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없는 사회’ 험난한 여정

한국은행이 추진 중인 ‘동전 없는 사회’를 아는가. 현재 시범사업 중인데, 2020년 완료가 목표다. 3년도 채 안 남았는데, 갈 길이 험난하다. 무엇보다 동전 대신 사용해야 할 ‘적립카드’가 통일되지 않았다. 콘셉트도 모호하다. ‘동전 없는 사회’가 동전을 없애겠다는 건지, 동전량을 줄이겠다는 건지, 줄인다면 어느 정도까지 줄인다는 얘긴지 알 수 없다.
▲ 올해 상반기 시중에 유통된 100원짜리 동전이 19년만에 감소했다.[사진=뉴시스]

# 종로의 한 편의점, 1500원짜리 음료수를 사고 현금 2000원을 냈다. 잔돈(동전)을 SSG포인트로 적립해 달라고 했다. 당황한 표정의 편의점 직원. 포스기 화면을 이것저것 눌러보더니 머리를 긁적인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요. 잠시만요.” 직원이 편의점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방법을 알아보는 사이 3분여가 흘렀다. 밀려드는 손님에 진땀 빼는 직원에게 미안해졌다. 결국 동전으로 거슬러 받고 나왔다. 

# 이번엔 여의도의 한 편의점에 들어갔다. 생수 한병을 사고 1000원을 내밀었다. “거스름돈 200원은 캐시비로 적립해 주세요.” 직원은 “네이버페이 바코드 적립만 해봤다”면서 “휴대전화에서 바코드를 다운받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섰다. 이 편의점에서 매번 잔돈을 적립하는 손님은 세명이란다. 직원은 “동전을 네이버페이로적립해달라는 손님이 있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시간은 다소 걸렸지만 바코드를 다운로드해 적립에 성공했다. 

한국은행은 4월 20일부터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장기적인 목표는 2020년 동전 없는 사회를 도입하겠다는 거다. 방식은 간단하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현금으로 결제한 후 잔돈을 선불카드에 적립해주는 방식이다. 현재 편의점 CUㆍ세븐일레븐ㆍ위드미, 이마트, 롯데마트 등 전국 2만3350개 매장에서 잔돈 적립이 가능하다. 

사업의 효과가 나타난 걸까. 올해 상반기 시중에 유통된 100원짜리 동전이 19년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95억8500만개에서 95억1600만개(6월 기준)으로 6900만개가 줄었다. 100원짜리 동전뿐 아니라 10ㆍ50ㆍ100ㆍ500원 동전의 유통도 모두 줄었다. 금액으로 따지면 68억2000만원에 이른다. 

이런 추세는 신용카드와 전자금융결제가 확산되면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시범사업을 실시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동전 사용과 휴대에 따른 불편을 줄이고, 동전 유통과 관리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한다는 취지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화폐 제조 비용으로 1503억원을 썼다. 이중 동전 제조비용은 537억원. 유통과 관리에 드는 비용을 더하면 액수는 더 늘어난다. 동전 없는 사회가 실현되면 한국은행으로선 큰 비용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

시범사업 3개월, 반응은 ‘글쎄’ 

하지만 한편에서는 시범사업이 동전 제조비용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업에 미진한 점이 숱하게 많아서다. 가장 큰 걸림돌은 유통업체별로 적립가능한 선불카드가 다르다는 점이다. CU에서는 ‘T머니, 캐시비, 하나머니, 신한FAN머니’, 세븐일레븐에서는 ‘캐시비, 네이버페이포인트, L.POIT’, 위드미ㆍ이마트에서는 ‘SSG머니’, 롯데백화점ㆍ마트ㆍ슈퍼에서는 ‘L.POINT’로만 적립이 가능하다. 적립금도 선불카드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시범사업에 들어간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이용실적이 저조한 이유다. 

실제로 6월 1일부터 10일까지 일평균 이용실적은 3만7000건에 그쳤다. 전체 매장이 2만3000여개인 점을 감안하면, 매장당 하루 1.58건인 셈이다. 한국은행 측은 “직원교육과 고객홍보 여부에 따라 매장간 차이가 크다”면서 “하루에 적립횟수가 204건인 매장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은행도 현재 시스템의 불편함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내년을 목표로 잔돈을 고객계좌로 직접 입금하는 방식을 추진할 계획을 밝힌 이유다. 문제는 이마저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는 점이다. 아직 참여할 은행도 모집하지 않았다. 향후 유통업체, 금융결제원, 은행 등 이해관계자들이 수수료를 조율하는 과정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동전을 통합계좌로 입금하기 위해서는 전산 통합과정이 필요하다”면서 “기존 입출금카드를 활용할지 새로운 카드를 만들지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내년 시행이 목표라면 이미 논의가 들어갔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동전 없는 사회에 대한 거부감도 풀어야할 숙제다. 현금결제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노점상이나 재래시장 등 소액결제가 많은 곳에선 여전히 동전 사용이 잦다.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청소년, 고령층, 경제취약계층은 현금결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동전 유통이 줄어든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않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동전을 아예 없애는 게 아니다”면서 “동전 유통을 줄여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이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의 모호한 목표도 문제다. 사업의 이름은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이지만 동전을 아예 없애지는 않는다는 방침이다. 그렇다면 동전을 어느 정도까지 줄일 건지, 어디까지 허용할 건지 기준이 세워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기준도 마련되지 않았다. 한국은행의 기대효과처럼 은행들이 동전 보관, 회수 등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동전을 유통하지 않는다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시범사업 3개월을 맞은 ‘동전 없는 사회’, 2020년엔 완성될 수 있을까. 넘어야할 산이 유독 높아 보인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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