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우린 아직 남한산성에 있는가
[윤영걸의 有口有言] 우린 아직 남한산성에 있는가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53
  • 승인 2017.08.29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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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만큼만이라도…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옆에는 쟁쟁한 안보전략가들이 포진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옆엔 지금 누가 있는가.[사진=뉴시스]

국정원과 미국 CIA가 손잡고 VIP탈북자를 알아 보니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였다. 영화 ‘브이아이피’는 국정원과 경찰, 미국 CIA, 북한 보안성 공작요원이 살인마를 두고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는 암투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공조’와 마찬가지로 북한 공작원이 카리스마와 정의감 넘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CIA 요원은 비열한 인물로 그려진다. 시종 담배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욕설이 지나치고, 여성피해자들이 너무 잔인하게 묘사돼 있어 개운치 않은 느낌을 준다. 그보다 더 마음이 불편한 것은 깊게 똬리를 틀고 있는 반미反美 정서다. 영화는 영화이므로 정색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김대중(DJ)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김대중의 길을 따라 남북이 다시 만나고 희망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DJ가 생존해 있다면 자신이 주창한 햇볕정책을 금과옥조처럼 따르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에 행여 불편해 할지 모르겠다.

햇볕정책을 펼 때 DJ는 북한 핵이 단순한 미국과의 협상용이라는 것과 일본의 핵무장 도미노를 두려워한 중국이 북한 핵을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2가지 전제조건을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그는 중국을 오판했고, 북한의 기만술에 속았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입버릇처럼 말한 DJ라면 햇볕정책을 교조적으로 떠받드는 대신 4강 균형외교를 통해 진일보한 대북정책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게다.

북한이 스스로 핵을 버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활용한 공포전략으로 미국을 위협해 유사시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을 못하게 하려는 노림수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접촉이 이뤄지면(벌써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한미군사훈련에 이어 주한미군 철수를 줄기차게 요구할 것이다.

이번 을지훈련에 참가한 미군병력이 감축된 것을 보면 조짐이 심상치 않다. 미국이라는 버팀목까지 사라지면 핵무기가 없는 한국은 공황에 빠질 것이다. 미국의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내용의 에치슨라인은 한국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유명한 핵 전략가는 핵위협을 받는 국가의 대응책은 단 3가지 길뿐이라고 강조한다. 핵무장을 하거나, 아니면 핵을 빌리거나, 굴복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기인 2006년 북한의 핵실험이 벌어진 후 다섯번째 핵실험이 이어졌어도 뾰족한 대책없이 내부에서 책임전가하기 바쁘다. 우리는 미국과 손을 잡고 북한 핵과 싸워야 하는데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의 결기는커녕 거꾸로 북한에 러브콜을 보낸다. 안보 협력자인 미국한테 “한국에서는 군사행동을 할 생각을 감히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미국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말하면 한국의 지도자는 미국 의원을 만나 “군사 옵션 때 주한미군 생명도 위태하다”고 어깃장을 놓는다.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절대 막겠다는 의지는 이해되지만, 자칫 한국만 외톨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급기야 미국에서는 한국의 사전 동의 없이도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나 예방공격이 가능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미국으로서는 사드 배치를 늦추고 전시작전권 회수를 강조하는 한국을 마냥 좋게만 보지 않을 것이다. 한미 동맹에 균열이 생기면 콧노래를 부를 사람은 북한의 김정은 밖에 없다. 자칫하면 미국으로부터 외면 받고, 북한으로부터 무시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까 걱정이다.

DJ는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공개석상에서 2번이나 외교적 모욕을 당했지만 미국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햇볕정책에 반신반의하는 미국을 집요하게 설득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부터 “한반도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이 핸들을 잡아 운전하면 나는 옆자리로 옮겨 보조 역할을 하겠습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만큼 민주화를 이룬 지도자로서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고, 쟁쟁한 안보전략가들이 DJ 옆에 포진해 물샐틈없이 지원했다.

광해군은 명과 청 사이에서 절묘한 줄다리기 외교로 평화를 얻었지만 뒤이은 인조는 균형외교에 실패하면서 청의 침략을 자초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포위된 남한산성에서 조선의 대신들은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적이 아니라 우리끼리 목숨 걸고 싸웠다. 불과 47일 만에 삼전도에서 왕이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을 하며 3번 무릎을 꿇고 9번 땅에 머리를 부딪치는 굴욕을 당했다. 우리는 아직 남한산성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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