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티아라’사태로 본 기업 리스크 관리


걸그룹 티아라 사태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코어콘텐츠미디어는 티아라의 막내 멤버 화영을 방출한다고 발표하면서 악담 수준의 설명을 덧붙였다. 브랜드 전문가들은 코어콘텐츠미디어 CEO가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저빈도 고영향 위험’이 기업 뿌리를 흔들게 마련인데, 이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무슨 말일까.

▲ 코어콘텐츠미디어의 대표적 걸그룹 티아라가 브랜드 관리 부실로 홍역을 앓고 있다.
올림픽도 묻혔다. 걸그룹 티아라가 일을 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걸그룹을 2009년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코어콘텐츠미디어가 일을 그르쳤다.
지난달 30일 코어콘텐츠미디어는 7명이 한 팀인 자사 소속 대표 걸그룹 티아라의 막내 멤버 화영(본명 류화영)을 방출한다고 발표했다. 말이 발표지 사실은 악담 수준이었다.
공식적인 악담은 한 차례 더 나왔다. 화영이 트위터에 ‘진실 없는 사실’이란 한 문장도 안 되는 단어 몇 개를 올린 직후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악담이라 이를 지면에 소개할 필요를 못 느낄 수준이다.

티아라 사건, 걸그룹만의 문제인가
한국기업이 가장 대처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꼽히는 것이 오너다. 오죽하면 오너 리스크란 말이 경제용어인양 쓰인다. 한국의 기업 문화상 오너의 지시는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오너의 실수를 덮고 그의 개인사를 꿰뚫어 적절히 대처하느냐가 기업 홍보실의 가장 중요한 리스크 관리 업무가 된 지 오래다.
폐쇄적이기로 소문난 엔터테인먼트 업체, 그것도 비상장 된 소형 업체에서 오너의 ‘의지’를 막을 수 있는 직원은 없을 것이다.

▲ 아이돌 그룹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는 수백억원을 훌쩍 넘는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그러니 이번 일을 ‘티아라 사건’으로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번 일은 ‘코어콘텐츠미디어의 위기 관리 부재’가 본질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코어콘텐츠미디어라는 회사의 대표적 프로덕트인 ‘티아라’ 브랜드의 위기관리가 총체적 부실을 보이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티아라 문제의 시작은 여느 연예계 가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티아라의 다른 멤버인 지연, 보람, 효민, 은정 등이 트위터 상에서 화영을 비웃는 듯한 느낌의 글을 올렸다. 당연히 순식간에 화영 왕따설이 돌았다. 같은 팀 멤버가 화영을 가리키는 듯 ‘연기천재에 박수를’이라는 트윗을 올리는 순간 리스크가 발생했다.


네티즌은 티아라가 출연한 국내외 프로그램에서 화영이 사실상 학대를 받고 있는 듯한 사진과 동영상을 퍼나르기 시작했다. 리스크는 더욱 커졌다. 사실 왕따설, 방출, 폭로 등은 전형적인 연예계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티아라

사건은 불과 사흘 만에 사회 문제가 됐다. 왕따에 이은 방출이 꼭 지금 우리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상황과 비슷한 것도 이유다. 하지만 이 사건이 커진 데는 코어콘텐츠미디어와 이 회사 대표 김광수씨의 악수가 결정적이었다.

 
연예계 밑바닥에서 시작해 잔뼈가 굵은 김광수씨는 자신이 키운 연예인과 종종 충돌을 빚어 왔다고 한다. 씨야라는 걸그룹의 남규리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결국 방출됐고 김씨와 소송전까지 벌여야 했다.
김씨는 아마도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연예계의 모든 갈등은 결국 가십거리’이고 이를 연예매체를 통해 확대 재생산하면서 내성을 키우는 것이 리스크 매니지먼트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정상적인 리스크 관리가 아니다. 오히려 리스크를 더욱 증폭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번 티아라 사태가 찻잔 속 태풍과 같은 가십 수준에 머물렀던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퍼져나갔다는 점이다. 티아라 팬이 먼저 일어났다.

