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실 있는 상생모델로 발전할 수 있을까

이마트가 경기도 안성에 세번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를 열었다. 전통시장 내의 동네마트와 공간을 나눠쓰는 새로운 개념의 상생스토어다. 이마트는 판매품목을 시장, 마트와 겹치지 않게 조정했다. 시장 외관도 가꿨다. 덕분에 죽어있던 시장엔 조금씩 활력이 돌고 있다. 이제 일주일, 지금의 활력이 상인들의 매출로 이어져 내실있는 상생모델이 될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현장을 찾아가봤다.

▲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와 화인마트의출입문은 마주보게 배치됐다.[사진=더스쿠프포토]
“안성맞춤시장으로 가주세요.” 경기도 ‘안성터미널’에서 안성맞춤시장으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라탔다. 기자의 목적은 단 하나. 이마트ㆍ전통시장ㆍ청년몰ㆍ동네마트가 ‘4각 협력’해 만들었다는 이마트의 세번째 상생스토어에 가보기 위해서였다. 

“어둡고 퀴퀴해서 들어오기 무서웠던 시장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는 상인의 목소리를 미리 들어본 터. 힘 빠졌던 시장에 어떤 활력이 돌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택시기사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어디예요? 대체….” 

이곳, 알고 보니 ‘안성 5일장’ 혹은 ‘안성시장’으로 불리고 있었다. 시장에 청년몰이 들어서면서, 시장협력회의 요청으로 지은 새이름이 바로 ‘안성맞춤시장’이었다. 가슴이 짠했다. “이름까지 바꿔야 할 정도로 힘들었나 보구나.”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상인들의 사투는 활력이라는 응답을 받았을까?” 사실 안성맞춤시장은 기대를 모으기 충분했다. 기존 상생스토어에서 한발 나아가, 동네마트와 공간을 나눠쓰고 임차료는 더 많이 부담했다. 청년상인들을 위해서는 거리조성, 집기지원도 이뤄졌다. 결국 이런 콘텐트를 통해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게 전통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거란 계산에서다. 

▲ 안성맞춤시장에 입점을 원하는 청년상인들이 늘고 있다.[사진=더스쿠프포토]

안성터미널로부터 5분. 택시에서 내려서 들어선 시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시장 입구에선 옥수수를 삶는 압력솥이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매대에서 떡볶이, 순대, 튀김을 파는 아주머니는 ‘김말이’를 마는 데 여념이 없었다. 손님은 국수를 먹는 중년 남성 한명뿐이었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시장은 장사 준비를 마쳤는데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도 모두 시장 상인들이었다. 상생스토어가 궁금해서 찾았다는 기자의 말에 상인들은 저쪽을 가리켰다.

‘지하 1층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을 내려가자 왼쪽에는 어린이희망놀이터ㆍ청년상생카페, 오른쪽엔 화인마트, 정면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이어졌다. 화인마트 3개의 계산대에는 족히 10명씩 줄을 서 있었다. 

트렌디한 음악과 할인 안내 멘트도 쏟아져 나왔다. 이날의 할인품목은 바나나였다. 980원 파격할인에 사람들이 과일 매대로 몰렸다. 고기와 야채, 과일 등 신선식품 가격이 저렴해 반찬거리를 장보는 이들이 많았다.

매대 텅 비었던 동네마트의 변신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점순(78ㆍ가명)씨는 점심장사를 위해 장을 보고 있었다. 그는 “예전엔 매대가 텅텅 비었었다”면서 “신선식품이 저렴하고 가까워서 이곳에서 장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열었단 소식에 멀리서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아이와 함께 장을 보던 주부 최하나(36ㆍ가명)씨는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서 알게 돼 찾아왔다”면서 “어린이희망놀이터에 아이를 맡기고 쇼핑할 수 있어, 다른 엄마들과 자주 오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의 특징은 동네마트(화인마트)와 상생을 꾀했다는 점이다. 이마트는 화인마트의 30%를 임차하고, 임대료와 보증금의 절반을 부담한다. 화인마트 영업면적 2314㎡(약 700평) 중 694㎡(약 210평)를 빌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479㎡(약 145평), 어린이희망놀이터149㎡(약 45평), 청년상생카페 66㎡(약 20평)를 마련했다. 어린이희망놀이터와 청년상생카페는 이마트가 인테리어를 제공했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의 판매 품목도 주목할 만하다. 전통시장의 주력 상품인 신선식품과 국산주류, 담배 등은 판매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출입문 배치도 독특하다. 화인마트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의 출입구를 마주 보게 설계했다. 상생스토어를 찾은 고객의 발길이 화인마트로 이어지게 하기 위한 반짝 아이디어다. 

