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들이 쏟아낸 법안 어찌 됐나

사건ㆍ사고가 터진다.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그곳으로 쏠린다. ‘금배지’를 단 국민의 ‘대리인’들은 유명무실한 제도를 뜯어고치고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며 관련법 제ㆍ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이름만 가리면 누구 것인지 모를 정도로 빼다 막은 법안들. 결국 국회 문턱도 넘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굵직굵직한 사건ㆍ사고를 기점으로 발의된 관련 법안과 그 결과를 살펴봤다.

▲ 풀리지 않는 숙제일수록 발의되는 법안이 많지만 가결률은 낮다.[사진=뉴시스]

2010년 1월, 한동안 잠잠하던 구제역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경기도 포천을 시작으로 경북 안동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구제역이 발생했다. 당시 살처분된 가축만 350만 마리. ‘먹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하늘을 찔렀고, 동시에 돼지고기 가격도 폭등했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김영우 의원(당시 한나라당)을 필두로 12명의 국회의원은 그해 4월, 가축전염병예방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 해당 지역의 직접적인 손실은 물론 간접적인 영업 손실까지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2011년 3월에는 김호연 의원(당시 한나라당) 등이 ‘가축 매몰지 사용제한 기한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결과적으로 이 법안들은 모두 소관위(농식품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상 최악의 구제역 파동이 일었던 18대 국회에서만 2010년 1월 이후 21건의 구제역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된 건 단 2건뿐이다. 가결률은 9.5%에 불과했다.

19대 국회에서도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를 포함한 다수의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대부분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폐기 처리됐고, 지난해 개원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안건들 역시 계류 중이다. 해마다 가축전염병에 벌벌 떨면서도 정작 관련 법안들은 여유만만이다.

구제역 파동이 주춤할 때 터진 대규모 정전 소동 때도 금배지들은 호들갑만 떨었다. 2011년 9월 15일 블랙아웃 직전까지 몰렸던 전력부족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전력거래소는 전국의 전기를 돌아가면서 차단했다. 이 사태로 한국전력거래소가 10년간 예비전력량을 은폐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여ㆍ야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전력거래소가 이원화된 것이 정전사태의 불씨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전과 전력거래소를 통합하거나 전력거래소의 전력계통 운영을 한전에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태근 의원(당시 한나라당) 등 25명은 이런 내용을 담은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10월 5일 발의했다. 하지만 18대 국회가 문을 닫으며 관련 법안은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선 노영민 의원(민주당)은 폐기된 이 법안을 보완해 다시 발의했다. ‘전력계통 운영 경험이 풍부한 한전이 업무를 담당하도록 한전의 사업 내용에 전력계통 운영을 추가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같은 내용을 골자로 전정희 의원(민주당)이 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대안반영폐기 됐다. 관련 법안 3건 모두 국회에서 낮잠만 쿨쿨 자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셈이다.

국민 관심 높을수록 발의 많지만…

2011년 4월 알려지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 문제도 다르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목을 달고 발의된 법안은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총 16건이다. 19대 국회에선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률안’ ‘피해자 구제 특위 구성결의안’ 등 4건의 발의됐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규제를 위한 결의안(심상정 의원 등 26명)’만 수정가결되고 나머진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동시에 폐기됐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피해자들의 100억원대 집단 소송으로 다시 국민적 관심을 받자 금배지들이 움직였다. 20대 국회에서 여ㆍ야 원내대표 3명을 대표로 289명의 국회의원이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안’을 발의했다.

올해 6월 26일엔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 등 21명이 피해발생일로부터 20년이던 기존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를 25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 역시 소관위에 머물러 있다. 가습기 살균제 관련 법안 중 원안가결된 건 ‘국정조사계획서 승인의 건’ ‘국정조사결과보고서 채택의 건’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안(대안)’ 3건뿐이다. 가결율 25%. 나머지 법안들은 대부분 폐기됐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선 충격적인 사건ㆍ사고가 더 많았다. 그중에서도 전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발생했다. 현재까지도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우리 사회에 많은 공분과 숙제를 안긴 사건이다.

당연히 금배지들이 제스처를 취했다. 발의된 의안 건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참사 직후인 4월 28일 김영환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130명의 의원이 발의한 ‘세월호 침몰사고 신속구조, 피해지원 및 진상규명을 위한 결의안’을 시작으로 19대 국회에서 47건, 20대 국회에서 29건, 총 76건의 세월호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이중 가결된 건 25건뿐. 그중 18건이 선체조사위 또는 특위 위원 선출 안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체의 9.2%만 가결된 셈이다.

▲ 세월호 관련 76개 발의 법안 중 위원 선출안을 제외하면 통과된 건 7건뿐이다.[사진=뉴시스] ·

진상규명이나 피해구제 관련 안건은 회기가 마무리되며 대부분 임기만료폐기 또는 대안반영폐기 됐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29건 중 20건은 계류 중이다.

세월호 참사가 제대로 수습되지 못하고 있던 2015년 5월엔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 첫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보건당국은 메르스 감염률이 높지 않다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메르스는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번졌고 그해 12월 종식 선언을 하기까지 총 186명이 감염됐다. 국내에서 처음 발병한 메르스로 38명이 사망, 20.4%의 치사율을 기록했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국민건강이 위협받자 금배지들은 늘 그렇듯 법안을 쏟아냈다. 2015년 5월부터 12월까지 발의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만 무려 38건이다. 대부분 감염병 관리 체계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기존의 감염병 관리 제도를 개선ㆍ보완하는 내용이었다.

인기 경쟁하듯 법안을 발의한 탓에 실제 가결된 안건은 2건(5.3%). 나머진 대안반영폐기(25건) 됐거나 19대 국회와 함께 임기만료(11건)되며 폐기됐다. 2015년 12월 23일 보건당국이 메르스 종식을 선언하자 들끓던 금배지들의 관심도 식었다.
국회서 낮잠자는 법안들

최근엔 살충제 달걀이 문제다. 박인숙 의원(바른정당) 등 10명은 지난해 12월 9일 ‘대다수 국민의 매일 섭취하는 달걀 유통에 대한 보다 철저한 위생관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축산물 위생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보건복지위에 계류 중이다.

속출하는 법안 수에 비해 가결률이 현저히 낮은 건 반드시 그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보다 얼마나 발의했는지 그 숫자에만 초점을 맞춘 탓이다. 국민의 대리인이 국민의 안전이 아닌 의원 자신들의 인기를 위해 철학 없는 법안을 쏟아낸다고 지적받는 이유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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