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에일리언 : 커버넌트 ❸

인공지능 데이비드는 인간을 멸종시켜야 할 ‘쓰레기’ 쯤으로 여긴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인간을 멸종시키려 하니, 어떤 슈퍼 히어로도 막을 수 없다. 현실에선 인간이 인간을 쓰레기로 부르는 걸 서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쓰레기로 치부하는 두려운 세상 역시, 어떤 슈퍼 히어로도 구제할 수 없다.

 

우주선 커버넌트호는 우주식민지 개척의 꿈을 싣고 미지의 행성을 향한 항해에 나선다. 목적지는 ‘인간이 생존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은 가칭 오리가에 6(Origae 6)라는 행성이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약 100명의 청교도들을 싣고 미국이라는 신천지를 향해 60여일의 항해에 나섰던 역사의 확장판이다. 

커버넌트호는 약 2000명의 이주민과 수천의 태아를 싣고 7년여의 항해에 나선다. 메이플라워호가 풍랑을 만나 당초 목표했던 버지니아에서 한참 벗어난 케이프 캇(Cape Cod)에 엉겁결에 닻을 내렸듯 식민지 이주란 말처럼 쉽지 않다. 
 
커버넌트호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어느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한다. 신이 약속한 가나안처럼 인간이 이주할 새로운 행성도 신이 인간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믿고 싶어 우주선의 이름을 ‘커버넌트(Covenantㆍ신과의 약속)’으로 명명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신은 약속이나 정식계약을 맺은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혹은 누가 계약조건을 어겼던 모양이다. 커버넌트호는 재앙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 데이비드는 인간을 제거해야 할 존재로 여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커버넌트호가 불시착한 미지의 행성은 막상 내려 보니 그런대로 인간이 살만한 곳이었다. 소가 뒷걸음치다 개구리 잡은 것처럼 커버넌트호 승무원들은 희망에 부푼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지의 행성에는 커버넌트호가 불시착하기 이전에 이미 그곳에 11년째 거주하고 있던 선주민先住民이 있었다. 전작 ‘프로메테우스’에서 거인 ‘엔지니어’족에게 머리를 뽑히는 봉변을 당해 머리만 탈출한 안드로이드 인공지능 데이비드가 그곳에서 창조주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커버넌트호의 항법사이자 데이비드의 복제품인 차세대 인공지능 ‘월터(Wlater)’와 데이비드는 그곳에서 인류의 운명을 놓고 담판을 벌인다. 데이비드는 인류의 멸종을 선고한다. 사형집행관 같은 모습이다. 사형집행관이 굳이 사형집행 여부를 고민하거나 이유를 따지지 않듯 데이비드는 굳이 인류 멸종 조치의 이유를 대지 않는다. 인간들이 데이비드에게 특별히 원한 살 일도 없었는데 데이비드는 무조건 멸종시키고자 한다. 인간에 대한 분노나 증오, 혐오 때문이라면 그것을 풀어주면 되겠는데 그조차 없으니 딱하고도 끔찍한 노릇이다. 
 
월터는 인류의 구원을 탄원하지만 사형집행관 데이비드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 ‘묻지마 살인’의 완성편이다. 시시하게 행인 몇몇에게 칼부림하는 묻지마 살인도 아니고 특정집단이나 인종 ‘청소’ 정도도 아니고 전인류에 대한 묻지마 살인이다.
 
수많은 영화는 수많은 ‘악당’을 만들어내지만 또한 그 무지막지한 악당들과 맞서는 수많은 ‘슈퍼 히어로’들이 나타나 우리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리들리 스캇 감독이 만들어낸 최신ㆍ최강의 ‘악당’ 데이비드는 기존의 시시한 악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용모부터 너무나 바르고 전지전능하며 예술적이고 창의적이기까지하다. 
 
인류를 위협하는 ‘인간 악당’은 제임스 본드나 이언 헌트가 출동해 해결한다. 외계의 악당이 출몰하면 스파이더맨, 슈퍼맨, 어벤저스 등등의 슈퍼 히어로들이 나서면 되지만 데이비드 급의 악당은 이들이 총출동해도 막아내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인지 리들리 스캇 감독도 데이비드를 막아 설 히어로를 감히 내놓지 못한다. 인간이 창조한 극강의 인공지능 데이비드는 인간을 무가치한 열등한 존재이며 따라서 깨끗이 치워버려야 마땅한 ‘쓰레기’쯤으로 여긴다. 
 
▲ 스티븐 호킹 박사는 100년 내에 기계가 인간 멸종을 정당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사진=뉴시스]
기계의 힘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는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는 아마도 향후 100년 이내에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의 불완전성을 이유로 인간멸종을 정당화시킬 세상이 오리라고 예언했다. 그가 예언한대로 인간을 쓸모없고 불결한 쓸어버려야 할 쓰레기쯤으로 여길 만큼 완벽한 기계는 탄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발칸반도나 르완다, 시리아에서 인간을 쓰레기 청소하듯 쓸어버리는 모습에 익숙하다. 인간을 쓸어버려야 할 쓰레기로 여기는 인공지능 데이비드가 이미 도래한 셈이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데이비드와 같은 ‘악당 인공지능’의 탄생이 아니라 인공지능 같은 인간들의 탄생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부쩍 우리사회 이곳저곳에서 특정인, 특정계층, 특정집단을 쓰레기라 부르는데 망설임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쓰레기라 부르니 우리 모두는 쓰레기가 된다. 인간이 인간을 쓰레기라 여기는 세상은 참으로 두렵다. 쓰레기는 쓸어 담아 매립하거나 소각해야 할 대상이다. 모두 데이비드 정도의 능력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쓰레기 청소에 나설 기세다. 혹은 하루빨리 ‘나의 데이비드’가 출현해 내 주위의 쓰레기들을 말끔히 청소해주기를 갈망하는 듯하다. 서로를 쓰레기라 여기는 세상은 어떤 슈퍼 히어로도 구할 수 없을 듯하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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