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펀드, 재형저축, ISA는 왜 외면 받았나

 

▲ 정부 정책금융상품이 서민의 재산형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정부에서 서민의 재산 증식을 돕겠다고 내놓은 정책금융상품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또한 반짝 인기를 누리다 사라지는 정부의 정책의 영향으로 등장하는 금융상품도 많다. 문제는 이런 상품이 본래의 목적인 서민의 재산 형성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데 있다. 박재원(38ㆍ가명)의 사례를 통해 정책금융상품의 잔혹한 역사를 살펴봤다.

직장인 박재원(38ㆍ가명)씨는 정부의 정책금융상품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정부는 서민의 재산을 불려주기 위해 만들었다며 생색을 냈지만 정작 이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린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박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박씨와 정책금융상품의 악연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적은 월급으로는 생활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여겼던 박씨는 재테크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1년간 월급의 절반 이상을 저축해 겨우 종잣돈 1000만원을 만들었다. 문제는 박씨의 투자 경험이 전무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몰랐다는 것이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가 어렵게 모은 돈을 날리는 건 상상도 하기도 싫었다.

그때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펀드에 가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에 따른 주가 하락기를 저가 매수의 기회로 잡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증권사도 더이상 주식시장의 추가 하락은 없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으며 MB의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

큰 손실 입힌 녹색성장펀드

박씨에게도 주식투자의 최적기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MB 발언이 있은 다음날 박씨는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종잣돈 1000만원을 주식투자에 밀어 넣었다. 박씨는 삼성전자(당시 주가 51만7000원) 주식 19주를 매입했다. 2008년 5월 74만원이던 주가가 50만원대로 떨어진 터라 정부가 말한 저가매수의 기회로 삼기에 적당한 가격이었다.

 

▲ 정책금융상품은 출시 초반 주목을 받았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주가는 정부의 말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미국의 금융 불안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국내 증시도 곤두박질쳤다. 박씨가 투자한 삼성전자의 주가도 출렁였다. 그해 10월 24일 40만7500원으로 최하점을 찍은 뒤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결국 박씨는 주식매입 두달 만인 11월 18일 주식을 43만5000원에 매도했다. 손해율은 15.68% 손실은 155만원에 달했다.

박씨가 정책금융상품을 다시 접한 건 2011년 초. 투자상품을 모색하던 박씨에게 한 지인이 MB정부가 밀고 있던 녹색성장펀드를 추천했다.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수익률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이유였다. 증권사 직원도 같은 말을 했다. 수익률이 40%에 달하는 펀드도 있고 투자자도 계속해서 유입되고 있다며 투자를 권유했다. 한술 더떠 장기적 추세와 정부정책이 맞물려 녹색성장펀드는 사라지지 않는 테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기대에 박씨는 2011년 4월 A녹색성장펀드(매입 당시 설정액 486억원)에 남은 종잣돈 845만원을 투자했다. 당시 주가도 회복세를 타고 있어 박씨의 기대는 더욱 커졌다. 초반 수익률은 만족스러웠다. 투자 한달 만에 운용수익률이 12%를 웃돌았다. 하지만 박씨의 단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요란한 구호와 달리 녹색성장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펀드가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로존 재정위기 확대, 미국 신용등급 강등(2011년 8월) 소식에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서자 펀드의 수익률도 곤두박질쳤다. 한번 떨어진 수익률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박씨의 녹색성장펀드 수익률은 투자 6개월 만인 10월 -21.65%로 떨어졌다. 더 큰 손실이 발생할 것을 걱정한 박씨는 펀드를 환매했고 20%의 손실(169만원)을 감내해야 했다. 두번의 투자실패로 박씨는 종잣돈 1000만원의 3분의 1에 가까운 324만원을 날린 셈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투자 트렌드는 절세ㆍ세테크로 방향을 틀었다. 저금리ㆍ저성장의 영향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도 2013년 근로자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과 2014년 소득공제 장기펀드(소장펀드) 등의 세제혜택을 앞세운 정책금융상품을 잇따라 출시했다.

두번의 투자실패를 겪은 박씨는 고민 끝에 소장펀드 대신 재형저축을 선택했다.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펀드보다는 안전한 적금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2014년 5월 남은 종잣돈 676만원을 이용해, 기본금리 4.2%, 우대금리 0.2% 등 총 4.4%의 금리를 적용 받는 재형저축(월 납입금 30만원)에 가입했다.

하지만 여유자금이 부족해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신혼집을 마련하느라 모아둔 자금을 모두 사용했다. 특히 회사를 옮기면서 발생한 3개월의 공백이 치명타였다. 부족한 생활자금을 신용대출로 메우면서 저축저력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무납입기간 7년을 채우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여기에 임신과 출산을 겪게 되면 돈 나올 구멍은 갈수록 좁아지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박씨는 지난해 6월 재형저축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박씨가 예상한 해지 환급금은 683만5000원(원금 660만원ㆍ이자 23만5000원). 하지만 실제로 손에 쥔 돈은 671만2000원(원금 660만원ㆍ이자 11만2000원)에 불과했다.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해지해 기본금리(4.2%)의 절반만 적용돼서다.

수익률로 본 정책금융상품의 한계

박 전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으로 붐이 일었던 통일펀드의 수익률도 대박과는 거리가 멀었다. 박씨는 통일펀드가 쏟아지던 2014년 7월 투자 통일대박펀드에 투자했다. 펀드는 그해 8월과 9월 소폭의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12월 -8%대까지 하락했다. 녹색성장 펀드의 악몽이 떠올랐던 박씨는 이듬해 2월 -3.12%(투자금액 240만원, 평가액 232만5000원)의 손해를 무릅쓰고 펀드를 서둘러 정리했다. 박씨에 남은 금액은 663만7000원 7년 만에 -33.63%손실을 기록했다.
 

박씨가 마지막으로 투자에 나선 정책금융상품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다. 이번에도 정부와 금융사의 홍보에 놀아났다. 정부는 절세 혜택ㆍ돈 마련ㆍ재산 증식ㆍ만능통장 등을 내세워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고 금융사도 각종 자동차ㆍ해외여행ㆍ가전제품 등 다양한 경품을 지급하며 고객 유치에 나섰다.
 

처음에 반신반의 하던 박씨는 모든 거래가 한 계좌를 통해 가능하고 기존의 정책금융상품과는 차별성이 있다는 말에 매월 10만원씩 투자에 나서고 있다. 박씨가 선택한 상품은 전문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일임형 ISA였다. 박씨가 가입한 상품의 현재 수익률은 2.4%(출시 이후 수익률) 나름 선방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2%대에 달하는 보수와 수수료를 제하면 박씨가 얻은 수익은 0.4%에 불과해서다. 문재인 정부가 ISA의 비과세 한도를 늘리고 부분인출ㆍ중도해지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 문제점을 보완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씨는 새 정부의 개편안을 보고 ISA 해지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다.

전문가들은 초반 투자자가 몰렸다가 곧 식어버리는 정책금융상품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본인의 투자성향, 유지가능성, 실질적인 혜택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유행을 좇기보다는 소신에 따라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책금융상품을 쫓기보다 박씨가 2008년 첫 투자 때 매입한 삼성전자 주식을 지금까지 유지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며 “주가가 240만원까지 올라 380%를 웃도는 수익을 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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