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로부터 배우는 며느리 사랑법

▲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면 관습과 규범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사진=뉴시스]

조선 최고의 유학자로 꼽히는 퇴계 이황(1501~1570년)은 고루하고 냉혹한 책상물림이 아니었다. 가부장 신분질서 속에서 사회 최하층을 이루는 천민과 남성의 부속품쯤으로 여겼던 여성을 사대부나 권력자와 똑같이 공경한 가슴 따뜻한 인격자였다. 그의 지독한 며느리 사랑 이야기는 400여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퇴계의 손부孫婦(손자며느리)인 안동 권씨가 아들을 낳고 불과 6개월 만에 딸이 들어서면서 그나마 부족했던 젖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마침 계집종이 출산을 하자, 퇴계의 손자가 간절하게 부탁을 한다. “계집종을 젖어미로 보내주십시오.” 종이란 집안에 딸린 재산목록 중 하나였던 시절이었으니 예사로운 부탁이었다. 그러나 퇴계는 “다른 사람의 자식을 죽여서 내 자식을 살리는 것은 몹쓸 일”이라고 거절한다.

맏증손자는 시름시름 앓다가 두돌이 갓 지나서 세상을 떴다. 그런 퇴계를 손부인 안동 권씨는 원망하지 않았다. 퇴계에 이어 시아버지와 남편이 차례로 세상을 뜨고 오래잖아 임진왜란까지 닥쳤다.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던 권씨는 피난 중 퇴계의 저작물을 지키는데 온몸을 바쳤다. 퇴계 종택에 세워진 안동 권씨 열녀문은 여느 가문처럼 열녀의 허울하에 청춘과 행복을 빼앗긴 한恨이 아니라 자발적인 헌신을 기렸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퇴계의 묘 바로 밑에는 맏며느리 봉화 금씨의 묘가 있는데 이 또한 사연이 눈물겹다. 아들 결혼 전 퇴계는 사돈이자 맏며느리의 친정인 금씨 일가로부터 가문이 한미하다는 이유로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당했다.

그러나 퇴계는 일절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며느리가 상처를 받을까봐 더 자상하게 챙겼다. 때때로 머리핀이나 실패, 골무 등 가사용품을 보냈고, 며느리가 아프면 약을 직접 챙겼다. 때때로 ‘아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아들’을 나무랐다. 퇴계의 극진한 사랑을 잊지 못한 금씨는 이렇게 유언한다. “시아버님 묘소 밑에 나를 묻어라. 죽어서라도 그 분의 혼을 모시겠다.”

퇴계의 가문인 진성이씨 족보를 보면 둘째아들 채의 부인 자리가 비어있다. 퇴계는 둘째 아들이 22세에 세상을 떠나자 아예 호적에서 며느리 이름을 파 개가의 길을 터주었다. 젊어서 홀로 사는 둘째 며느리의 불행을 모른 척할 수 없었기에 남몰래 결단을 내렸다. 가문의 명예를 목숨보다 더 중요시했던 조선 중기의 사회분위기로 볼 때 파격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퇴계학의 산실인 3칸의 작고 초라한 도산서당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의 모든 생명을 똑같이 사랑하고 공경하는’ 그의 넉넉한 인간애 때문이다.

수명 100세 시대를 맞아 시아버지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다. 젊은 며느리는 늘 쫓기는 삶이다. 그러다 보니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과거 봉건사회보다 거리가 더 멀어진 것 같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부담스럽다. 게다가 은퇴 전후의 남성들은 공감하는 능력이나 사회적 인간관계 맺기 능력이 여성만 못하다. 가장의 리더십은 며느리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한가위(10월 4일)는 며느리를 배려하는 명절이 됐으면 한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명절에 얼마나 많은 가족 간 갈등과 불화가 일어나는가. 어느 종교의 지도자라도 원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돌아간 조상과의 만남인 제사와 절대신神을 믿는 기독교는 사실 공존이 불가능하다. 기독교가 수용한 제사는 이미 제사가 아닐 것이고, 또 기독교가 제사를 수용하면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게 된다. 절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제사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먹지 않아야 하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과 살아있는 가족 간 우의다.

행복심리학자인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면 본성에 반하는 관습과 규범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자주 지엽적이고 감각적인 말단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곤 한다. 가족의 형편에 맞게 제사를 조율하면 되지 사생결단할 일 아니다.

세상이 너무 바뀌었다. 지나간 시대의 잣대가 아니라, 젊은 세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길이 열린다. 태양이 눈부시다고 화만 낼 일 아니다. 내가 선글라스를 끼면 될 일이다. 퇴계라면 며느리를 최우선으로 배려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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