실제로 화인마트는 눈에 띄게 활력을 되찾은 듯했다.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론칭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마트는 존폐를 걱정해야 할 만큼 경영난이 심각했다. 하정호 화인마트 대표는 “아직 집계를 해보진 않았지만 마트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면서 “이마트로부터 인테리어, 상품배치, 홍보 등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화인마트에 찾아온 활력은 안성맞춤 시장의 위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둥지를 튼 지하 1층에서 계단을 타고 오르자 방학을 맞은 여고생들이 ‘상생’이라고 쓰인 독특한 간판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이들을 뒤로하고 시장 골목으로 나가니, 붉은 벽돌 외벽에 ‘7080’ 드라마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네온사인과 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40여m의 ‘청년창업거리’였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오픈과 함께 ‘청년창업거리’ 재단장도 이뤄진 거다. 앞서 언급했듯 이 역시 이마트의 작품이다. 

김순자 안성시장상인회 회장은 “8월에 5개의 청년몰이 추가로 열어, 1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면서 “입점하겠다는 이들이 많아 2층도 청년몰로 꾸릴 계획이다”고 말했다. 청년카페 징, 분식점 튀김S, 은공예샵 제이음 등 청년상인들도 모두 가게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12시도 되지 않은 시간 탓인지 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도 대여섯명뿐이었다. 

시장 상인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은 시장’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유입된다는 것만으로도 상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 거다. 수선집을 운영하는 정순자(59ㆍ가명)씨는 “시장상인회 사람들과 당진, 구미 상생스토어에 다녀와 좋은 이미지를 받았다”면서 “우리 시장도 이렇게 밝아졌으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지하 1층의 어린이희망놀이터와 청년상생카페는 젊은 고객을 공략하기 위해 마련됐다.[사진=더스쿠프포토]

미디어들도 기대감을 노출했다. “지난해 상생스토어가 입점한 당진시장의 매출이 40% 늘었다”면서 “상생스토어가 1년만에 ‘4각협력’으로 거듭났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찬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진 의문이다.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에 쏟아진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동선動線이 안성맞춤시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로 내려가는 출입구가 시장 끝자락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하 1층이라는 한계도 뚜렷했다. 실제로 지상ㆍ지하 주차장에서 시장을 통과하지 않고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로 직행하거나, 지하에서 쇼핑하고 시장은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쇼핑을 마친 주부들의 반응도 이런 우려를 관통했다. 주부 A씨와의 대화 내용을 보자. 

기자 : “새롭게 단장한 안성맞춤시장에 자주 올 것 같으세요?”
주부 A씨: “좋은데요. 그럴 것 같아요.” 
기자 : “지하 1층 노브랜드에 들르셨죠?” 
A씨  : “네.” 
기자 : “1층에 있는 시장엔 가보셨나요?”
A씨 : “아니요.” 

사실 이는 예상됐던 우려다. 상인들은 애초 공실이 많았던 시장 2층에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의 입점을 추진했다. 하지만 건물이 지나치게 낡은 탓에 공실 사이를 막아 놓은 ‘벽’을 허무는 공사를 하지 못했다.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지하 1층에 자리를 잡은 이유다.

결국 모여드는 사람들의 발길은 위쪽으로 이끄는 건 상인들의 몫으로 남은 셈이다. 상인들 사이에서도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김순자 상인회장은 “시장이 살려면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와야 하고, 그러려면 시장이 젊어져야 한다”면서 “오래된 물건, 낡은 생각들을 바꾸기 위해 상인들도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가 제시한 새로운 상생모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기존 상생 모델에서 한걸음 나아간 건 맞지만 풀어야할 숙제도 적지 않았다. 취재를 마치고 시장을 빠져나오려는 찰라, 상생스토어에서 잔뜩 장을 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부지불식간에 아주머니를 불렀다. “1층 시장은 안보고 가시나요?” 기자 옆에 서있던 상인이 활짝 웃었다. 그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택시를 부르기 위해 택시앱에 접속했다. 생각없이 안성맞춤시장이라고 입력했다. 정보가 뜨지 않았다. 불편한 현실이 또 보였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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