끌었다. ▲일과 가정의 양립 ▲유연한 노동환경 조성 ▲글로벌 기회 제공 확대 등이 골자였다. ▲자녀 입학 돌봄 휴가(최장 1개월) ▲남성 출산휴가 확대(2주) ▲임신 위험기 노동시간 단축 사용 확대 ▲업무시간 외 카톡 금지 ▲입사 후 5년마다 4주간의 창의 휴가 등이 포함됐다.

이 회장 복귀 후 CJ그룹은 여러모로 활기를 되찾는 모습이다. 4년간 붕 떴던 오너 리더십이 회복되면서 투자와 회사 재건에 발동이 걸리고 있다. 수년간 이어진 정체가 해소될 조짐을 보이며 사내외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제는 ‘휠체어 회장 이재현’이 투지를 갖고 계속 응답해 나가야할 차례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