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속도로 삶을 걷다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다른 사람의 눈이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이효리의 변신은 의미 있다.[사진=뉴시스]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47세의 중년 남자가 겪는 내적 갱생기라고 할 만하다. 자선단체에서 온라인 홍보일을 하는 주인공 브래드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성공한 대학 동창들에게 끝모를 질투심을 느낀다. “인생을 비교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만 비교할 때면 실패한 기분이 든다”는 그는 닥쳐올 아들 대학 학비 걱정을 하며 열등감의 수렁에 빠져든다.

그는 아들 친구가 인생 조언을 부탁하자 ‘꼰대’다운 조언을 한다. “빌 게이츠처럼 돈을 벌어라. 나처럼 경쟁에서 패배자가 되지 말고….” 그 말을 들은 젊은이가 이렇게 반문한다. “왜 경쟁하세요? 이미 충분히 갖고 계시면서.”

사실 그랬다. 브래드 옆엔 언제나 다정하고 낙천적인 아내가 있고, 하버드대 입학을 앞둔 믿음직한 아들이 있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소중한 직업도 있다. 세상을 소유하진 못해도 사랑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자신을 너무 높이거나 낮춰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즐기면 된다. 영화는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이니 자신을 너무 높이거나 낮춰보지 말고 주어진 선물에 감사하라”는 메시지를 가슴 울리게 전해준다.

문득 이효리의 삶이 오버랩된다. TV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 비친 그녀의 삶은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교훈을 현실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듯하다. 화려했던 무대에서 내려와 제주에서 소박하게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로 시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유기견을 키우고, 틈이 나면 음악과 요가를 한다. 38살 이효리는 외적인 성공이나 과시보다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는 순탄치 않은 성장과정을 겪었다. 서울 사당동 이수시장에서 여섯식구가 이발소에 딸린 6.6㎡(약 2평)짜리 단칸방에서 생활했고, 동네 공동화장실을 이용할 정도로 궁핍했다. 식사 때 반찬을 골라먹었다고 아버지가 밥상을 뒤엎었던 일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대학 1학년 때 핑클로 연예계 진출하면서 비로소 가난에서 벗어났다. 고단한 성장과정을 거친 사람은 자칫 탐욕에 빠지기 쉽다. 어릴 적 콤플렉스가 무한 질주 의욕을 부채질하게 마련이니까.

효리는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법을 알아차렸기에 행복한 사람인지 모른다. 효리는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 투숙객 중 한 영업사원이 자기는 사회생활하면서 남의 기분을 나보다 더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고 말하자 효리는 “남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라”고 진지하게 들려준다. 그녀는 끊임없이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맞장구쳐준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다. 효리는 그런 면에서 보면 대단한 언변을 가졌다.

효리의 삶에 대한 주체적인 자세도 돋보인다. 재벌2세나 프로 운동선수와 같은 ‘잘난’ 남편감을 제쳐놓고 음악을 함께 할 수 있는 편안하고 자상한 음악인(이상순)을 선택했다. 사실 말이 그렇지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으면 오히려 사이가 벌어지기 십상이다.

금슬 좋은 부부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에게 맞춰가며 산다. 하지만 주체적이지 않으면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다. 부부 사이에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줘야 하지만 스스로의 존엄성 또한 지켜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있다. 그녀는 참된 자아를 찾으려 부단히 노력하기에 가족을 더 사랑할 수 있는지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다른 사람의 눈이다. 우리는 외모를 가꾸고 재산을 모으고 모든 것을 남과 비교하며 달리니 아무리 많은 성취를 해도 도대체 만족할 줄 모른다. 산의 정상에 올라도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날까 전전긍긍하고, 하산을 걱정하니 행복함을 모른다.

덴마크 사람들이 유엔 세계행복보고서 ‘국민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비결은 바로 ‘휘게’라고 한다. 휘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느낌,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 긴장을 풀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을 말한다. 느리고 단순한 삶, 단출하고 소박한 활동,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이다. 효리는 휘게와 같은 작은 행복을 꿈꾼다. 다시 화려한 무대에 복귀를 해도 지금의 ‘멈춤’은 긴 인생에서 소중한 재충전의 기회가 될 게 틀림없다.

올해 추석(10월 4일)에는 가족이 모여 효리처럼 살아가기를 의논해보면 어떨까. 물론 TV에 방영되면서 인위적으로 연출된 모습이 적지 않겠지만 한 유명가수의 변신은 분명 교훈적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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