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보복 노골화, 전략적 변화 꾀할 때

전략적 모호성. 박근혜 정부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걸 외교 전략으로 포장했다. 이를테면 G2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겠다는 심산이었는데, 중국의 분노만 키우는 결과만 초래했다. 한국 경제는 중국이 재채기만 해도 감기에 걸리는 체질. 전략을 바꿔야할 때인데, 안타깝게도 새 정부는 같은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보복이 확대되고 있다.[사진=뉴시스]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 체제에 편입하려면 합당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독자적으로 MD를 구축할 것이다.” 2013년 10월 16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사드 이슈가 불거지자 이렇게 반박했다. 하지만 9일 뒤, 다른 뉘앙스의 말이 김장수 전 청와대 안보실장의 입을 통해 나왔다. “아직 검토가 되고 있지 않지만 한번 봐야겠다.”

2014년 6월 사드 배치 이슈가 또 나왔다.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을 겸하던 김관진 전 장관은 “(사드를) 주한미군이 전력화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에 멍석을 깔아주는 발언처럼 들렸다. 그런데 한달 뒤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은 “사드와 관련해 미국이 요청한 적도 없고 우리가 이를 검토한 적도 없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며 발을 뺐다.

이상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녹을 먹던 인사의 말인데, 태도가 다르다. 물론 혼선을 빚은 건 아니다. 일종의 외교 전략으로 보면 된다. 한민구 전 장관은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현재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략적 모호성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거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쪽으로 편중된 외교 정책에 따르는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 여기서 한쪽은 미국이고, 리스크는 중국의 반발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관계 만큼이나 중국의 수출시장이 중요했다. 그래서 애매한 태도를 견지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고,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수사修辭를 던진 것이다.

 

사드가 입방아에 오를 때마다 박근혜 정부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사드 배치는 고려하지도 않고 논의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런 문구를 덧붙였다. “그럼에도 사드가 있으면 도움은 될 것이고 주한미군이 자체 예산으로 배치하는 것은 딱히 반대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의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중국 정부가 사드 배치의 대가로 ‘경제 보복’의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 그 시작이었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던 한국 문화 콘텐트나 한국 연예인이 출연하는 광고가 끊기기 시작했다. 국내 관광과 소비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상한 정부의 태도

보복은 갈수록 노골화됐다. 2016년 7월 사드 배치를 두고 한ㆍ미간 합의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던 유통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신세계는 이마트 철수 작업을 검토했고 사드 용지를 제공한 롯데마트는 절반이 넘는 영업점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기회의 땅’이던 중국 시장이 돌연 무덤으로 바뀐 셈이었다. 당연히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도마에 올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 부각되면서다.

분위기가 바뀐 건 올해 5월, 우리나라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은밀하게 배치된 사드의 배치 경위를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재조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안보와 국익을 잣대로 사드 문제를 공론화할 것을 선언한 거였다. 국민들은 전前 정권의 외교ㆍ안보 적폐를 청산하는 과감한 개혁을 기대했다. 때마침 중국의 보복도 잠잠해진 터였다. 꽁꽁 얼어붙은 한중 관계에 볕이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대는 한낱 공염불에 그쳤다. 9월 7일 사드 발사대 4기가 추가로 들어오면서 해빙 무드는커녕 허니문 기간도 유지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콘셉트를 유지했다. 청와대는 ‘임시 배치’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알쏭달쏭한 태도를 견지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사드 보복 해결 방안으로 “정치ㆍ외교적인 문제가 조속히 해결돼 원천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한다”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유승경 부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외교는 정부 간 문제고, 경제통상은 민간의 문제이기에 외교는 정부 협의를 통해 해결하고, 경제통상은 민간의 자율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문 대통령의 사드 진단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중국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에 경제 보복을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외교 전략이다. 원칙 없이 눈치만 보는 전략으로는 G2(미국ㆍ중국)에 끌려만 다닐 것이다.”

▲ 사드 배치 보복 조치로 유커의 발걸음도 줄었다.[사진=뉴시스]

실제로 그사이 중국의 보복은 거세졌다. 집중 포화를 맞은 건 자동차 업계다. 현대차그룹은 중국 판매량이 반토막 났다. 중국 현지기업인 베이징기차와 함께 설립한 ‘베이징현대차’는 혼란에 빠졌다.

베이징기차가 비용 절감을 위해 납품업체를 한국이 아닌 중국 로컬 기업으로 교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이를 거절하자 날카로운 부메랑이 날아왔다. 납품대금을 받지 못한 부품업체 베이징잉루이제가 납품을 거부해 베이징현대 공장 4곳의 가동이 중단됐다. 일부 중국 언론은 베이징기차의 ‘합자 파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다음 카드가 없다

재계는 “사드 보복 우려가 점점 세지는데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며 한탄한다. “중국에 강력히 항의하자”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자” “중국 시장 비중을 줄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자” 등 해법도 제각각이다. 통일된 전략과 목소리가 없다는 거다.

방법은 없을까. 해외 투자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은 경제 보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거다. 물론 거짓말이다. 중국의 거짓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중국 정부도 고민하는 요소가 있다는 거다. 우리 정부는 이 요소를 파악하고 조속히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와 중국의 수출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때가 아니다.”

정치와 경제를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연계할 수 있는 게 중국이다. 그 시장에 속한 우리 기업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쉽지만 ‘전략적 모호성’은 답이 아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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