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KT의 정체성

“통신사업은 어딜 가고 부동산 개발 사업만 한창이다.” 요즘 KT의 본업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통신사업과 관련 있는 계열사들의 실적은 엉망이고, KT의 ‘호실적’은 경쟁사에 비하면 초라하다. 반면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는 계열사의 실적은 KT그룹 계열사 중 압도적인 1위다. 그 유명한 황黃의 법칙이 본업이 아닌 부동산을 관통하고 있다는 얘기다.

▲ 황창규 KT 회장은 “본업을 챙기겠다”고 강조했지만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는 KT에스테이트의 실적만 눈에 띈다.[사진=뉴시스]

KT그룹의 10대 계열사(매출 기준) 중 가장 ‘잘나가는’ 곳은 어디일까. 2015년 대비 2016년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 KT에스테이트다. 매출 증가율은 20%를 넘는다. 2위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KT디에스(12.8%), KT는 5위(0.5%)다. 물론 매출 규모가 클수록 매출 증가율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매출을 늘리기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10개 중 5개 계열사가 역성장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KT에스테이트의 실적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같은 기간 상반기 매출 증가율을 비교해 봐도 KT에스테이트의 매출 증가율은 57%로 1위다. 2위는 비씨카드(3.4%)다. 1ㆍ2위 간 격차는 무려 16.8배다. 10개사 가운데 3개사는 전체 매출도 줄었다.

당기순이익 증가율도 따져 보자. 단연 KT에스테이트의 당기순이익 증가율(2015년 대비 2016년)이 60.1%로 1위다. 2위는 KT인데, 5.1%에 불과하다. 다른 두 기업도 플러스 증가율을 보였지만 실적 자체는 형편없다. KT엠앤에스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KT텔레캅은 겨우 적자만 면했다. 그 외 6개사의 당기순이익 증가율은 모두 마이너스였다.

이런 수치들을 토대로 살펴보면 KT그룹 핵심 계열사 가운데 가장 ‘잘나가는’ 기업은 바로 KT에스테이트다. 심지어 매출 대비 순수익률까지 13.5%로 10개사 중 단연 1위다. 이 기업, 도대체 어떤 곳일까.

KT에스테이트는 KT가 2010년 설립(지분율 100%)했다. 주요 사업은 부동산 개발ㆍ공급과 임대ㆍ관리다. 통신기술 발달로 KT가 한국전기통신공사 시절 소유하고 있던 전화국 건물과 토지를 새롭게 활용할 방안이 필요했고, KT는 KT에스테이트를 설립해 개발을 맡긴 거였다. KT에스테이트가 보유한 투자부동산이 2016년말 기준 1조1131억원에 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전화국과 빌딩만 514개다.

KT에스테이트는 이런 막대한 부동산을 활용해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지어 분양ㆍ임대(기업형 임대주택 사업)하거나 호텔을 지어 위탁 운영한다. 때로는 건물을 관리해주는 사업도 한다. 임대 오피스텔로는 ‘리마크빌(Remark VILL)’이 대표적이고, 현재 서울 흥인동과 영등포동, 봉천동 등의 리마크빌에서 성업 중이다. 호텔은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과 신라스테이 역삼 호텔 등이 대표적이다.

KT에스테이트는 올해 상반기에만 268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일부에서 “KT가 부동산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KT가 부동산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KT 실적 진짜 괜찮나

물론 본업에 충실해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KT에스테이트는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KT그룹과 이 그룹을 이끌고 있는 황창규 회장이다. 황 회장은 2014년 취임 초부터 “본업에 충실함으로써 통신사업 경쟁력을 회복하겠다”고 강조했지만 “본업보다 부동산 사업을 통해 그룹의 이익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KT의 실적 역시 논란거리다. 황 회장이 경영을 맡은 후 2014년을 제외하면 KT의 실적이 상당 부분 개선됐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실적을 꼼꼼히 따져 보면 오히려 ‘제자리걸음’에 불과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KT의 실적이 나빠지기 시작한 건 2013년. 2012년까지는 평균적인 실적을 유지했다. 당시 KT의 매출ㆍ영업이익ㆍ당기순이익은 각각 18조8632억원, 1조746억원, 7193억원이었다. 2016년에는 각각 17조289억원, 1조596억원, 8093억원이었다. 이렇게 비교하면 당기순이익만 일부 늘었을 뿐, 매출과 영업이익은 평균적인 수준을 회복하는데 그쳤다.

혹자는 “기업의 실적을 되돌려놓은 것만도 쉬운 일은 아니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황 회장이 취임 후 구조조정으로 8611명의 직원을 내보내고, 인건비를 2012년 대비 약 2526억원 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저조한 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2012년 수준으로 실적을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KT의 경쟁력이 되살아났는지도 의문이다. 같은 기간을 놓고 비교할 때 SK텔레콤은 매출(178억원)과 영업이익(1068억원)이 모두 늘었다. 직원 역시 KT와 달리 207명 더 늘었다.

LG유플러스는 매출(5300억원)과 영업이익(6300억원), 당기순이익(4385억원)이 모두 늘었다. 직원은 1270명이 더 늘었다. 참고로 LG유플러스는 2012년 실적이 저조했고, 2013년에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 2013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5426억원과 2775억원. 이를 기준으로 2016년과 비교해 봐도 실적의 질은 KT보다 낫다.

경쟁사 대비 초라한 KT 실적

익명을 원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황 회장이 ‘1등 통신사’를 내걸고 조직개편, 인사개편, 성과에 따른 과감한 상벌, 구조조정 등 온갖 개혁조치들을 거창하고 발 빠르게 진행했던 과정까지 돌이켜보면 KT 경영 실적은 오히려 실망스러울 정도다”고 꼬집었다.

더구나 KT를 제외하면 매출 상위 10개 계열사 가운데 KT엠앤에스(기계장비와 관련 물품 도매), KT스카이라이프(위성방송) 등 KT의 본업(통신사업)과 유관하다고 볼 수 있는 계열사의 실적까지 죄다 하락세다. 이런 상황에서 KT에스테이트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KT가 부동산 사업에만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해 보인다. 황 회장의 ‘KT 본업 찾기’가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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