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배만 불리는 PB상품

유통 단계를 획기적으로 축소해 소비자가격을 낮춘 PB상품. 소비자들은 물론 중소 제조업체들도 환호했다. 부족한 브랜드 파워를 메우고 매출을 올려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PB상품의 제조원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메이저 제조업체다. 아니나 다를까 PB상품 역시 메이저 제조업체의 배만 불리고 있다.

▲ PB상품을 생산하는 메이저 제조업체들이 증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PB(Private Brandㆍ유통업체 브랜드)상품이 유통업체의 ‘효자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절대적인 매출 규모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통업체 전체 실적 중 PB상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국내 대형마트 3사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는 PB상품 매출이 2006년 각각 4500억원, 7500억원, 4500억원에서 2013년 3조1000억원, 2조2400억원, 1조6000억원으로 훌쩍 뛰었다. PB상품의 매출 비중도 2006년 7%, 18%, 12%에서 2015년 20.4%, 28.4%, 26%로 크게 늘었다. PB상품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고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PB상품엔 밝은 면만 있는 게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파른 성장의 달콤한 과실이 유통업체와 일부 메이저 제조업체로만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식료품을 만드는 한 중소 제조업체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PB상품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곤 하는데 중소 제조업체들은 크게 체감하지 못한다. 유통업체의 마진율만 크게 오르지 중소 제조업체들의 매출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그나마 납품량이 많은 편이라서 매출이 조금씩 오르곤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다.”

PB상품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는데 중소 제조업체들의 매출에 큰 변화가 없는 건 왜일까.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제조업체 브랜드(NBㆍNational Brand) 상품을 주로 생산하던 메이저 제조업체들이 PB상품 시장에도 하나둘 진출하고 있어서다. 메이저 제조업체들이 PB상품 생산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중소 제조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얘기다.

애초에 PB는 중소업체들의 영역이었다. 대형유통업체들이 신규 출점에 한계를 느끼고 여기에 경기 불황까지 맞물리면서 소비자들에게 보다 저렴한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게 PB다. 그러면서 중소 제조업체들과 손을 잡았다. 유통업체는 자신들의 브랜드를 가질 수 있어 좋고 제조업체는 부담스럽던 상품개발비와 마케팅비 등이 따로 들지 않아 좋았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그들의 NB로는 넘기 힘들었던 판로도 쉽게 확보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지갑이 얇은 소비자들을 공략하는데도 성공하며 PB시장은 규모가 점점 커졌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면 누구나 욕심내기 마련. 유통업체는 보다 질 좋은 PB상품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했고, 시장의 성장을 목격한 메이저 제조업체들도 하나둘 눈독들이기 시작한 거다. 그렇게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의 영역이었던 PB시장을 치고 들어왔다.

PB, NB 꿰찬 SPC삼립


실제로 대형마트ㆍ편의점 등 유통채널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PB상품의 제조원을 보면 대다수가 메이저 제조업체임을 확인할 수 있다. 라면업계 시장점유율 4위인 팔도가 라면 PB상품의 70~80%를 생산하고 있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메이저 제조업체의 동일한 NB상품과 PB상품이 나란히 진열돼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대형마트 빵 코너의 NB상품과 PB상품 대부분은 SPC삼립이 제조한 상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당 품목 1~2위 브랜드 제조업체는 PB상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마저 무너진 지 오래”라면서 한탄했다.

이런 지적이 거세지자 메이저 제조업체들은 “우리도 이익이 크지 않다”고 항변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PB상품을 많이 납품했다고 이익이 크게 증가하거나 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NB상품 하나만 만들던 생산라인에서 여러 PB상품을 만들다보니 생산효율성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PB상품 생산도 유통업체가 원해서 만들고 있는 것”이라면서 “다만 PB상품은 마진율이 낮은 대신 유통업체에서 손실율을 보존해주는 등 여러 옵션을 제공해준다”고 덧붙였다. 팔도 관계자도 “수익보다는 유통업체와의 관계와 마케팅 비용 절감을 위해서다”고 PB상품 생산 이유를 밝혔다.

제조업체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제조업체들이 PB상품과 NB상품의 매출 현황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메이저 제조업체들은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메이저 제조업체가 PB상품 납품을 늘리면 영업이익은 큰 변함이 없더라도 매출은 증가할 공산이 크다”면서 “더 중요한 건 PB상품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다는 건데, NB상품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PB상품을 만드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중소 제조업체들은 “유통업체가 메이저 제조업체에게 제공한다는 각종 옵션을 제공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똑같이 PB상품을 납품해도 메이저 제조업체의 배만 불리겠다는 얘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PB상품을 납품하면 NB상품도 진열해주는 옵션을 제공하는 유통업체가 많은데, 이는 2중 수혜가 될 공산이 크다.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유통채널 매대경쟁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매대 확보가 곧 매출로 이어지고 매대를 확보하지 못하면 판매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소 제조업체 입장에서 메이저 제조업체의 PB상품 납품 확대가 얄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PB상품에서도 밀리고 NB상품까지 추가 진열되면 중소 제조업체의 상품은 더 설 곳을 잃는다는 얘기다.

PB상품 만들어 시장점유율 확보

중소 제조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중소 제조업체는 NB상품으로는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유통채널의 매대를 확보하기 힘들다. 마진율이 낮더라도 PB상품을 생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소한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그 작은 틈새마저 메이저 제조업체들이 꿰차고 있는 셈이다.”

한상린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PB 본래의 좋은 취지가 훼손됐다”면서 “적절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통단계를 축소해 소비자들에게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고, 중소업체들에는 판로를 제공해주는 초창기 PB의 취지는 참 좋았다. 하지만 유통업체들의 힘이 커지면서 상생은 없고, 힘겨루기만 남았다.”
고준영ㆍ김미란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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