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는 이미 가까이에 있다

▲ 행복의 기준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사진=아이클릭아트]

# 장면1 = 미국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가져온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스티브 패덕은 테러조직과 관련이 없다. 무려 58명을 죽이고 527명을 다치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범인이 부유한 백인 공인회계사이고, 정신병을 앓은 적도 없었다니 놀랍다. 모든 정황은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은퇴자가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과정에서 일으킨 폭력적 돌발행동임을 시사한다. 미국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은퇴자의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 장면2 = 요즘 일본 쓰레기장에서 주인 없는 돈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4월 군마현의 한 쓰레기 처리회사는 혼자 살다가 죽은 노인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 더미에서 검은 봉지에 담긴 현금 4억원을 발견했다. 버려진 유품 속에 섞여 나온 돈이 지난해에만 일본에서 약 1900억원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외롭고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죽음 직전까지 돈을 생명 줄처럼 움켜쥐고 있던 노년의 강박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국인은 은퇴 이후에 행복할까.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고 1인 가구 비중이 급증하는 우리에게 미국의 노인범죄나 일본의 ‘쓰레기 더미 속 유산’은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다.

한국은 재벌총수부터 중산층까지 돈을 쌓아놓고도 웬일인지 돈 앞에서 전전긍긍한다. 서민들은 길어진 노년에 필요한 돈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돈이 있든 없든 공통점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다는 거다.

지난 5년간(2012~2016년) 우울증 치료를 받은 환자 300만명 중 절반에 육박하는 125만명이 60대 이상이다. 지난해 여성 우울증 환자 수는 4년 전에 비해 5.7% 늘었는데 비해 남자는 무려 14%가 증가했다. 은퇴자 중 우울증 환자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1인 가구 증가, 황혼이혼ㆍ사별을 비롯한 가족해체와 노후파산 등의 요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 게다.

행복은 금고 안에 없는 것 같다. 많은 서민은 불행해져도 좋으니 제발 돈이 많아봤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돈이 행복을 담보하지 못한다. 돈은 비타민이다. 돈 없이 살 수 없지만 부에 대한 집착은 행복을 해칠 수 있다. 재벌 가문치고 화목한 가정이 없다. 돈 문제로 형제간 골육상쟁을 벌이고 있다. 오랫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투병 중인 어느 재벌회장은 상속문제가 얽혀 세상을 떠날 수조차 없는 운명이다.

인생의 비애는 역설적으로 돈을 충분히 갖고 은퇴했을 때 찾아올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 아니라면 결국 열정 없는 무의미한 삶이 찾아온다. 이제 자산관리는 돈의 관점이 아니라 삶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눈앞의 돈보다 자기 삶의 비전과 목표에 부합하는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참다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인 자유’라고 할 수 있다.

20~30대엔 좋은 직장이 자랑이었다가 30대 후반이 넘어가면 값이 많이 오른 아파트가 보람이 될 수 있다. 40~50대가 되면 사회적 지위나 공부 잘하고 취직 잘한 자녀가 자신의 삶을 빛내주는 간판이 된다. 60대에는 여전히 현직에서 일하면 뿌듯해할만 하고, 더 나이가 들면 심신心身이 온전하고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췄다면 대만족이다. 결국 우리를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는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왔느냐만 남는다. 그러니 매 순간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고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행복하려면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생활에 필요한 기본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둘째, 이런 생활 요건을 즐길 줄 아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같은 행복이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행복지수 1위라는 부탄은 아무리 안빈낙도安貧樂道라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도 되지 않는 최빈국 중 한곳이니 환상일 뿐이다. 행복선진국으로 알려진 덴마크ㆍ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한꺼풀 벗겨보면 성인 절반 가까이가 지독한 외로움을 호소하며 세계에서 가장 우울증 약 소비가 많으니 이 또한 이상향이라고 하기 곤란하다. ‘나는 행복한가’라는 문제의 핵심에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담겨 있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빗장의 열쇠를 갖고 있으면서도 두리번거리며 열쇠를 찾는 우매함을 범하고 있다. 어쩌면 행복은 파랑새처럼 우리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