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사고의 숨은 원인

타워크레인 사고가 연일 터지고 있다. 혹자는 ‘이해하기 힘든’ 사고일지 모른다. 그 커다란 타워크레인이 왜 자꾸 쓰러지느냐는 이유에서다. 기계 노후화, 신통치 않은 안전관리 등 사고 원인은 숱하다. 그중 가장 큰 문제로 노동계는 ‘위험의 외주화’를 꼽는다. 실제로 타워크레인을 설치ㆍ해체하는 작업자 대부분은 힘없는 하청업체 소속이다. 건설판에서 ‘도비쟁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도비쟁이의 민낯을 취재했습니다. 

▲ 최근 일어나고 있는 타워크레인 사고는 설비 노후화나 작업자들의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사진=아이클릭아트]

“타워크레인이 도심 속 흉기로 변하고 있다.” 10일 경기도 의정부시 낙양동 민락2택지개발지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20층 높이의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서 현장 노동자 3명이 죽고, 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나오는 말이다.

실제로 초고층 아파트들이 늘어나면서 타워크레인의 쓰임새가 많아진 만큼 사고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올해 들어 타워크레인으로 인한 사망사고만 3건, 사망자 수는 12명에 이른다. 타워크레인이 속절없이 쓰러지는 상황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사고 횟수는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타워크레인 사고가 끊이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타워크레인의 노후화다. 의정부시 현장에 쓰인 타워크레인은 제조된 지 27년이나 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약 6000대의 타워크레인 중 21.3%가 20년이 넘었다.

한편에선 ‘타워크레인은 사용연한 제한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다. 연한이 없는 타워크레인이 무너진다는 건 안전관리가 엉망이라는 걸 방증하기 때문이다. 타워크레인의 정기검사는 국토부의 위탁을 받은 6개 기관이 6개월마다 실시하는데, ‘봐주기식 검사’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국산 중고 타워크레인의 안전관리를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수입업자는 제작사가 만든 증명서를 제출할 의무가 없다. 건설기계 등록을 신청할 때에는 수입일자나 제작일자를 직접 써넣으면 그만이다. 이 과정에서 연식이 조작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타워크레인은 이를 보유한 전문업체가 원청 건설사에 빌려주는 방식으로 현장에 배치된다. 당연히 원청 건설사는 단가 낮추기를 꾀할 가능성이 높고, 단가를 맞춰야 하는 전문업체들은 점점 영세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타워크레인을 설치ㆍ해체하려면 이를 위한 전문인력들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타워크레인 보유업체는 전문인력을 보유한 업체에 재하도급(인력만 사용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파견)을 준다. 안전관리가 따로따로 이뤄지면 사고 위험성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IMF 후 도비쟁이는 어디로 갔나

하지만 노동계에선 “모두 현상에 불과하다”면서 또다른 주장을 내놓는다. 이런 일들이 생겨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위험의 외주화’에 있다는 것이다. 건설판에서 사용되는 은어 ‘도비쟁이’는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도비쟁이는 ‘비계공飛階工(건설현장의 비계飛階와 같이 주로 높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도비쇼쿠(とびしょく)’에서 유래한 단어다. 이들은 건설현장에만 있는 건 아니다. 커다란 이동식 크레인을 사용하는 대형 공장에도 도비쟁이들이 있다. 주로 높은 곳에서 안전띠를 매고 위험한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몸이 날랜 이들이 이 일을 한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주화를 피하지 못한 결과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비용절감이다. 외주화가 비용절감에 효과적이라는 건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기업의 안전관리 책임 회피를 위해서였다. 도비쟁이들은 위험한 일을 하는 만큼 산업재해를 입을 가능성이 그 어떤 노동자들보다 높다. 기업으로선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산재처리 비용은 물론 기업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외주화는 이런 리스크를 줄여준다. 타워크레인 사고가 급증하는 지금, 우리가 ‘도비쟁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상원 한국노총 비정규직연대 의장은 “원청기업이 경비를 줄이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외환위기 이후 도비팀을 외주화했다”면서 “그러다 보니 작업 거부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노동권이 약해졌고 결국 타워크레인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논리적 전개가 아니다. 타워크레인 사고 중 67%는 도비쟁이들이 주로 담당하는 설치ㆍ해체 과정에서 발생했다. 의정부 타워크레인 사고 역시 도비쟁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도비쟁이들이 위험을 이유로 작업을 거부하면서 다른 도비쟁이들이 투입됐는데, 사고가 터졌기 때문이다.

어떤가. 타워크레인 사고를 단순한 설비 노후화, 중국산, 작업 미숙, 안전불감증만으로 얘기할 수 있겠는가. 민주노총 관계자는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해법도 없다”면서 “지금이라도 과거 진행된 외주화 문제를 공론화해서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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