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호평→반짝 실적→ MC사업부 적자’ 악순환 깰까

LG전자가 벼랑 끝에서 ‘신무기’를 선보였다. ‘V30’이다. 일단 외신 평가는 긍정적이다. ‘혁신’ ‘세계 최초’에 집중하던 과거와 달리 ‘기본’에 충실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신제품 출시→국내외 호평→초반 반짝 실적→ MC사업부 적자’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많다.

▲ LG전자는 V30의 성공을 자신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다를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유럽 최대 가전 박람회인 ‘국제가전전시회(IFA) 2017’의 최고 이슈는 LG전자의 신작 스마트폰 V30이었다. IFA 사무국이 발행하는 ‘IF 매거진’에 1면 표지모델이 조준호 LG전자 MC사업본부장(사장)일 정도였다. 조준호 사장은 V30을 두고 “경쟁 상대인 삼성전자 갤럭시노트8의 확실한 대안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제품 발표회에서는 갤럭시노트8을 대놓고 저격했다. LG전자는 티저 광고에서 파란색 연필을 농락하듯 이리저리 돌리다 부러뜨리고, 파란색 노트에서 펜을 뽑더니 페이지 한장을 시원하게 찢어버렸다.

퍼포먼스만 화려한 게 아니다. 외신의 호평도 이어졌다. “사진 촬영 기능을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V30는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구도에 변화를 일으킬 것.” “LG전자가 역대 최고 스마트폰을 만들어 낸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외신의 긍정적인 평가로 신제품의 흥행을 점치긴 어렵다. 사실 이런 호평이 낯설지도 않다. LG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시리즈인 ‘G’와 ‘V’의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외신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놨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로 거슬러 올라가자. 글로벌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6’에서 조준호 사장은 ‘G5’를 선보였다. 2015년 MC사업부가 -483억원의 아픈 실적을 낸 직후였다. 시장은 G5가 MC사업부의 흑자전환을 위한 ‘구원투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조 사장이 기획 단계부터 직접 제품 개발에 참여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초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기기 하단을 서랍처럼 빼 다양한 주변 기기를 장착할 수 있다는 점은 그 어떤 스마트폰에도 적용되지 않았던 형태였다. 주요 외신은 ‘혁신적’이라고 평가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극찬도 잇따랐다.

하지만 이런 관심은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차별화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충분한 검증도 없이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폰을 출시해 소비자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게 시장의 냉정한 평가였다. 결국 ‘혁신의 MC사업부’는 그해 상반기만 3557억의 적자를 냈다.

외신들의 뻔한 호평

뒤이어 출시한 ‘V20’도 마찬가지다. 외국 유력매체로부터 “아이폰7플러스를 능가하는 카메라 성능” “최고의 안드로이드 카메라” 등의 평가를 받았다. 세계 최초로 전후면 ‘광각 카메라’를 탑재한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세계 최초 ‘쿼드 DAC(디지털-아날로그 변환기)’을 얹어 음원을 원음 수준으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실적은 처참했다. 지난해 4분기 LG전자 MC사업부는 4670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했다. 위기는 LG전자 전체로 전이됐다(영업적자 352억원). LG전자가 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한 건 2010년 4분기 이래 6년 만이다. “신제품 출시→국내외 호평→초반 반짝 실적→ MC사업부 적자”로 이어지는 LG전자의 실패 방정식이 재연된 결과다.

전문가들은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이 명확한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LG전자가 인정을 하든 그렇지 않든 플래그십 스마트폰 시장은 굳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LG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GㆍV시리즈’는 누가봐도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를 넘기 어렵다. 아이폰 출시 이후 삼성전자가 갤럭시S로 곧바로 따라붙은 데 반해 LG전자는 손을 놓고 있던 것이 컸다. ‘혁신’ ‘세계 최초’ 등의 수식어를 단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도 글로벌 시장의 점유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다.

무엇보다 초반 호평을 유지할 만한 브랜드 파워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다. ‘배터리 폭발’이라는 치명적인 이슈를 내고도 여전히 대화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공고한 지위를 갖추고 있는 갤럭시노트와 비교하면 아쉬운 지점이다.

기술력도 외신들의 호평과 달리 신통치 않은 평가가 많다. 그간 LG전자는 뱅앤올룹슨 등 음향 전문 기업과 협업해 ‘사운드’를 강점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삼성이 글로벌 오디오 그룹 하만을 인수하면서 사운드는 더 이상 자랑거리가 될 수 없었다. 뱅앤올룹슨은 하만이 보유한 브랜드다.

“제품은 좋은데 마케팅이 아쉽다”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말도 이제는 변명이 됐다. LG전자의 GㆍV 시리즈는 기업 기술이 집약된 ‘플래그십’임에도 유독 품질 이슈가 잦았다. 구형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탑재, 사후지원 미흡 등이 대표적이다. AP 공급을 두고 퀄컴과의 협력을 이어오고 있지만 상당한 수준의 로열티를 지불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자체 AP ‘엑시노스’를 개발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매해 흥행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이유다.

그렇다고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2010년부터 오너 일가인 구본준 LG 부회장이 직접 경영을 맡아 연구ㆍ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다. G시리즈는 ‘구본준폰’의 약자라는 말이 시장에 떠돌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품이었다. 2000년대 초반 ‘초콜릿폰’ ‘샤인폰’ 등을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LG전자 휴대전화 사업의 전성기를 이끌던 조준호 사장을 전면 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LG전자 MC 사업부는 올해 2분기까지 9분기 연속 적자의 늪에 빠져있다. 지난해 연간 1조2591억원의 충격적인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2분기 적자 규모도 1000억원대다.

 

“알파벳 다 쓰게 생겼다”

IT 업계 관계자는 “LG전자가 2012년부터 야심차게 브랜딩한 ‘옵티머스’ ‘뷰’ ‘G프로’ ‘G플렉스’ 등의 이름은 단종돼 역사에만 남았다”면서 “이후 알파벳으로 자사 스마트폰 라인업을 구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지만 급작스러운 단종과 뜬금없는 신규 브랜드 론칭으로 ‘알파벳 다 소진하게 생겼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고 있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번에는 다르다”며 외신의 긍정적인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모양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냉정하다. 한 이동통신 대리점 관계자는 “장밋빛 전망이 주특기인 시장과 미디어의 평가를 소비자에게까지 강요할 수 없다”면서 “갤럭시노트8, 아이폰8 등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홍수 속에서 V30의 비중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다른 관계자는 “고가 정책을 유지해온 LG전자의 특성상 이번 제품도 갤럭시노트8와의 출고가가 크게 차이나지 않을 것”이라며 “브랜드 가치와 선호도가 낮은 V30을 굳이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법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LG전자 스마트폰, 실패 방정식에 빠졌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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