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 PB상품의 제조사 살펴보니…

“이마트에서 파는 노브랜드 초코파이는 이마트에서 만드는 거 아니에요?” 많은 소비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노브랜드가 이마트의 PB(Private Brand)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아니다. 노브랜드 초코파이는 롯데제과에서 만든다. 노브랜드의 초코파이뿐만이 아니다. 유통업체 PB상품 포장지 뒷면에는 우리가 미처 연결 짓지 못한 업체 이름들이 낯설게 박혀 있다.

▲ 유통업체가 빠른 속도로 진열대를 점령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 영등포의 한 대형할인마트. 중년부부가 매대 앞에서 실랑이를 한다. 남편이 페트병에 든 알로에 주스를 카트에 담으려는 순간, 옆에 있던 아내가 “이거 말고 저쪽에 가서 사자”면서 주스를 제자리에 놓는다. 아내가 말한 ‘이거’는 이마트 PB(Pri vate Brand)인 노브랜드의 알로에 주스이고, ‘저쪽’은 음료 코너다. 카트를 밀며 음료 코너로 이동한 아내가 집어든 주스는 웅진식품 브랜드 ‘자연은’의 알로에 주스다. “아무래도 마트 PB상품보다 음료전문 브랜드에서 만든 게 믿음이 간다.”

그런데 여기엔 놀라운 사실 하나가 숨어 있다. 아내가 남편 손에서 빼앗아 제자리에 내려놓은 알로에 주스는 공교롭게도 웅진식품에서 생산한 음료다. 아내는 이런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당연하다. 아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두 알로에 주스는 용기도, 가격도 다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브랜드가 없으니(NO), 제아무리 예민한 소비자라도 눈치 채지 못할 공산이 무척 크다.

예를 들어보자. 초코파이 시장에서 업계 1위인 오리온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롯데제과는 ‘롯데 초코파이’라는 NB(Na tional Brandㆍ제조업체 브랜드)가 있음에도 이마트 PB인 ‘노브랜드 초코파이’를 만든다. 쉽게 말해, 이마트의 초코파이 노브랜드는 롯데산産 초코파이라는 거다. 코코아분말 함량이 2.2%로 같지만 포장이 전혀 다르니 같은 제조업체에서 만든 거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롯데 카스타드(10g당 173.1원)’와 ‘홈플러스좋은상품 카스타드(10g당 116.5원)’도 제조업체가 롯데제과로 같다. 이마트의 식품PB인 ‘피코크 우유(1Lㆍ1870원)’와 ‘매일우유 오리지널(1Lㆍ2550원)’ 역시 둘 다 매일유업에서 생산한다.

흥미로운 건 또 있다. 라면PB의 70% 이상은 왕뚜껑, 비빔면으로 유명한 ‘팔도’가 생산한다. 롯데마트의 ‘롯데라면’, 이마트 노브랜드의 ‘라면한그릇’, 홈플러스의 ‘식도락면’ 등이 팔도에서 만든 PB라면들이다. 팔도만이 아니다. 삼양식품은 이마트 ‘짬뽕라면’, 홈플러스 ‘소문난라면’ 등을, 오뚜기는 이마트의 ‘라면이라면’ 등을 만들고 있다.

“PB, 어쩔 수 없는 흐름”

같은 제조업체가 아니라도 이미 시장에서 이름을 알린 업체들이 PB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탄산음료 ‘맥콜’을 아는가. 여전히 시중에 유통되고 있지만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그 맥콜을 만드는 회사가 ‘일화’다. 일화는 NB인 맥콜과 천연사이다 외에 마트PB 탄산음료를 제조하고 있다. 전체 식품매출 중 6%가 마트PB 매출이다.

일화가 제조ㆍ납품하고 있는 PB는 홈플러스 콜라(1.5Lㆍ950원), 롯데마트의 초이스L 콜라(1.5Lㆍ1000원) 등이다. 코카콜라 1.5L 가격이 2890원(대형할인마트 기준)인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가격이다. “어차피 생산라인을 돌려야 하니까 유통업체들이 요구하면 거기에 맞춰 PB상품을 생산한다.”

 

그렇다면 알만한 제조업체들은 왜 유통업체의 PB상품을 만들고 있을까. 자신들이 만든 브랜드와 PB가 경쟁할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이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쩔 수 없이 한다”와 “이것도 하나의 전략”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NB와 동일품목의 유통업체 PB를 생산하고 있는 한 업체는 “유통업체측에서 제안을 해왔고, 우리는 받아들였다”면서 “유통업체 입김이 세다보니 거절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우리 브랜드가 잘 팔리면 좋겠지만 시대의 흐름상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도 있다.”

소비자들은 어떨까.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매하는 기준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믿을만한 브랜드이거나 가격이 저렴하거나 두 가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중년부부 중 아내는 브랜드 공신력을 선택하고, 남편은 가격을 선택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롯데제과, 웅진식품, 혹은 매일유업이라는 브랜드를 선택하기 위해 몇 푼 더 지불했는데, 그보다 저렴한 PB가 같은 제조업체에서 옷만 다르게 입고 나온 거라면? 반대로, 가격만 보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PB상품을 구매했는데, 이름 있는 NB상품과 같은 상품이었다면?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지만 의외의 조합에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못내 복잡해지는 이유는 뭘까. 게다가 PB상품이 진열대를 점령하면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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