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성 모호성과 한국경제

▲ 정부가 확실한 전선을 만들지 못하면 기업은 ‘불확실성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사진=뉴시스]

“한국은 사드 배치로 발생하는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할 것(2016년 2월).” “롯데가 입장을 바꿀 수 없다면 중국을 떠나야 한다(2017년 2월).” “중국 소비자들은 시장의 힘을 통해 한국을 벌함으로써 한국에 교훈을 줄 주요한 세력이 돼야한다(2017년 3월).”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김치를 먹고 (정신이) 혼미해졌나(2017년 9월)”

중국 언론 환구시보에 실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관련 사설이다. 어째 시간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진다. 환구시보는 민간 신문이지만 중국 공산당이 발행하는 관영매체인 인민일보의 자매지란 점에서 준准관영지로 분류된다. 주로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기 곤란한 국제 이슈를 다룬다. 성향이 어찌 됐든 중국 정부의 중요한 입 중 하나다.

중국이 야유를 높이는 사이 우리 정부는 뭘 했을까. 사드 배치를 협의ㆍ결정하고 실제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따금씩 꺼내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기 일쑤였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수사修辭로 포장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을 타면서 사드 정국을 풀어나가겠다는 거였다.

안보 문제를 두곤 미국을 거스르기 힘들고, 수출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선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없는 우리에겐 괜찮은 전략인 듯했다. 하지만 ‘전략적 모호성’은 더 큰 화만 부르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말싸움은 국제사회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잔뜩 뿔이난 중국은 은밀한 보복을 계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했음에도 똑같다. 실효성 없는 레토릭은 재앙을 부른다. 정부가 확실한 전선을 만들지 못하면 기업은 ‘불확실성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경제가 그 지경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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