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대못으로 잡을 수 있을까

▲ 주택문제 해결을 특정세력과의 전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사진=뉴시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이율배반적이다. 경제문제에서 정치적·이념적인 갈등으로 진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나치게 민감하고 공격적인 이슈로 변모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부동산을 저주하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부동산을 경원시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동산 정보에 목말라 한다. 언론사 경제기사 중 부동산 분야 관심도가 가장 높다. 아마 세계에서 자신이 사는 아파트 값의 시세가 주요 일간지에 매주 게재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게다.

부동산 시장은 이제 누구도 내놓고 말을 하기 꺼리는 금단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전문가들도 자칫 투기세력이라는 비판을 들을까봐 극히 몸을 사린다. 폭락론에 앞장섰던 전문가는 비록 진단이 틀렸더라도 위상이 여전하다. 그들의 예측은 현재의 부동산 시장 흐름과 너무 동떨어졌으니 헛웃음이 나온다.

요즘 유행하는 갭투자(매매가격과 전세금 간의 차액이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방식)는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의 옵션게임이다. 경제적인 여건이 비슷하다면 세입자는 ‘집값 하락’에 베팅했고, 집주인은 ‘오른다’에 옵션을 건 사람이다. 집주인은 집값이 오른 만큼 이익을 얻고, 내리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한다.

반면 세입자는 2년간의 거주 권리를 얻는 대신 하락하면 훗날 싼 값에 집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만약 집값 하락이 분명하다면 전세가는 집값보다 비싸야 정상일 것이다. 금융비용에다가 재산세 부담을 합치면 자선사업가가 아닌 이상 전세를 집값보다 싸게 받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집을 여러 채 소유한 사람들을 주택투기의 주범으로 보고 다주택자와의 전쟁을 예고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본인이 사는 집이 아닌 것은 다 팔라”고 강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미친 전세 미친 월세 부담에서 서민들이 해방되기 위해서도 부동산 가격 안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번 옳은 말이지만 집값 안정이 전·월세 값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전·월세는 현실적인 주택 수요공급과 금리가 좌우하기 때문이다.

흔히 부동산은 ‘투기’라고 말하고, 주식은 ‘투자’라고 말한다. 주식과 부동산에는 투자와 투기의 요소가 함께 뒤섞여 있다. 선물옵션에 무리하게 베팅하고, 루머에 현혹되는 주식투자는 투기에 가깝다. 부동산 값이 급등하면 경제에 끼치는 피해가 적지 않다. 하지만 길게 보고 세금 제대로 내고 부동산을 사들였다면 단지 시세(평가차익)가 올랐다고 해서 투기세력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다.

주식시장은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 등쌀에 개인들이 늘 피해를 본다. 작은 악재에도 요동을 치는 것이 주식시장의 생리이다 보니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손절매하기 십상이다. 반면 부동산은 매매차익의 최대 절반 가까이를 양도세 등 각종 세금과 수수료로 부담해야 하니 매도를 주저한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장기보유가 부동산 수익률을 높인 측면이 있다. 징벌적인 양도세 부과가 시장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 이유다. 은퇴자들이 집을 팔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오히려 사들이는 이유는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는 탓이다. 주식은 위험하고 채권이나 예금은 수익률이 연 1~2%에 불과한데 주택임대는 연 4% 안팎의 금리가 나온다.

부동산 경기가 약 10년 단위로 상·하향 사이클을 탄다고 볼 때 서울 집값은 올해 말이나 내년에 고점이 예상돼 왔다. 그런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부동산 경기에 철퇴를 가하면서 하락 사이클이 앞당겨졌다.

당분간은 L자형 그래프를 보이면서 하향 안정세를 보이겠지만 어차피 쉬어갈 때 정부가 초강력 부동산대책을 내놓은 측면이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실물경기에 부담을 주고, 거래 절벽 속에서 또다시 상승에너지를 비축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무현 정부의 17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이 실패한 것은 ‘시장은 오기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시장 물꼬를 터주면서 서민주거를 해결하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차라리 주택보급률 목표를 130%(전국 기준 현재 102.3%) 이상으로 세워보라. 집이 남아도니 집값은 물론 전세 월세 다 떨어지니 갭투자고 뭐고 없어질 것이다. 주택문제는 특정세력과의 전쟁이 아니라 치밀하고 합리적인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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