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 괜찮나

조선업계가 조심스레 ‘어게인 2000년대’를 외치고 있다. 빅3가 동시에 흑자전환에 성공한데다 업황도 밝아서다. 하지만 일감은 아직 적고, 중소형 조선사는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으며, 정부의 구조조정 작업은 더디다. 트리플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조선, 아직 ‘바람 앞 촛불’ 신세다.

▲ 올해 상반기 한국 조선사들이 실적을 회복하면서 낙관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업계는 성급한 판단이라고 꼬집는다.[사진=아이클릭아트]

무너지는 대우조선해양, 중국의 가파른 추격, 일본의 부활 조짐…. 세계시장을 호령하던 한국 조선업은 최근 3년간 사면초가에 몰려있었다. 특히 2015년엔 비극의 정점을 찍었다. 사상 처음으로 빅3(현대중공업ㆍ삼성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가 조 단위 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업 몰락의 중심에는 해양플랜트 사업이 있다. 글로벌 조선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이 침체되면서 발주가 급감했다. 한국 조선업계는 돌파구를 찾았다. 국제유가가 꿈틀대던 시기, 해양플랜트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셰일가스가 등장하면서 유가가 급락했다. 돌파구는 재앙이 됐다.

 

굳이 육상에서 싼 가격에 원유와 가스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 먼바다까지 나가서 생산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면서다. 발주처의 플랜트 인수 취소나 지연 사례가 빈번했다. 출혈경쟁에 따른 제 살 깎아먹기 저가 수주, 설계 엔지니어링 능력 부족 등도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조선업은 대한민국 수출품 목록 최상단에 자리하고 있는 주력 산업 중 하나다.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업종이라는 거다. 울상만 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 조선업계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위기만 넘기면 언제든 우리나라 경제에 효자가 될 업종”이라는 믿음에 정부 차원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도 생겼다. 무너지던 대우조선해양에는 7조1000억원이라는 막대한 혈세를 투입했다.

그 결과, 낙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출발은 증권가다. 일제히 ‘조선업 비중 확대’를 외쳤다. 지난해 말부터 들려온 수주 낭보 때문이다. 최악의 수주절벽에 신음하던 조선업계가 바닥을 치고 올라설 것이라는 시그널이었다. 때마침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지난해 실적에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2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초라해진 한국 조선업계

업황이 회복세를 탄 영향이 컸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조선 발주량이 전년 동기 대비 6.4% 늘었다. 한국 조선업계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국내 조선소의 수주량(6월 28일 기준)은 256만CGT(표준화물선 환산 t수)를 기록했다. 전 세계 발주량 중 34%로 1위다. 2012년 중국에 세계 수주점유율 1위를 내준지 5년 만에 다시 정상을 탈환했다.

업계는 부활의 콧노래의 여러 요인 중 하나로 ‘기술력’을 꼽았다. 클락슨 보고서는 “지난해 전 선종의 발주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올해는 유조선과 가스선을 중심으로 투자가 살아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조선 중에서는 VLCC(초대형유조선)가, 가스선 중에선 LNG운반선에 대한 투자가 늘었다. 이 두 선종은 국내 조선사들이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분야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들의 해운동맹 재편이 일단락되면서 일부 선주들이 발주에 나서고 있다”며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 한국 조선이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인 만큼 수주가 유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향후 전망도 밝다. 업계는 ‘환경규제 강화’를 호재로 보고 있다. 2020년부터 국제해사기구(IMO)는 선박의 배기가스인 황산화물 규제와 선박의 평형수 처리장치 설치 의무화 규정 등을 실시할 예정이다. 통상 2년가량이 걸리는 선박 건조 기간을 고려하면 2018년부터는 신규 선박 발주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 낙관론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프랑스계 해운사 CMA CGM이 발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중국 조선사들이 수주해 가면서다. 2만2000TEU(1TEU= 20피트 컨테이너 1대)급 컨테이너선 발주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가 모두 참여해 수주 경쟁을 벌였지만 중국 기업에 밀렸다.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주요 전략으로 삼던 국내 조선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중국 조선사들이 기술력도 쫓아온 게 아니냐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조선업계는 여러 리스크가 산재해있는 상황이다. 일단 일감이 너무 적다. 국내 조선소 수주잔량은 2015년 11월 3282만CGT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줄었다. 8월 말 기준 한국의 수주잔량은 1610만CGT로 중국(2583만CGT), 일본(1612만CGT)에 이어 3위다. 수주잔량은 현재 도크에서 건조 중인 물량으로 조선업 실적의 선행지표다. 잔량이 적다는 건 선박 건조를 통해 돈을 벌어들일 여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올 상반기 수주량 증가는 약 1년 뒤에야 본격 건조에 들어가는 미래의 일감일 뿐이다.

산적한 리스크들

이마저도 대형 조선사에만 집중됐다. BNK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8대 중소형 조선사들의 올 1분기 수주 실적은 3척에 그쳤다. 수주액 비중도 4.7%에 불과했다. 대형 조선사의 협력업체이기도 한 이들이 무너지면 산업 전체 생태계가 위험하다.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 속도도 늦춰지고 있다. 국내 기업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인 ‘산업경쟁력 관계 장관회의’는 새 정부 들어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안영진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역사적으로 조선업의 점유율 역전 현상은 낮은 선가 전략이 바탕이었고, 한 번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은 국가도 없었다”면서 “한국 조선업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라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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