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에일리언 : 커버넌트 ❶

융합과 통섭의 시대라면서 ‘순수’를 고집하는 건 아이러니하다. 문제는 순수와 파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순수를 추구하면 증오와 파괴가 따라온다는 거다. 웨인랜드 회장이 탄생시킨 순수하고 완벽한 인간 데이비드. 그는 순수하지 못한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말살한다. 
 

‘프로메테우스’에 이은 리들리 스캇 감독의 ‘에일리언:커버넌트(Alien:Covenant)’는 온통 하얗게 시작한다. 순백과 순수가 화면을 압도한다. 족히 축구장만한 순백의 드넓은 홀에서 피터 웨인랜드 회장과 인공지능 데이비드가 지극히 정제된 대화를 나눈다. 웨인랜드 회장과 데이비드 모두 순백의 옷을 입고 있다.

드넓은 홀에는 하얀 그랜드 피아노 한 대와 역시 하얀 대리석 조각 하나만이 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불후의 명작 ‘다비드(David) 상像’이다. 모든 것이 끔찍하도록 하얗다. 투명한 통유리 창 밖으로는 에비앙 생수같은 투명한 호수가 거울처럼 펼쳐진다.

르네상스 시대의 상징적 조형물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의 등장이 흥미롭다. 르네상스는 신의 지배에 의해 인간이 말살됐던 암흑의 중세시대를 극복하고 인간과 인간성의 회복을 꿈꾸었던 시대다. 미켈란젤로는 그 완벽한 인간상을 다비드 상을 통해 구현했다. 웨인랜드 회장은 자신이 드디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처럼 가장 순수하고 강하고 가장 지적인 완벽한 인간을 창조했다고 자부한다. 
▲ 데이비드는 다비드 상을 보며 '다비드'를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 완벽한 피조물은 “이름을 선택하라”는 주인 웨인랜드 회장의 제안에, 다비드 상을 보며 ‘다비드’를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한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조물주인 웨인랜드 회장 앞에서 왕궁의 시종이나 귀족의 집사처럼 대단히 정제된 공손함을 보이지만 얼굴에는 묘한 냉소가 스친다. 르네상스 시대가 창조주인 신의 지배를 거부했듯이 자신도 자신의 창조주인 웨인랜드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온순함 속에 차가운 냉소를 담은 인공지능 로봇 데이비드를 연기한 마이클 패스밴더의 연기가 압권이다.

웨인랜드 회장은 데이비드에게 ‘바그너’의 곡 연주를 부탁한다. 웨인랜드 회장은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열렬하다 못해 거의 광적인 애호가였던 히틀러를 닮았다. 우생학優生學에 입각한 순수 아리안(Aryan) 혈통의 최고의 인류를 탄생시키고 싶어했던 히틀러의 못다 이룬 꿈을 웨인랜드 회장이 인공지능 데이비드를 통해 비로소 완성한 셈이다. 웨인랜드 회장은 너무도 순수하고 완벽한 인간 데이비드를 탄생시키고 히틀러에게 데이비드를 봉헌하듯 데이비드에게 바그너의 연주를 부탁한다.

순백색 그랜드 피아노에 앉은 순백색 복장의 데이비드는 바그너 최고의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니벨룽겐의 반지’ 중에서 ‘신들의 발할라 입성’을 연주한다. 게르만 족의 전설에서 용감한 전사戰士는 죽어서 ‘발할라(Valhalla)’라는 이상향에서 영생불사의 신으로 태어난다. 데이비드의 ‘신들의 발할라 입성’ 선곡과 연주는 웨인랜드 회장이라는 인간의 피조물인 자신이 영생불사의 신의 세계에 입성했다는 선언과 같다. 

웨인랜드 회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의 피조물의 완벽한 바그너 연주를 감상하지만, 데이비드는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나는 영원하다’는 도발적인 내레이션을 읊는다. 데이비드의 얼굴에 냉소와 조롱이 스친다. 이렇게 탄생해 우주로 떠난 데이비드는 곧 인간을 포함한 모든 나약하고 순수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가차없이 파괴하고 말살하기 시작한다.

순수와 파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순수함을 추구할수록 순수하지 못한 것은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순수를 위해 제거하고 지워버려야 할 것이 된다. 순수함은 그렇게 증오와 파괴를 수반한다. 순수함에 꽂혀버린 순수했던 영혼 히틀러는 순수를 위해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700만 ‘불순물’을 제거한다.
▲ 문재인 대통령이 입양한 '잡종' 유기견이 '퍼스트독'이 돼 이슈가 됐다.[사진=뉴시스]
대통령의 검은색 잡종 유기견 입양이 작은 화제다. 검은색 잡종이라 버려지고 또한 재입양도 난망難望했던 병든 강아지가 대한민국의 ‘퍼스트 독(First Dog)’이 됐다니 사변事變에 준하는 사건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 단지를 집사執事 한명씩 끌고 활보하는 애완견들은 대개 순백의 순종들이다. 순백의 순종들임에도 아파트 단지 곳곳에 똥을 싸지르며 산책한다. 생김새를 논외로 한다면 ‘똥개’와의 결정적 차이를 찾기 어렵다. 

모두 입만 열면 융합融合의 시대, 통섭統攝의 시대, 하이브리드(hybrid) 시대를 부르짖지만 모두 여전히 히틀러같은 ‘파괴적이고 난폭한 순수’를 고집한다. 사회 곳곳에 뿌리박은 우리의 유별난 ‘순혈주의’는 여전히 그 기세가 등등하다. 이질적인 것은 가차없이 타도와 제거, 혹은 배제의 대상이 된다. 얼굴의 잡티처럼 레이저로 지져 없애고 마는 거다.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이다. 우리의 유별난 ‘순수 사랑’이 사람도 개도 잡종이 발붙이기 어려운 세상을 만든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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