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싹 바꿔!” 반전드라마 쓸까
“이름도 싹 바꿔!” 반전드라마 쓸까
  • 성태원 대기자
  • 호수 253
  • 승인 2017.08.30 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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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명 바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김준기 회장이 그룹 해체 위기를 딛고 새판 짜기에 돌입했다.[사진=뉴시스]
김준기(73) 동부그룹 회장이 46년간 써왔던 ‘동부’라는 브랜드를 연내에 ‘DB’로 바꾸기로 했다.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내린 결단이다. 그는 한때 해체 위기까지 몰렸던 동부그룹을 가까스로 살려 놓았다. 그 와중에 64개(2014년)였던 계열사는 24개(2016년 말)로 3년 새 40개나 줄었다. 국내 재계 10위권을 굳세게 지켰던 창업 1세 기업인 김준기가 막판에 자신의 사업 드라마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

지난 3년여 동안 혹독한 구조조정을 견뎌내야 했던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재기의 날개를 펴고 있다. 경영난과 유동성 위기로 한때 그룹 해체 단계까지 내몰렸으나 이제 한숨을 돌리면서 동부의 새로운 틀 짜기에 나선 느낌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46년 동안 써온 ‘동부’라는 그룹명을 ‘DB’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김 회장은 25세였던 1969년 동부그룹 모체인 미륭건설(동부건설)을 창업했다. 군에서 제대하고 대학 재학 중이던 1968년 미국을 방문했던 게 창업의 계기가 됐다. 자본금 2500만원과 직원 2명으로 출발했던 그는 2년 후인 1971년 동부고속을 설립했다. 이때부터 쓰기 시작한 ‘동부’라는 상호가 마침내 그룹명으로 발전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창업 후 48년간 사업을 해온 김 회장에게 46년간 쓰였던 ‘동부’라는 상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이제 그것과 결별하게 됐으니 무척 섭섭하고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하지만 48년이란 세월동안 사업을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기업인 김준기에게 ‘DB그룹’은 적지만 새 출발의 기회를 제공할 것임에 틀림없다.

동부그룹 주요 계열사인 동부화재는 8월 22일 이사회를 열고 사명 교체 안건을 의결했다. 새 회사명은 ‘DB손해보험’으로 정했다. 당초 ‘DB화재’로의 교체설이 힘을 얻었으나 ‘DB손보’란 이름이 고객들에게 더 친근감이 있어 보인다는 점 때문에 결국 후자로 낙착됐다는 후문이다.

앞으로 동부생명, 동부증권, 동부저축은행을 비롯한 금융 계열사와 동부대우전자, 동부하이텍, ㈜동부 등 제조 계열사들도 차례로 회사명을 DB로 바꿀 계획이다. 사명 변경 절차는 올 연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DB’라는 상호는 내부 공모를 통해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DONGBU)’라는 상호의 영문 이니셜을 조합한 것으로 동부를 연상시키는 한편 외적으로도 이름을 바꾸는 효과를 노린 것 같다. 기업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재계에 이런 사례는 많이 나타났다.

‘럭키금성그룹’이 ‘LG그룹’으로, 선경그룹이 ‘SK그룹’으로, 한국통신이 ‘KT’로, 제일제당그룹이 ‘CJ그룹’으로, 고려화학그룹이 ‘KCC그룹’으로 바뀐 게 좋은 예다. 하지만 이들과 동부는 경우가 서로 좀 다르긴 하다. 동부는 그룹 해체 위기 끝에 이름을 바꾸었고, 또 바꿀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 있었다.

동부그룹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동부’라는 상표권을 보유한 모태기업 동부건설이 사모펀드 운용사인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되자 사명 변경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동부라는 상호를 그냥 사용하려면 매년 동부건설에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의 사용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키스톤 측은 오는 11월부터 ‘동부’에 대한 상호 사용료 부담을 요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동부건설 매각 전에는 상호 사용료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낼 수밖에 없는 사정에 놓이고 말았다. 2015년 국세청이 상호 사용료를 받지 않아 회사 이익을 축소시켰다며 동부건설에 미납된 법인세에 가산세까지 붙여 수백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이번 상호 변경을 통해 그룹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한편 구조조정 과정에서 흐트러진 그룹 분위기도 쇄신하려 한 것 같다. 2014년부터 본격적인 그룹 구조조정에 내몰렸던 그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과 피 말리는 작업 끝에 애지중지하던 동부건설, 동부제철, 동부팜한농 등 주요 계열사들을 남의 손에 넘겨주고 말았다. 동부건설은 모태기업이고 동부제철은 한때 철강왕을 꿈꾸며 밀어붙였던 사업이었다.

