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남편의 죄 vs 부인의 죄
[윤영걸의 有口有言] 남편의 죄 vs 부인의 죄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51
  • 승인 2017.08.15 0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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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공동정범 … 아내에게 누명 씌우지 마라

▲ 박찬주 대장은 공관병 갑질 사건이 터지자 아내 탓을 했다. 하지만 아내의 허물은 곧 남편의 허물이다. [사진=뉴시스]

공관병을 마치 노예처럼 부렸다는 혐의로 망신살이 뻗친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대장)은 일찍부터 육사가 배출한 재목으로 꼽혔다. 독일 유학 시절 훈육관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번이라도 한국에서 온 박찬주 생도를 이기는 독일 생도를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

그러나 공관병 갑질 사건 이후 그의 처신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장수답지 않다.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구두경고를 받은 후 아내에게 호통을 쳤고, 1개월간 아내와 떨어져 지낸 사실까지 들먹이며 자신은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강변한다.

물론 아내 책임이 크지만, 아내의 권력은 남편인 박 대장의 지위로부터 나온 것이다. 아내의 허물은 곧 남편인 자신의 허물이다. 부하에게 “내가 사령관이면 아내는 여단장급”이라는 말도 했다지 않은가. ‘박찬주 징계법’이라도 만들어서 권력자가 ‘힘없는’ 아내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구태를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싶다.

공직자의 섹스 스캔들 관련 기자회견에는 으레 심각한 표정의 아내가 곁에 서있다. “가장 큰 피해자인 내가 용서하겠다는데 제3자인 여러분이 무슨 간섭이야”라는 무언의 시위이자 호소다.

어느 국회의원 아내는 남편 몰래 자신이 뇌물을 받았다며 감옥행을 택하기도 한다. 국정농단의 핵심인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뇌물수수가 밝혀지자 아내가 자신 몰래 받아 챙긴 것이라고 둘러댔다.

박 대장과 안 전 수석의 아내는 모든 혐의를 남편 대신 뒤집어쓰려고 한다. 물론 민간인 신분인 아내에게 덤터기를 씌우면 처벌이 훨씬 가벼워진다는 점을 노렸을 것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한 아내의 ‘희생정신’이 눈물겹다.

위대한 현자 중에는 악처로 소문난 사람이 많다. 억울한 아내의 대명사는 아마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일 것 같다. 누군가 아내에 대해 묻자 소크라테스는 “말을 잘 타려면 거친 말을 타고 배우는 걸세. 내가 그 여자를 견디어 낼 수 있게 되면 천하에 어떤 사람이든 견뎌내지 못할 사람이 없겠지”라고 대답했다.

아내의 잔소리에는 “물방아 도는 소리도 자주 들어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다네”라고 말했다. 아내가 자신의 머리에 물을 끼얹자 “천둥 번개 다음에는 항상 큰 비가 따르게 마련이야”라면서 태연히 중얼거렸다.

소크라테스의 어록은 전해지지만, 아내인 크산티페는 묵묵부답이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은 나이 많고 추남이고 경제적인 능력도 보잘것없었다. 또 아내의 험담을 입에 달고 다녀 역사에 ‘크산티페=악처’의 오명을 남게 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소크라테스를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은 그의 아내 크산티페일지 모른다.

공자는 황혼 이혼을 당했다. 큰 뜻을 가진 공자를 평범한 여인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돈에 무관심하고, 예절은 숨 막히도록 엄격하고, 식성도 까다롭고, 없는 살림에 제자들만 들락거렸으니 퇴출될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아내인 소피아 역시 악처로 유명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전 재산을 헌납하려는 남편과의 갈등 때문에 와전된 것이지 알고 보면 톨스토이 문학의 최대 후원자이자 유능한 비서였다.

함께 평생을 살아온 반려자는 소중한 인생친구이자 동업자다. 성공한 남편 곁에는 대부분 헌신적인 아내가 있다. 올해 98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에는 아내 없는 외로움이 절절히 묻어난다. 그의 나이 84세 때 아내는 20년간 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활발한 강연과 저술활동으로 젊은이 못지않게 활력이 넘치는 그는 90세가 되면서부터 세상 떠난 아내와 같은 제2의 여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한다.

‘악처惡妻’란 말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인 단어이자 여성 비하 표현이다. ‘악부惡夫’는 거의 쓰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면 돈벌이를 포기하고 종일 컴퓨터 앞에서 빈둥거리는 남편 때문에 속 끓이는 젊은 아내들의 절규가 가득하다. 남편 대신 아내가 돈줄을 쥐고 과감하게 투자에 나서는 집안의 살림 형편이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대부분 훨씬 낫다.

여성이 강해진 것은 가족을 위한 책임감과 희생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악처야말로 이 땅의 희망이자 열정의 상징이다.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지 마라. 누가 감히 그녀들을 악처라고 비난하는가.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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