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비용 줄이는 가장 빠른 길은…

▲ 안전 정보를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불안해진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끊임없이 터지는 안전 이슈에 케미포비아(Chemical Fobiaㆍ화학물질 공포)가 우리 사회에 확산하고 있다. 안전 이슈→ 공포 → 불안으로 이어지는 ‘불신 비용’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필자는 전문가와 전문기관이 신뢰를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문가 말이 참 말 같지 않은 시대라서 걱정이다.

유치원 다니는 딸 하나를 두고 있는 30대 후반의 맞벌이 주부 A씨.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뒤진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습관이 된 행동이다. 분유와 이유식은 물론 기저귀ㆍ파우더ㆍ장난감ㆍ보온병ㆍ유모차ㆍ공기청정기에 이르기까지 유기농인지, 인체에 유해한 화학성분이 있는지 없는지 꼼꼼하게 살폈던 게 습관이 됐다. 그렇다고 친정의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4남매를 키운 친정엄마와는 육아에 관한 의견이 너무 안 맞아 의도적으로 아이를 맡기지 않았다.

문제는 아무리 정보를 뒤지고 육아 고수들의 의견을 들어봐도 안심할 수 있는 제품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초기엔 유기농 제품을 고르거나 자연유래성분을 쓴다는 해외상품들을 직접 구입해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제품도 안심할 수 없다는 후기들이 나돈다. 정부가 지정한 마크 부착상품도 믿을 수 없고, 미 식품의약국(FDA)이 인증한 제품도 안심이 안 된다.

정보를 뒤지면 뒤질수록, 안전 정보를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불안해진다. 그렇지만 대안이 없는 걸 어쩌겠는가. 불안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가용한 제품 중에서 필요한 걸 골라서 쓸 수밖에 없다.

케미포비아(Chemical Fobiaㆍ화학물질 공포)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 첫째 이유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소비자가 기대하는 ‘안전 표준’이 높아져서다. 더 많은 안전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 똑똑한 소비자들은 안전과 위생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있다.

 

둘째 이유는 생산과 가공ㆍ저장ㆍ이동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위험요소가 등장해서다. 새로운 식품과 재화의 생산기술, 시장의 글로벌화는 과거에 없던 혜택과 위험을 동시에 불러온다.

안전 문제가 이슈화되면 우리 사회는 ‘불신의 비용’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부분의 정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맞게 의사결정을 하며, 안심할 수 있는 제품을 위해 매우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많은 정보와 증거를 찾아 본 소비자들일수록 더 불안해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소비자들은 습관적으로 컴퓨터나 모바일을 켜고 정보를 탐색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불안해지는, 소위 ‘정보중독’ 또는 ‘증거중독’에 빠져서다.

안전과 관련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가장 빠른 길은 전문가와 전문기관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들이 100% 옳지 않더라도 나보다는 해당 분야에 전문적일 것이라는 믿음, 그들이 우리의 안전을 위해 판단하고 결정해 줄 거라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런데 과연 그런 신뢰의 시대가 올까. 가까운 가족과 친구를 믿고 이웃을 믿을 수 있게 되면 그다음에나 가능하려나. 무서운 불신의 시대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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