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ㆍ공립 유치원 증설이 해법인가

마녀사냥이 시작되면 우리는 중심을 잃는다. 마녀로 몰린 이들의 주장은 쉽게 왜곡된다. 요즘 여론의 공적은 사립유치원이다. 교육은 안중에도 없고, 돈벌이만 한다는 비판에 휩싸여 있다. 일면 맞는 말이고, 반성해야 할 유치원도 숱하다. 하지만 정당한 주장과 역할까지 매도될 필요는 없다. 특히 ‘국ㆍ공립 유치원 증설’에 숨은 허점도 살펴봐야 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혹독한 마녀사냥에 돌을 던졌다.

▲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국ㆍ공립유치원 증설 반대’ 주장이 완전히 비상식적인 것만은 아니다.[사진=뉴시스]

그렇게 잡음을 만들더니 고개를 숙였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17일 국회정론관에서 “불편과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밝혔다. 9월 3일 전국 4291개 사립유치원 가운데 약 90%가 참여하는 집단 휴업(9월 18일ㆍ9월 25〜29일)을 예고한지 2주만이었다. 9월 15일 교육부와의 긴급간담회 이후 휴업을 전격 철회했다가 16일 철회를 번복, 17일 다시 철회를 공식 발표하기까지 맞벌이 학부모들은 가슴을 졸였다. 한유총의 사과는 그런 학부모들을 향한 거였다.

하지만 잡음은 언제 다시 들려올지 모른다. 정부와 한유총 간 갈등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유총은 15일 긴급간담회를 통해 정부로부터 “유아학비 지원금 인상 노력” “회계감사를 위한 사전 교육과 지도점검 병행”이라는 답을 들었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국ㆍ공립유치원 증설에는 여전히 강하게 반발한다.

올해 잡음이 다시 새어나온 것도 같은 이유다. 한유총은 2016년 6월에도 집단 휴업을 예고했다가 휴업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철회했다. 요구사항은 지금과 비슷했다. “사립유치원에는 원아가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때만 국고로 경비를 지원하면서 왜 국ㆍ공립유치원에는 서비스 이용 유무에 관계없이 예산을 배정하느냐”는 게 주장의 요지였다. 국고 지원의 형평성을 맞추라는 거다. 당시에도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부터 “누리과정 비용 인상 노력” “수혜성 경비 균형지원 노력”이라는 답을 들은 후에야 휴업을 철회했다.

결국 정부와 한유총 간에 갈등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학부모와 아이들은 언제든 볼모로 잡힐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정부는 사립유치원 교사 처우개선비를 현재 53만원에서 59만원으로 6만원 올려주는 것도 검토 중이다. 사립유치원 달래기에 나선 건데, 이런 걸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걸 막기 위해선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해법을 마련하기 전에 더 큰 문제가 생겨 버렸다는 거다. ‘사립유치원=필요악’이라는 프레임이 여론을 잠식하면서 다양한 해법을 들여다보기 힘든 상황에 몰려버렸다. “지원은 더 받고, 감시는 안 받겠다”는 논리를 앞세운 한유총의 자승자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그들의 역할이 완전히 무시당했다. 숱한 비리가 있었든, 각종 사고가 있었든, 논리가 허술했든 국가가 책임지지 못했던 유아교육의 영역을 사립유치원이 담당해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름 순기능도 있었다는 거다. 맞벌이를 가능하게 한 건 대표적이다. 사립유치원은 전체 유아교육의 76%(2016년기준)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ㆍ공립유치원 증설이 최선일까

한유총의 상식적인 주장도 묻혀버렸다. 가장 민감한 주제인 국ㆍ공립유치원 증설 문제를 제대로 한번 들여다보자. 정부는 국ㆍ공립유치원 증설(현재 25%→40%)을 통해 유명무실해진 유아교육법상의 유아무상교육을 현실화해 학부모 부담을 줄이고, 유아교육의 서비스 질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한유총만이 “국ㆍ공립유치원 증설은 사립유치원 죽이기”라며 반대한다. 현실이 그렇다. 국ㆍ공립유치원이 많아지면 사립유치원에 자녀를 보낼 학부모들이 줄어들 게 뻔하다.

