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외교에 능한 유능한 왕이었다”
“고종은 외교에 능한 유능한 왕이었다”
  •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 호수 253
  • 승인 2017.08.31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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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人sight | 고종 재평가 주장하는 황태연 동국대 교수

▲ 대한제국 황실 가족들. 왼쪽부터 영친왕, 순종, 고종, 순종효황후, 덕혜옹주.[사진=뉴시스]

황태연(62) 교수는 명성황후 시해에 일본 천황까지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국가범죄라는 것이다. 명성황후를 칼로 찌른 일본군 미야모토 소위의 범행이 당시 일왕에게까지 보고됐다는 것이 근거다. 일본은 이 국가범죄를 은폐하려 미야모토를 사지로 보냈고, 전사했지만 야스쿠니에 안치하지 않았다.

“고종은 유능한 왕이었어요. 외교를 못한 게 아니라 외교로 어렵게 국권을 유지한 겁니다. 군대도 없는 왕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살아남았죠. 아관망명 당시 러시아공사관은 고종의 1차 국내 망명지였고, 환궁한 덕수궁은 2차 국내 망명지였습니다. 러시아와 일본 간 세력 균형이 깨지면서 국제법에 의해 치외법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덕수궁에서 결국 일본의 포로 신세가 되고 말았죠.”

황태연 동국대 교수는 고종은 자신을 불태워 죽이려 일본군이 덕수궁 전각에 불을 지르고 시종무관 세명을 죽였을 때 방화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짐짓 모르는 체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실은 고종이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친서에 드러나 있다. “당대에 고종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똑똑했고 왕인 만큼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죠.”

사료를 바탕으로 대한제국을 재조명한 황 교수는 “‘비운의 왕’ 고종은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면서 “사상의학상 소음인 체질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고종이 왕세자와 왕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을 ‘아관망명’으로 재정의한다. 고종이 항일독립을 위해 ‘국내망명정부’를 수립한 사건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독살설이 파다했던 고종의 의문의 죽음은 3ㆍ1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앞서 명성황후 시해 후 일어난 국민적 공분은 대한제국 창건으로 이어졌다. 고종의 근위세력이었던 미국인 헐버트는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국왕은 왜인들에게 한번도 굴한 적이 없다. 왕권의 신성함을 더럽힌 적도 없다. 비록 휘어진 적은 있어도 부러진 일은 없었다. 목숨을 걸고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고 유럽의 모든 정부에 국권을 되찾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결국 강제로 퇴위 당해 옥좌에 홀로 버려졌다.’

고종에 대한 감시를 맡았던 일본 서기관은 이런 일기를 남겼다. ‘고종은 재주와 지략이 너무 많았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았다. 각 방면에 능했고 말솜씨 등 재주가 하늘의 재주를 빼앗을 만큼 뛰어났다. 유능한 신하들만 있었다면 이 총명한 왕이 국정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황 교수는 대한제국은 근대국가였다고 말했다. 고종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중추원이 대의제 기능을 했고 과거 상놈들도 여기에 많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공무 담임권을 모든 신분에 개방한 겁니다.”

✚ 고종 같은 왕을 역사에서 찾는다면 누가 있습니까?
“서경에 나오는 중국 은나라 고종입니다. 고종이라는 시호는 나라를 중흥시키고 강토를 넓힌 왕에게 줬습니다. 고종은 광개토왕 이래 영토를 최대로 넓힌 왕이에요. 실록을 편찬한 사가들이 고종이라고 시호를 정한 배경이죠. 독도와 간도가 고종 때 확보됐습니다. 간도는 청나라에 맞서 싸워서 확보했고 외교 문서로 남겼습니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이 멋대로 내줄 수 있는 땅이 아니에요. 을사늑약은 국제법에서 강박에 의해 체결된 당연 무효의 조약으로 꼽히는 단골 사례입니다.”

✚ 동학 농민군의 봉기도 고종의 밀명으로 일어났습니까?
“전봉준이 끝내 고종의 밀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는데 일본군이 동학군 공문서 틈에서 친서를 찾아내 감식까지 해 고종의 육필임을 확인합니다.”