비공식이지만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한 팬카페는 스스로 폐쇄를 결정했다. 누가 봐도 코어 측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기사에는 수천 개의 비난성 댓글이 달렸다. 모두 티아라의 팬 그러니까 티아라 브랜드의 충성독자가 한 일이다.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되면서 티아라는 생방송 출연을 취소했다. 콘서트도 취소됐다. 인터넷에는 ‘티진요(티아라에게 진실을 요구한다)’ 카페가 생겼고 불과 사흘 만에 회원 수가 30만명을 넘겼다. 급기야 이 문제는 한 신문의 사설에까지 등장했다.

▲ 논란의 중심이 된 걸그룹 티아라의 막내 멤버 화영(본명 류화영).
코어콘텐츠미디어라는 기업의 대표 브랜드 티아라는 현재 새 멤버 영입을 미리 발표해 적대적 시선을 분산시키면서도 문제의 근원인 ‘화영 왕따설’은 극구 부정하고 있다. 막내 멤버를 방출한 이유는 악의적이고 원색적인 비난 일색이었다. 이런 것을 정상적인 기업의 리스크 관리로 볼 수 있을까? 이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의 수명은 곧 리스크 관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CEO를 리스크 테이커(Risk Taker)로 칭하기도 한다. 미국 포춘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40년이다. 일본 100대 기업과 한국 10대그룹의 평균 수명은 30년 정도다. 1970년대 한국의 10대 기업은 대한중석, 대성목재, 삼성, 삼양, 화신, 개풍, 동아, LG, 대한, 동양 순서였다.

30년 후인 1990년 10개 회사 중 삼성과 LG만이 살아남았다. 다시 12년이 지난 2012년 현재 1990년 10대 기업 가운데 온전한 곳은 삼성과, LG, 한진, 롯데, 한화 정도다.
이 모든 한국기업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사라진 기업들의 대부분이 영업력이나 기술력과는 상관 없는 상속이나 정치적 문제, 비리 등 이른바 외부의 리스크 때문에 거꾸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0년에 1위였던 현대는 상속 과정에서 형제의 난이 벌어져 그룹이 조각났다. 대우는 과도한 차입에 이은 정치권과의 빅딜 등으로 공중분해 됐다. 쌍용은 자동차 부문을 매각해 규모가 크게 축소됐고, 기아자동차는 당시 전문경영인의 비리가 터져 국민기업 이미지가 추락해 애물단지가 되더니 결국 현대자동차에 인수됐다. 그러니 18년 후에는 어떤 기업이 얼마나 많이 살아남을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리스크 관리의 문제다.

루머 하나에 기업이 흔들
리스크를 단지 돌발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혹시 있다면 큰 오산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PWC는 리스크를 ‘주주 가치에 감소를 초래하는 모든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국제회계사연맹인 IFAC는 ‘조직의 전략적, 업무적, 재무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불확실한 미래의 사건’을 리스크라고 정의한다. 이를 관리하는 것도 사전에 대응하느냐(위험관리) 아니면 사후적인 대응(위기관리)을 하느냐에 따라 용어나 정의, 대처방법이 다르다.

이번 코어콘텐츠미디어 사태는 전형적인 위기관리의 실패다. 비재무적인 비즈니스 상의 리스크에는 ▲정부의 규제로 인한 위기(Regulatory Risk) ▲평판 위기(Reputation Risk) ▲세금 문제나 위법적 상황에서 오는 위기(Taxation, Legal Risk) ▲자연재해를 포함한 총체적인 재앙으로 인한 위기(Disaster Risk)가 있다.

이번 사태는 평판위기에서 시작돼 재앙으로 격상되고, 사회적 문제가 되는 바람에 결국 규제기관이 나설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만약 규제가 이뤄진다면 이는 곧 세금, 법적 문제까지 검증하는 수순이 일반적이다. 이게 현재 코어콘텐츠미디어의 상황이다. 이 회사 CEO는 단순한 평판위기를 결국 이렇게까지 키워놓고 있는 것이다.

선제적 의미인 기업위험 관리에서 통제가 불가능한 건 규제나 정책변화 등 환경 리스크 외에 대부분의 리스크는 통제가 가능하다. 특히 전략이나 사업에서 오는 리스크는 재무적 리스크보다 하위 개념에 속한다. 코어콘텐츠미디어처럼 티아라라는 대표 브랜드를 스스로 망쳐버려서 사업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게 되면 이는 곧 재무 리스크로 번지게 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S&P와 피치는 신용평가 기준의 한 요소로 기업의 리스크 관리 수준(ERM:Enterprise Risk Management:전사적 위험 관리)을 신용평가 기준의 중요한 요소로 반영하고 있다.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 지수에도 리스크 관리는 주요 평가항목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스크 관리가 잘 된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더 좋은 신용등급을 얻게 되고 이는 곧 자본을 유치하는 비용(금리)을 크게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이 자체가 기업의 외부적 평가를 높여주게 된다. S&P는 신용평가 기준에서 리스크 관리가 꼭 필요한 산업군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넣었다.

