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재기하는 길

▲ 국민은 루이 암스트롱의 걸쭉한 목소리를 흉내내는 안철수를 기대하지 않는다. 안철수의 적敵은 안철수다.[사진=뉴시스]
일제 강점기를 그린 영화를 보면 대부분 감독이 너무 흥분한다. 적국인 일본인보다 더 악랄한 한국인 배신자가 꼭 등장한다. 일본과 싸우고, 한쪽에서는 우리끼리 치고 받으니 영화가 온통 뒤죽박죽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게 누워서 침 뱉기식의 자학성 강한 ‘국뽕(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 영화는 없는 것 같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의 흥행 차이는 한마디로 감정의 절제가 아닌가 싶다. 군함도에서 강제노역을 당했던 생존인물들은 조선 징용노동자가 탈출하는 장면에서 고개를 흔든다. 감독이 너무 흥분하니 관객이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철수작전을 다룬 ‘덩케르크’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관한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제3자적인 관점에서 감정을 최대한 억제한다. ‘택시운전사’는 운임 10만원에 이끌려 살육의 현장에 들어간 김만섭에게 연민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덕분에 흥행가도를 달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재기할 수 있을까. 결선투표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과반득표(51.09%)를 달성했지만 그의 아슬아슬한 승리는 바람 앞 촛불 같은 ‘안철수 야당’의 시련을 상징한다. 지난 대선 전 20%대였던 국민의당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5%대로 추락했다. 걱정되는 것은 그의 감정과잉이다. 대표 수락연설에서 안 대표는 눈물을 훔칠 만큼 감격해 했는데, 정작 그의 연설을 듣는 중진들은 내내 덤덤했다. 아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는 무엇엔가 쫓기는 것처럼 너무 서둘러 정계에 복귀했다. 아마 자신이 만든 당에서 점차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듯싶다. 그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한 국민에게 너무 큰 실망을 줬다. 의사 출신으로 성공한 벤처기업인의 강점을 살려 낙후된 정치에 새 피를 수혈하기를 바랐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창의성을 보여주는 대신 의사라는 직업인의 약점인 지나치게 완벽하고 좀처럼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편으로는 기업인 출신의 리더십보다는 이해타산 앞에서 냉정하게 돌아섰다. 수없이 떠나간 그의 측근들을 보면 그는 정치와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의 등장은 기득권이 가득 찬 나라에서 새로운 국가 건설의 이정표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그의 정책과 언행은 점차 기성 정치권을 닮아왔다. 안철수 앞에 놓인 길은 세갈래로 요약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처럼 용케 재수再修에 성공해서 대권을 잡는 것이다. 아니면 정동영 의원처럼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되 평범한 정치인으로 남는 길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나 문국현 전 의원처럼 자신이 만든 당을 완전히 거덜 내고, 정계 은퇴하는 비운의 선택지도 놓여있다.

‘17년 매미’로 불리는 미국 매미는 무려 17년간을 땅 속에서 애벌레로 버티다 나무 위로 올라와 성충이 된다고 한다.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끝까지 버텨야 한다. 강한 자와 똑똑한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 그는 미국 매미처럼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애증의 감정이 넘치면 곤란하다. 대선과정에서 쌓인 문재인 대통령과 친노ㆍ친문 세력에 대한 앙금을 훌훌 털고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왜 실패했는지 분석부터 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길이 보인다.

더 큰 미래를 위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안 대표의 첫 시련은 당 대표 첫 일정인 현충원 방문부터 얼굴을 내밀지 않은 호남 중진들과의 관계 재정립이다. 국민의당(40석)과 바른정당(20석)이 중도연대로 나설 경우 원내 존재감을 확대할 수 있지만 텃밭인 호남민심이 흔들릴 수 있다. 아마 가장 쉬운 일은 문재인 정부를 향한 무조건적인 비토일 것이다. 제2야당 대표로서 청와대와 민주당 집권세력의 일방통행을 막아내야 하지만 지나치면 곤란하다. 밀 건 밀어주고 견제할 것은 견제하는 제3의 길을 가야 한다.

안 대표는 첫 최고위 회의에서 “우리의 경쟁상대는 외부에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지난 대선 막바지 총력을 다 해야 할   시기에 혼자 배낭을 메고 유세를 다니는가 하면 증언조작사건에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진짜 경쟁상대는 안철수 자신일지 모른다. 국민은 루이 암스트롱의 걸쭉한 목소리를 흉내 내기보다 진정성 담은 목소리를 내는 안철수를 원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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