다만 국ㆍ공립유치원 증설 문제는 단순히 ‘사립유치원 죽이기’가 아니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ㆍ공립유치원 증설은 정부가 직접 유아교육을 책임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전부가 아닌 40%다. 국ㆍ공립유치원 입학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상황이 개선될 수는 있지만, 여전히 60%의 학부모는 수혜를 볼 수 없다. 소득에 따라 수혜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로또 추첨방식이라서다. 유아무상교육 취지가 무색하다.

국ㆍ공립유치원 증설이 시장을 왜곡할 가능성도 있다. 유치원 교사를 보자. 국ㆍ공립유치원 교사는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다. 모든 재정은 정부가 지원한다. 따라서 운영이 안정적이다. 적극적으로 원아를 모집할 필요도 없다. 반면 사립유치원 교사는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재정은 자체 해결해야 하고, 원아모집을 못할 경우 타격을 입는다. 따라서 운영이 불안정하다. 경쟁 출발점이 다르다는 얘기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싼 기름을 공급해 알뜰주유소를 키웠을 때, 형평성 논란이 불거진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문가들도 국ㆍ공립유치원 증설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지금은 마치 국ㆍ공립유치원 증설이 문제해결의 최선인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데, 그게 타당한 해법인지는 의문”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의 경우 지역에 국ㆍ공립대를 지어놓고 정부가 막대한 지원을 해준다. 그러면서 사립대에 경쟁력을 갖추라고 주문한다. 경쟁이 되겠는가. 경쟁조건을 비슷하게 맞춰주는 게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100% 국ㆍ공립화하지 않을 거라면 직접 나서면 안 된다. 더구나 국ㆍ공립유치원의 관료화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서비스 질이 사립유치원보다 나을 거라는 희망도 검증된 바 없다. 되레 서비스의 다양성이 사라져 서비스 질은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교수는 “물론 사립유치원들은 그동안 있었던 영리추구에 따른 각종 병폐를 반성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면서 “인허가 기준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하는 방법, 노조를 허용해 자체적인 감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감사를 통해 공금유용을 막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원금이 얼마 안 된다는 식으로 감사를 피하겠다는 건 한유총의 오만함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정재훈 서울여대(사회복지학) 교수도 “국ㆍ공립유치원 증설이 최선은 아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굳이 국ㆍ공립이 아니더라도 비영리 병설도 있고, 사회복지법인을 통해 사립유치원을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사립유치원 중에서 운영이 어려운 곳들을 골라 법인화할 수도 있다. 국ㆍ공립유치원 증설과 효과는 비슷하다.”

먼저 반성해야 공생 가능

다만 정 교수는 “한유총 측도 무조건 국ㆍ공립유치원 증설 반대만을 외칠 게 아니라 스스로 서비스 질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라면서 “누리과정에 편입된 만큼 감사도 받고 서비스 질도 개선한다면 유아교육서비스 욕구가 높아진 학부모들의 상당수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사립유치원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유총의 “국ㆍ공립유치원 증설 반대”는 영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다.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정부와 학부모, 한유총이 함께 다른 해법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한유총 스스로 반성을 해야 하고, 시대의 변화에도 동참해야 한다. 누리과정 지원금을 축내 집을 사고, 교사들 급여에 손을 대고, 아이들 급식비를 확 줄여 배를 채운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다. 재발 방지대책을 직접 마련하는 것도 이들의 책무다. 지원만 받고 감사는 안 받겠다는 억지 주장도 내려놔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교육환경 개선’ ‘학부모의 부담 경감’을 외치는 그들의 주장에 힘이 붙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 이게 한유총이 바라는 공생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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