 
평판위기가 재앙으로 번져
코어콘텐츠미디어는 2000년도에 있었던 미국의 포드 자동차와 일본 브릿지스톤의 리스크 관리 실패 사례를 연구해 보는 게 좋겠다.

이들 기업의 평판 리스크 관리 실패는 선의의 내부 고발자로 부터 시작됐다.
자동차업체 포드는 자사 익스플로러 차량에 파이어스톤 타이어를 억지로 장착한 결과 전복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회사 평판에 문제가 생겼다. 이들 회사는 이를 은폐하기로 작정을 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에 있는 포드 정비소의 한 직원이 이런 사실을 미국 본사의 전략 연구소 연구원에게 이메일을 통해 알렸고, 이 연구원은 이런 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파이어스톤 타이어는 결국 3억5000만 달러어치 타이어 650만개를 리콜 했다. 이 회사 모기업인 일본의 브릿지스톤 주가는 당일에만 38%가 하락했다.

 
PWC의 리스크 관리 방법론에 따르면 코어콘텐츠미디어는 이번 사건을 ‘대응 중심의 리스크’ 즉 저빈도 고영향 리스크로 판단했어야 옳다. 몇 번 자사의 매출을 올려주는 연예인들과 마찰을 빚었지만 이는 일상적인 위험은 아니다. 이번 티아라 사태는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저빈도 고영향 리스크다. 이 경우 기업은 미리 갖춰둔 예상 시나리오별 대응책에 근거해 리스크 발생시 손실을 최소화 하려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KT, LG화학, 한국토지공사 등에서 이미 전사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이를 가동 중에 있다. 리스크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CEO의 리더십이다. CEO가 전면에 나섰다면 주기적으로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리스크 관리의 첫 걸음이다. 그리고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 못지 않게 사내 커뮤니케이션도 강화해야 한다. 위험 요인을 정량화하고 측정(매출 감소치 등)하는 동시에 위험관리의 명확한 목적과 정책도 결정해야 한다. 예컨대 듀퐁은 리스크 관리의 목적을 ‘비즈니스를 더욱 잘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GE는 ‘사업상의 현금 흐름과 기업가치의 안정성 확보’로 정해뒀다. 코어콘텐츠미디어는 화영에 대한 티아라 다른 멤버들의 공격에 대해 처음에는 “트위터 계정이 해킹 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해당 멤버는 이 트위터 계정으로 직후에도 계속해서 다른 연예인들과 사담을 나눴기 때문에 곧 들통이 날 거짓말이었다. 그 다음에 나온 얘기는 이틀 후 CEO가 중대발표를 한다는 선전포고였다. 그리고 인신공격과 함께 화영을 방출했다. 어디에도 위기관리 시스템 흔적은 없다.

브랜드 관리 잘못하면 큰 코다쳐

 
코어콘텐츠미디어 대표인 김광수씨는 티아라가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 상품에 흠을 냈으니 이를 다른 부품으로 교체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듯 새 멤버를 조기 등판 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부품(화영)의 흠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김씨는 이런 상황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요지의 인터뷰를 한 일간지와 하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화영의 다른 문제점들이 담겨있다고 추정되는) 서류를 흔들어 보이며 해당 부품에는 숨겨진 또 다른 흠도 있다는 으름장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백번 양보해서 김씨가 문화콘텐츠 생산자에 불과하고 티아라는 7명의 여자 아이들이 아닌 단순한 문화상품에 불과하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김씨는 위기관리에 크게 실패한 경영자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회사의 리스크 관리는 처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이번 사태는 기업의 리스크이고, 이는 시스템을 갖추면 관리가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이제 막 산업으로 태동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이번 코어콘텐츠미디어의 총체적 브랜드 위기관리 실패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한정연 포춘코리아 기자 jayhan0903 @ 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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