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청년주택 정책 괜찮나

낮은 임금과 취업난에 직면한 요새 청년들. ‘발 뻗고 편히 잘 내 집’은 요원한 일이다. 이들을 위해 서울시가 팔을 걷어붙였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게 목표다. 그것도 교통 편리하고 상권도 발달한 초역세권이다. 집 없는 청년이라면 반길 사업인데,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이 정책이 ‘역세권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 역세권 2030청년주택 사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 청년은 N포세대다. 많고 많은 포기할 것 중에 1순위는 단연 집이다. 부동산 가격은 뜀박질했지만 소득이 늘지 않으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접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인구의 50%가 몰려있다는 수도권은 더 심각하다.

선거철마다 정치권이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약속하는 이유다. 공공임대주택은 민간주택시장에서 적절한 주택을 구하기 어려운 계층을 위해 공급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CED)의 평균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10%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6%에 머물러있다. 선진국에서 공공임대주택은 서민주거복지뿐만 아니라 주택 시장 안정화와 사회 통합 수단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각계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무작정 공급하는 게 상수上數는 아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과 국민주택기금의 자금을 지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국민의 돈이다. 부지 확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등장한 묘책이 ‘기업형 공공임대주택’이다. 주택 사업의 인허가권을 가진 공공이 혜택을 주면 땅도 많고 돈도 많은 기업이 대신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3월 서울시가 야심차게 발표한 ‘역세권 2030청년주택’도 여기에 속한다. “역세권 규제를 풀어 기업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고 심의ㆍ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지어진 건물 일부에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는 게 서울시의 플랜이다.

사업 발표 이후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사업지 3곳이 첫 삽을 떴다. 시가 사업 참여 입구를 활짝 열어둔 덕분이다. 이 사업은 서울시의 청년주거 해결의 역점 정책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현재 청년들의 상태를 ‘준전시상태’로 선포하고 적극 밀어붙이는 중이다. 기업을 위해 종 상향, 용적률 향상, 주차장 설치기준 완화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줄 뿐만 아니라 자금 지원, 세금 감면을 비롯한 혜택도 준다. 시가 직접 기업을 방문해 설명하는 ‘찾아가는 사업설명회’까지 병행한다.

 

하지만 기업형 공공임대주택도 한계가 뚜렷하다. 무엇보다 공공임대비율을 높게 정하는 게 쉽지 않다.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2030청년주택 역시 전체 주거면적에서 시가 매입하는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낮다. 상업지역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20~25%, 준주거지역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10~15%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낮은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특이한 방법을 꺼내들었다. 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준공공임대주택’이라는 기존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한 준공공임대주택을 통해 청년 주거난을 풀겠다는 얘기다. 임대료 산정에도 서울시가 관여한다.

임대료 낮출 수 있을까

준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서울시와 최초 임대료를 심의한 이후에야 입주자 모집이 가능하다. 시는 준공공임대 주택도 시세의 80~90% 수준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준공공임대주택은 서울시 플랜의 중심에 서있다. 1호 사업지인 삼각지역 청년주택만 봐도 총 1086가구 규모 중 준공공임대주택이 763가구인 반면 공공임대주택은 323가구에 불과하다.

문제는 준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가 서울시의 계산대로 저렴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시세 기준 임대료가 ‘역세권의 함정’에 빠져서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역세권의 입지는 공고하다. 교통이 편리하고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보다 땅값이 높다는 건 ‘불변의 법칙’이다. 더구나 청년주택은 전철역으로부터 250m 떨어진 ‘초역세권’이다. 3.3㎡당 1억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임대료를 낮춘들 ‘시세’가 기준이면 여전히 청년 세대가 감내하기에는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역세권의 함정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기업은 공급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준공공임대주택을 수익사업으로 직결할 공산이 크다. 준공공임대주택은 의무임대기간이 8년뿐이다. 이후에는 임대료 책정에도 구애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분양전환도 자유롭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8년 뒤 분양전환이라는 사업 출구를 확보한 만큼 기업들은 임대사업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8년이 지나도 역세권이라는 뛰어난 입지에 종 상향까지 된 알짜배기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어서다. 이를 활용해 어떻게든 수익을 확보할 게 뻔하다.” 공공임대주택의 중요한 요건인 ‘공급의 안정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은 “기업에 보장하는 이익이 고스란히 청년들에게 부담되는 구조”라면서 “시간이 지나 임대주택 기능을 잃으면 해당 부동산 시장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업과정에 청년이 빠져있다는 점도 문제다. 2030청년주택의 공공부문 컨트롤타워는 ‘청년주택 통합시민위원회’다. 임대료 산정, 임대료 인상비율, 입주자 가격 및 선정방법 등을 결정한다. 24명 이하로 구성되는 위원회의원 자격 중에 ‘청년’은 없다. 대부분 서울시 공무원과 그들이 임명하는 건축ㆍ교통 전문가다.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다.

 

청년 없는 청년주택

사업지 인근 주민들의 반대도 같은 맥락이다. 초역세권에 종 상향이라는 특혜를 주면서 만들어진 고밀도 건물이 빠른 속도로 들어서는데도 주민 공청회나 의견 수렴은 필수 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는 이미 숫자로 목표치를 세웠다. 올해 총 1만 5000가구의 사업승인을 내주고 3년간 역세권 총 5만호를 공급할 예정이다. 서울시가 지역 사회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진행하기에는 촉박한 시간이다.

혹자는 이런 반론을 할 수도 있다. “문제가 있지만 청년들에게 결국 집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지만 2030청년주택이 ‘청년 주거난 해소의 만능키’로 여겨지는 건 문제다. 36.2%에 달하는 서울 청년들이 주거 빈곤 상태에 놓여있어서다.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루는 민달팽이유니온 조현준 사무처장은 “교통체계가 촘촘히 발달한 서울에서 청년들이 원하는 주거 조건의 첫째는 초역세권이 아니다”면서 “주거환경 개선, 임차인의 지위, 주거안전 보장, 높은 임대료 등 서울시 주택시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청년주택 사업에만 매달려서는 안될 일”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는 청년 대다수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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