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유감

혹여 눈에 띌까 은밀하게 주고받던 물건. 공공장소에서 또렷한 목소리로 단어 하나를 온전히 발음하지 못하던 물건이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깔창 생리대 논란 이후 또 한번 생리대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번엔 유해물질 검출 의혹이다. 전혀 다른 사건인데, 어째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가격’이다. 하지만 드러난 문제 뒤엔 더 큰 숙제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 생리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딱히 해결되는 것도 없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할인 행사도 많이 하고 다른 제품보다 저렴해서 몇 년 전부터 애용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돈 몇 푼 아껴보자고 제 몸에 몹쓸 짓을 한 거 같아요.” “사실 성분표를 봐도 잘 모르겠는데,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죠. 발암물질이 검출됐다고 거론되는 제품들은 일단 제외하고 있어요.”

8월 28일 한 대형할인마트의 생리대 코너. 그곳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하나같이 꼼꼼하게 생리대를 고르고 있었다.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오가닉’ ‘순면’ 코너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유독 많았다. 그때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기자에게 판매직원이 다가와 “1+1 행사를 한다”면서 한 제품을 추천했다. 그 제품 역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제품 중 하나. 기자의 발걸음도 괜스레 오가닉 코너로 움직였다.

생리대가 또 한번 이슈의 복판에 섰다. 지난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생리대 대용으로 사용한다는 이른바 ‘깔창 생리대’ 논란이 불거진 지 1년 만이다.

그렇다면 당시 논란이 일었던 생리대 가격과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 문제는 어떻게 됐을까.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저소득층 지원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2017년 예산을 정하며 ‘저소득층 청소녀女 위생용품 지원’ 몫으로 30억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가격 논란 등 생리대를 둘러싼 문제는 여전히 많다. 지금이라도 생리대를 검은 봉지에서 꺼내 공론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생리대는 왜 비싼가 =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유한킴벌리는 3년 주기로 가격을 인상해왔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정위가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있는 지배사업자를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가격 책정행위는 규제하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다 최근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 결정 남용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해준다면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공정위의 역할에 변화가 있을까.

가격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

생리대 가격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당업체들은 보란 듯이 2~3년 간격으로 가격을 올려왔다. 그 결과, 2009년 88.45포인트였던 소비자물가지수(2015=100 기준)가 2017년 7월 102.86 포인트로 16.3% 상승하는 동안 생리대 물가지수는 79.05포인트에서 99.27포인트로 25.6% 올랐다.

시장점유율 57%를 차지하고 있는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가격은 상승폭이 더 크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2009년 7651원이던 화이트 생리대(NEW시크릿홀 울트라 날개 중형 36개)는 올 7월 기준 1만299원으로 26.5% 올랐다. 이러니 소비자들은 당연히 생리대 가격이 비싸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거다.

생리대는 개인의 문제인가 = “생리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40여년 동안 사용해야 하는 제품이다. 가격 억제 품목에 넣어 지속적으로 가격을 모니터링 해야 한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권익ㆍ안전연구실장은 가격을 포함한 생리대 논란이 생리대를 그저 개인의 선택으로 간주하는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생리대 문제는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미국에선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이 생리대 무상지급을 위한 법안을 지지하면서 “생리대는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라고 한 발언이 화제가 됐다. 관련 법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돼 지난해 6월부터 뉴욕의 공립학교ㆍ교도소ㆍ노숙자 보호소 등에서 생리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 생리대 가격은 소비자물가보다 높은 폭으로 상승했다.[사진=뉴시스]

생리대를 공공재로 바라보는 인식은 세계 곳곳으로 확대되고 있다. 케냐는 2004년 이른바 ‘탐폰세(생리대에 붙는 세금)’를 완전히 철폐한 데 이어 2011년부터 연간 300만 달러(약 35억원)를 들여 저소득 지역 학교에 생리대를 지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탐폰세 폐지 요구가 잇따르자 2016년부터 개별 회원국이 따라야 하는 부가세 기준에서 탐폰세를 전면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도 2004년부터 생리대를 부가세 면세 대상으로 지정했지만 가격은 가격대로 올랐다.

생리대는 안전한가 = 최근 소비자들은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하면서 생리양이 줄고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졌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자 해당 업체는 릴리안 생리대의 생산과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8월 28일부터는 환불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생리대 논란이 더욱 공분을 사는 건 안전성도 안전성이지만 그 밑바탕에 가격 문제가 깔려있다는 데 있다. 릴리안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현재 H&B스토어에서 A사의 생리대 1팩(중형ㆍ날개ㆍ8개) 가격은 6000원이다. 판매가 중단되기 전 릴리안(중형ㆍ날개ㆍ16개) 1팩은 5600원이었다. 개당 가격으로 따지면 A사의 제품이 333원으로 350원인 릴리안보다 저렴하지만, 릴리안의 경우 거의 1년 내내 1+1 행사를 했다. 그렇게 계산하면 개당 가격은 156원으로 낮아진다. 절반으로 떨어진 가격, 그게 바로 릴리안의 경쟁력이었다.

직장인 김지은(가명ㆍ28)씨는 몇 번 유기농 생리대를 주문해 사용하다가 가격에 부담을 느끼고 지난해부터 릴리안으로 바꿨다. “H&B스토어에 갔다가 릴리안 생리대가 할인 행사를 하기에 그때부터 릴리안을 사서 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싸더라도 그냥 유기농 생리대를 쓸 걸 그랬다.” 김씨가 사용하던 유기농 생리대는 개당 가격이 700원에 육박한다. 결과적으로 가격과 안전성을 맞바꾼 셈이 된 거다.

물론 이번 생리대 논란은 일부 제품의 문제다. 그렇다고 생리대 관련 논란을 일부 제품의 문제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끊이지 않는 논란에도 해결되는 건 없는 생리대 문제. 한번도 드러내놓고 속 시원히 얘기하지 않은 탓이 크다. 꼬인 실타래를 풀어버릴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김미란ㆍ이지원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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