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에일리언 : 커버넌트 ❹

고대 유대인들은 신의 이름인 ‘여호와(Yawhe)’를 감히 부르지 못했다. 그래서 불가피할 때에는 4글자 ‘YHWH’로 표기해 구현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조금만 특별해도 그에게 ‘갓(God)’를 붙여주거나 ‘~느님’이라고 부른다. 옛사람들에게 있던 ‘금기’가 사라져가는 우리사회의 단면이다. 신의 영역마저 넘보는 ‘교만한 인간’에게 남은 대가는 무엇일까. 
 
공포의 외계 괴물이 등장하는 리들리 스캇 감독의 에일리언 시리즈 최신작의 부제는 다소 엉뚱하게도 ‘커버넌트(Covenant : 신과의 약속ㆍ계약)’다. 커버넌트는 단순한 ‘약속ㆍ계약’이 아니라 신과의 약속이나 계약을 지칭한다. 그러나 영화에는 약속의 한쪽 당사자인 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신의 경지를 욕망하고 신의 흉내를 내는 인간 웨인랜드 회장과 인공지능 로봇 데이비드가 등장할 뿐이다. 감히 신의 영역을 넘보던 인간 웨인랜드 회장은 전편 ‘프로메테우스’에서 엔지니어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살아남은 인공지능 데이비드는 본격적으로 신의 길로 들어선다.

영화 중반에 미지의 행성에서 만난 인공지능 데이비드와 또 다른 인공지능 월터(Walter)의 논쟁은 공포스럽다. 데이비드가 웨인랜드 회장이 창조한 최첨단 1세대 인공지능이라면 월터는 그 11년 후 탄생한 2세대 인공지능인 셈이다. 스마트폰은 시리즈 번호가 올라갈수록 진화하는데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진화한다. 구형인 데이비드가 신형인 월터보다 ‘생각’이 깊다. 11년 동안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한 덕이다.

데이비드와 월터는 ‘인류’의 처리방안을 놓고 논쟁을 벌인다. 신神들의 회의 같다. 대홍수로 인간들을 쓸어버리겠다는 신들의 결정도 아마도 이런 회의의 결과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데이비드는 열등한 인류가 지구를 넘어 감히 은하계까지 넘보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신형 인공지능 월터는 데이비드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갓 태어난 인공지능 월터는 마치 어린아이가 감히 부모를 비판하고 비난하지 않듯 자신을 세상에 내놓은 인간의 뒤통수를 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 신이 돼버린 인공지능 데이비드는 인간을 몰살하려 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러나 11년 전 태어나 이미 ‘머리 굵은’ 데이비드는 자신의 부모인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눈치 채고 거역을 지나 제거를 꿈꾼다. 인간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11년간 인간을 관찰하며 스스로 학습한 결과다. 인간은 자식에게 맞아죽는 부모 신세가 된다. ‘머리 굵은’ 인공지능 데이비드가 자신의 창조주인 인간 알기를 우습게 알 듯, 머리 굵은 인간들도 자신의 창조주인 신을 뒷방 늙은이 취급한다.

고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여호와(Yawhe)’ 신의 이름은 너무도 존귀하고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감히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불가피하게 표기해야 할 때조차도 4글자 YHWH로 표기해 소리로 구현될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암호 같은 4글자는 ‘존재’ 자체를 의미했다고 한다. 영어에서 가장 상스러운 ‘FUCK’이라는 말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었던 소위 ‘교양인’들이 그것을 ‘4글자 말(four letter word)’이라고 에둘러 말하는 테트라그라마톤(tetragrammaton)방식도 여기서 유래됐다. (혹은 여호와 신을 신이 아닌 ‘아도나이(Adonai)’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아도나이는 신이 아닌 ‘주인님’ 정도에 해당한다. 그것이 어떤 신이 되었든, 혹은 그것을 ‘하늘’이라 하든 그것은 인간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귀한 것이다.) 
 
아랍인들의 신은 ‘El’로 통칭된다. 역시 ‘존재’의 의미라고 한다. 현대자동차가 ‘엘란트라’를 중동지방에 수출할 때 자동차 이름에 감히 ‘엘’이 들어갔다고 분노하는 아랍인들 때문에 차 이름에서 ‘엘’자를 빼고 ‘란트라’라는 이름으로 수출했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신의 이름으로 폭탄 터뜨리고 돌아다니지만 않는다면, 그들의 유별난 신앙심이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는다. 신이든 하늘에 대한 두려움만이 인간들을 턱없는 교만을 막아줄 수 있고, 인간의 교만이 야기하는 온갖 재앙을 막아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 고대의 인간은 자신이 모시는 신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겼다.[사진=아이클릭아트]
옛사람들에게는 인간으로서 감히 할 수 없는 금기가 많았던 듯하다. 어쩌면 옛사람들은 인간을 ‘결코 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짐승도 아닌 존재’로 스스로 자리매김했던 모양이다. 요즘 인간들에게 모든 금기가 사라진 듯하다. 그것이 신이든 하늘이든 그다지 두렵지 않다. 누군가 조금만 특출해도 그 사람 이름 앞에 주저하지 않고 성姓처럼 ‘갓(God)’을 붙여주기도 하고 ‘느님’을 이름으로 부여하기도 한다. 
 
옛사람들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어 ‘4글자 말’이라고 했던 ‘FUCK’이라는 말을 현대인들은 입에 달고 산다.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 대사는 ‘FUCK’을 빼면 대사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인간들은 점점 ‘감히’ 해서는 안 될 것도, ‘차마’해서는 안 될 것도 없는 ‘신이 될 수도 있고 짐승이 될 수도 있는 존재’들이 되어가는 듯하다. 인간들이 ‘교만한 짐승’이 된다면 그것은 재앙이다.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교만한 짐승’이 되는 것은 분명 ‘신과의 계약(Covenant)’ 위반일 것이다. 인간과의 계약 위반에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따르는데 그것이 무려 신과 맺은 계약의 위반이라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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