▲ 황 교수는 "대한제국은 근대국가였다"면서 "고종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중추원이 대의제 기능을 했다"고 말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조선 중기 정여립 역모 사건 당시 ‘이씨는 망하고 정씨가 흥한다’는 예언서 ‘정감록’이 만들어져 널리 퍼진다. 이런 정도령 신앙은 그 후 자취를 감췄다. 도리어 조선 왕조를 받드는 신존왕주의가 대세가 된다.

황 교수는 이에 대해 “숱한 민란을 겪으면서 ‘권력귀족’의 전횡과 관리들의 수탈이 임금 뜻이 아니라 양반 탓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군만민 사상이죠. 양반ㆍ상놈 차별을 없애려면 임금을 살리고 높이는 존왕개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임금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죠.”

✚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도 고종의 밀명에 따른 것인가요?
“안중근이 황제의 칙령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총지휘자라고 말한 김두성金斗星도 실은 고종입니다. 두성은 북두칠성인데 안중근의 배에 일곱개의 점이 있었고 자가 응칠입니다. 자신을 북두칠성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금은 황금빛 북극성을 가리키는데 임금을 뜻합니다.”

반면 고종의 조직이었던 독립협회는 훗날 대한제국에 대한 변란세력으로 전락했고 그 주역인 서재필은 일본 정부에 밀고 행각을 하는 밀정으로 변절했다.

“러시아 황제에게 한 고종의 지원 요청을 서재필이 일본 공사관에 알립니다. 외교 기밀을 빼돌려 일본 공사에게 넘긴 게 일본 공사관 기록에 그가 밀고했다고 남아 있어요.”

✚ 왜 국사학자들이 대한제국 역사 기술의 오류를 바로잡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식민지 프레임, 식민사관에 절어 있기 때문입니다. 식민사관적 개념은 많이 극복했는지 몰라도 인식 틀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역사의 흐름을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일제의 시각에서 보는 겁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대한제국의 명성황후가 왕궁 안에서 일본군과 폭도들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된 후 불태워진다. 을미왜변. 이종각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에서 을미왜변은 일본 군부의 군사작전이었고 명성황후 살해범은 경성수비대 소속 미야모토 다케타로 소위였다고 기술했다.

사건 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일본 정부 및 군부 최고위층에게 수시로 보고됐고 그가 사망 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지 못했다는 것 등이 근거다. 일본 군부와 정부가 미야모토의 발설을 우려해 그를 의도적으로 당시 위험지역이었던 대만에 파견했고 전사 후엔 그의 존재를 은폐하려 야스쿠니에 안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명성황후 시해는 미야모토를 시켜 일본 군부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인가요?
“미야모토의 범행은 천황에게도 보고됐으니 명성황후 시해는 천황도 가담한 범죄입니다. 동학군도 엄청나게 죽인 ‘사람 백정’ 미야모토를 야스쿠니에 안치하지 않은 건 이웃나라 왕비를 자국 군인이 죽였다는 게 알려졌을 때 외교 분쟁이 빚어질 걸 우려해서죠. 살해범으로 지목된 낭인들과 대원군은 각각 책임을 회피하려 일본과 친일파가 내세운 들러리였습니다.”

✚ 건국절 논란은 어떻게 봅니까?
“개천절로 족합니다.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이든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이든 건국절이 될 수 없습니다. 임시정부 헌법엔 구황실 우대조항이 있었는데 현재의 대한민국과의 연속성을 따진다면 오히려 대한제국 창건을 건국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그 당시 민국이라는 국호를 신문 등이 사용했습니다. 국채 발행도 대한민국으로 했어요. 광복 후 건국했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됩니다. 광복이란 나라의 영광을 되찾은 것을 말합니다. 광복 이전에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 성립하는 이야기죠. 그러니 광복 후 건국했다는 건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출범 때 이런 사실들을 두루 헤아려 건국절로 정하지 않은 겁니다.”

✚ 상해 임정 출범 당시 국민과 영토를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그게 일본의 시각입니다. 우리는 빼앗겼을 뿐 국민도 영토도 포기한 일이 없습니다. 임정을 유지했고 비밀리에 세금도 냈어요. 세금 영수증을 가문의 영광처럼 보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 진정한 극일의 길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한류가 답입니다. 혈통상 뛰어난 우리 국민의 문화적 기량으로 문화적ㆍ경제적으로 우리가 앞서면 과거 조선 통신사가 일본서 환대받던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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