46년 전통의 사명 변경 속사정

1조3000억원이란 큰돈을 부어넣으며 전력투구했던 동부제철의 전기로 열연공장 사업이 실패하면서 동부제철이 경영난을 겪게 됐고 이는 부메랑이 돼 그룹 전체를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2015년 초 신년사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땀 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며 격한 감정을 토로한 바 있다.

구조조정으로 동부 계열사는 2014년 64개에서 지난해 말 24개로 3년 새 40개나 줄었다. 숫자로만 보면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재계 순위도 통상 재벌로 치는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00년대 초반 10위권으로 진입했고 2005년엔 13위까지 올랐다.

당시 김 회장은 전경련 부회장을 맡아 재계 리더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4년까지도 17위를 유지했지만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2015년 20위로 밀려났고 2016년엔 아예 3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내로라는 기업인 김준기의 48년 사업 역사에서 최근 3~4년이 가장 자존심이 상한 시기였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업 경험과 재산을 총동원해 동부가 침몰하는 것만은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비록 재계 순위가 밀려 자존심이 상하고 계열사 급감으로 그룹 덩치는 확 줄었지만 기사회생의 터전을 마련하는 수완은 발휘한 것 같다는 게 재계 평가다. 지난해 4월 동부팜한농을 LG화학에 매각하면서 혹독했던 구조조정은 거의 일단락된 분위기다.

그 와중에 매각대상이던 동부하이텍의 실적이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크게 개선된 것은 그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고 있다. 그가 종합전자회사를 꿈꾸며 2013년 인수했던 동부대우전자의 투자자 교체(재무적 투자자→전략적 투자자) 성공 여부가 막바지 핫이슈로 떠오르긴 했다.

이 회사는 적자지만 김 회장의 경영권 유지 의지가 무척 큰 것으로 알려져 현재 밀고 당기고 있는 투자자 교체 작업의 결말이 주목된다. 결과에 따라 ‘김준기의 뉴 DB그룹’의 밑그림이 대충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는 동부화재(DB손보)를 중심으로 한 금융이란 밑바탕에 동부하이텍, 동부대우전자 등과 같은 제조업을 가미해 ‘금융ㆍ전자 뉴 DB그룹’으로 재기를 꿈꾸는 것 같다. 미륭건설 창업 이후 사세를 쭉쭉 키우며 왕성하게 사업을 벌였던 그는 최근 3~4년 동안 빚잔치 끝에 DB그룹으로 사업을 축소 재편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면에서는 2세(장남 김남호 동부화재 상무ㆍ43세) 승계 등에 대비해 자신의 마지막 역량과 자산을 다 쏟아 붓는 느낌마저 든다. 사업의 단맛과 쓴맛을 다 맛보면서 반세기 가까이 사업을 꾸려 온 경험이 뉴 DB 구축에 저력이 되고 있다.

뉴 DB의 밑그림 ‘금융+전자’

그는 현재도 활동 중인 창업 1세다. 최근 신격호(95) 롯데 총괄회장이 2선 후퇴하면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국내 오너 1세 기업인이 됐다. 그는 한국의 산업근대화 60년 역사에서 독특한 발자취를 남긴 기업인이다. 국내 오너 1세를 대표하는 이병철, 정주영 회장보다 30~40년 늦게 창업해 20~30년 이상 그들과 함께 활동했다. 재계에서 오너 4세 회장(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까지 등장했지만 그는 지금도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해방 전후 태어나 산업화가 본격화됐던 1960년대 말 창업해 앞선 1세 기업인들과 경쟁하며 유일하게 10대 그룹을 일궈낸 인물이다. 김준기의 사업 드라마는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드라마 후반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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