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뭘 믿고 구입해야 하나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 생리대에선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여론이 무섭게 들끓었다. 여기에 기름이라도 붓듯 유럽산 비가열 햄으로 인해 E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가 급증했다는 바다 건너 소식까지 전해졌다. 소비자들은 두려웠다. “이제 뭘 믿고 구입해야 하느냐”는 원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래서 소비자는 똑똑해지기로 했다.

▲ 식품안전사고가 터지면서 원산지과 성분을 따지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 6살 딸아이를 두고 있는 김지은(가명)씨는 주로 집에서 온라인으로 쇼핑을 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깐깐한 소비자가 된 셈이다. 김씨는 쌀ㆍ감자ㆍ콩나물은 물론 과일까지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그가 물건을 구입하는 곳은 한 생활협동조합의 온라인몰. 주문 후 최소 3일 후에나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라 처음에는 좀 불편했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다는 생각에 김씨는 급한 식재료가 아니면 대부분 이곳을 이용한다. 아이 간식도 온라인몰에서 구입한 식재료를 이용해 직접 만들어 먹인다. “어린이집 등 밖에선 어쩔 수 없지만 집에서라도 안전한 걸 먹이고 싶다.”

# 초보주부 최희진(가명)씨는 요즘 쇼핑을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거치는 과정이 있다. 스마트폰을 꺼내 제품 성분을 확인하고, 후기를 하나하나 읽어본 후에야 구입을 한다. 그걸 지켜보는 남편은 때때로 “그거 다 광고”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된다. “이젠 광고글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구분도 할 수 있다.” 어제는 마트에서 채소를 사며 원산지를 확인했다. 이미 제품 포장지에 적혀있지만 앱을 통해 인증번호를 확인하면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다. 최씨는 현명한 주부가 된 것 같아 괜스레 으쓱해졌다.

소비자들이 똑똑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이름 있는 브랜드가 곧 ‘신뢰’였지만, 안전문제가 연거푸 터지면서 그것도 옛말이 됐다. 살충제 달걀, 생리대 발암물질, 간염바이러스 햄 등 안전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소비자 스스로 점검하자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거다. ‘체크슈머(checkconsumer)’도 그렇게 탄생한 신조어다. 확인(check)과 소비자(consumer)가 합쳐진 체크슈머는 제품을 구입하기 이전에 물건의 정보나 후기들을 꼼꼼히 체크해 소비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과거의 소비자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 외엔 추가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예민하게 제품 포장지 속 원재료와 원산지를 면밀하게 따져보는 소비자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날카로운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누군가는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기업의 광고를 곧이곧대로 믿고 가습기 살균제를 샀다가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은 제품을 제조ㆍ판매하는 기업을 불신하고,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성분을 따지고 이력을 추적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화장품을 해석하다’를 줄인 ‘화해’ 앱은 지난해 9월 서비스를 시작한 후 8만명 이상 다운로드했다. 현재 9만여개의 제품과 240만개의 리뷰가 등록돼 있다. ‘화해’에선 파라벤, 페녹시에탄올 등 20가지 주의성분과 알레르기 주의성분이 포함돼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사용자들의 후기도 화장품을 고르는데 도움이 된다.

정부와 기업 믿을 수 없으니…

예를 들어보자.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브랜드인 ‘오휘’를 검색하면 제품리스트가 뜬다. 그중 안티에이징 화장품 ‘에이지 리커버리 스킨 소프너’를 선택하면 성분과 리뷰를 볼 수 있다. 5점 만점에 4.17점을 받고, 47명이 후기를 남긴 해당 제품은 알레르기 주의성분은 없지만 20가지 주의성분이 1개 포함돼 있다. 두통, 현기증, 발진, 색소침착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향료’가 붉은색으로 ‘높은 위험도’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엔 아이를 둔 아빠 셋이 만든 식품주의성분 확인 앱도 등장했다. ‘엄마의 선택(엄선)’ 앱은 제품마다 식품첨가물 ‘ewg’ 등급을 표기하고 있다. ewg는 미국의 환경단체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에서 원료의 유해성을 1~10까지로 구분한 것인데, 엄선에선 무첨가, 무위험, 등급미정,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군으로 나누고 있다.

자녀들 이유식이나 간식을 고민하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앱이다 보니 자녀 나이를 기준으로 상품이 분류돼 있는 것도 특징이다. 자녀나이 ‘12개월’ 카테고리는 분말이유식, 유아 생수, 핑거푸드, 임산부 건강이라는 소항목으로 다시 나뉘고, 7세 카테고리는 즉석밥, 햄ㆍ소시지, 원물간식, 견과류 등으로 나뉘는 식이다.

▲ 소비자 불신, 무분별한 정보를 막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이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사진=뉴시스]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공략하는 발빠른 업체들도 있다. ‘천연성분’ ‘오가닉’ ‘친환경제품’ 등을 내세워 기존 제품에 불신이 쌓인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하지만 우려도 있다. 우리 사회의 불신 현상이 과도하다는 거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는 책임을 전가하는 정부,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는 소비자, 그런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는 기업의 욕심이 합쳐져 만들어진 현상이다. 정부는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그런 과정을 국민들과 공유해야 한다. 정보전달자들 역시 자신들의 정보가 정확하고 객관적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오해, 편견… 체크슈머의 난제들

소비자들이 공유하는 정보의 객관성도 숙제다. 사용 후기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경험이다. 문제는 이걸 얼마나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냐는 거다. 자칫 정보를 공유하려다 불확실한 정보를 확산할 수 있다. 김경자 가톨릭대(소비자학) 교수는 지나치게 불안해하기보다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화학물질들이 100% 안전하지 않은 것처럼 가공을 거치지 않은 내추럴한 음식도 100%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끝없이 불신하면 해답도 없다. 정부 역시 안전 문제를 정치적인 논리로만 풀 게 아니라 보다 합리적인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꼼꼼하고 똑똑한 소비자.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자의보다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에서 출발한 우리 사회의 우울한 민낯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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