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원 vs 맥도날드 갈등, 그 이후…

‘햄버거 포비아’가 대한민국을 덮쳤다. 이른바 ‘햄버거병’ 논란이 커지자 한국소비자원은 부랴부랴 시중에 유통되는 햄버거의 실태검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식중독균이 초과 검출됐다”는 지적을 받은 맥도날드와 갈등을 빚었다. 문제는 이게 ‘끝’이라는 거다. 햄버거병의 실체와 확산가능성, 전염경로 등 논란거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 한국소비자원과 맥도날드의 갈등은 일단락된 듯 하지만 햄버거 논란은 되레 커졌다.[사진=뉴시스]

A씨는 가족과 함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먹고 난 뒤 구토와 설사를 했다. 병원에선 “음식물에 의한 식중독”이라고 했다. B씨는 편의점에서 햄버거를 구입해 먹고 난 뒤 몇시간 동안 설사가 멈추지 않았다. 병원 진단은 ‘급성 장염’이었다.

우리 사회에 ‘햄버거 포비아(phobiaㆍ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햄버거 관련 위해사례도 해마다 증가세다.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에 올 1~6월까지 접수된 햄버거 관련 위해사례는 153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106건보다 44.3% 증가했다.

이런 예민한 상황에서 지난해 햄버거를 섭취한 4세 어린이가 용혈성요독증후군(Hemolytic Uremic SyndromeㆍHUS), 일명 ‘햄버거병’을 진단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햄버거 포비아’가 더욱 무섭게 번지고 있다.

“햄버거를 먹고 용혈성요독증후군에 걸렸다”면서 한국맥도날드(이하 맥도날드)를 상대로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한 사례도 5건으로 늘었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한국소비자원(이하 소비자원)은 7월 17일 시중에 유통되는 햄버거 38개 제품을 수거해 위생실태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주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6개 업체 24개 제품)와 편의점(5개 업체 14개 제품)에서 판매되는 햄버거 38종을 수거해 위생실태를 긴급 점검했다. 그 결과, 조사대상 38개 중 37개 제품에서 용혈성요독증후군 유발하는 장출혈성 대장균을 포함한 위해미생물이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1개 제품에서 식중독균인 황색포도상구균이 기준(100/g 이하) 대비 3배 이상 초과 검출됐다.”

 

문제의 1개 제품은 맥도날드의 불고기버거였다. 시험 결과, 해당 버거에선 황색포도상구균이 기준치의 3.4배를 초과한 340/g 검출됐다. 소비자원은 조사 결과를 공식발표 하기 전 맥도날드에 이런 내용을 미리 알렸다. 검사 절차와 결과를 충분히 공유한 다음 결과를 발표(8월 8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공식발표 하루를 앞둔 7일, 상황이 복잡해졌다. 맥도날드가 소비자원을 상대로 ‘조사결과 공표 금지 가처분 신청(사건번호 2017카합554)’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맥도날드는 검사 절차를 문제 삼았다. “소비자원이 식품공전(Korean Food Standards Codex) 상의 절차를 위반해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

검사 절차 문제 없었나

맥도날드가 근거로 내세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공전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검체를 채취ㆍ운송ㆍ보관하는 때에는 채취 당시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밀폐되는 용기ㆍ포장 등을 사용해야 한다.” 맥도날드는 소비자원이 이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밀폐용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거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판매 당시엔 문제가 없었지만 소비자원이 시료 채취를 위해 불고기버거를 구입해 이동하는 과정 중 30분 이상 상온에 노출했거나 운반ㆍ보관 과정에서 외부공기를 노출시켜 황색포도상구균에 오염됐다”고 주장했다. 소비자원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절차상 문제가 없고, 38개 시료 모두 동일한 조건이었다”고 반박하면서 ‘조사결과 공표 금지 가처분 신청’에 맞대응했다.

법원은 10일 소비자원의 손을 들어줬다. 청주지법 충주지원 민사2부(정찬우 부장판사)는 “맥도날드의 주장이 소명되지 않았다”면서 맥도날드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맥도날드의 주장과 같이 판매 당시에는 기준치 내에 있던 황색포도상구균이 소비자원의 부주의한 관리 때문에 허용기준치를 3.4배까지 증식했다는 점이 소명됐다고 볼 수 없다.”

하상도 중앙대(식품공학) 교수도 법원과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황색포도상구균은 다른 균들과 달리 사람을 통해 오염되는 균이다. 맥도날드 측의 주장은 가능성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다.”

▲ 맥도날드는 “절차상 문제로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결과 공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사진=아이클릭아트]

법원이 소비자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자 맥도날드 측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건 유감이지만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한발 물러서는 듯 했다. 하지만 “가처분 심리 중 조사 내용이 사전 유포된 점, 식품위생법에서 규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조사를 진행한 점 등을 고려해 소비자원을 상대로 본안소송을 제기할지 검토하고 있다”면서 법정 다툼이 벌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흐른 17일 현재까지 맥도날드는 후속조치(본안소송)를 취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햄버거 검사를 둘러싼 논란이 이쯤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햄버거 포비아’를 둘러싼 논란은 되레 가중됐다.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는 고객이 눈에 띄게 감소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에 따라 햄버거 업체들과 전문기관이 ‘햄버거병’의 실체를 정확하게 밝히려는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햄버거병’ 과잉 공포인가

하상도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현재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햄버거병’은 증명된 게 아니고 대부분 추측이다. ‘햄버거를 먹었다’는 것만 사실이지 햄버거에서 그 균이 나왔고, 그로 인해 용혈성요독증후군에 걸렸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의 원인 중 햄버거 패티에서 나오는 균은 10%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로선 과학적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원과 맥도날드의 갈등은 ‘햄버거 포비아’라는 더 큰 숙제를 남겼다. 과학적 검증만이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다. 지금껏 ‘식품은 안전’이라고 그리도 떠들지 않았는가.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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