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와 단말기 완전자급제

문재인 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통3사는 정부의 움직임이 달갑지 않다. 가계통신비가 줄면 이통3사의 매출이 감소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정부의 통신비 인하책 중 하나인 ‘단말기 완전자급제’에 찬성표를 던졌다. 왜 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박 사장이 국감장에 선뜻 나온 이유를 취재했다. 

▲ 박정호 SK텔레콤의 국정감사 발언으로 단말기 완전자급제 논의가 활발해졌다.[사진=뉴시스]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지난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 뜻밖의 발언이 나왔다. 발언의 주인공은 2009년 하성민 사장 이후 8년 만에 참석한 SK텔레콤의 박정호 사장.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문재인 정부가 검토 중인 가계통신비 인하 대책의 일환이다. 가계통신비가 줄면 이동통신사의 매출이 감소할 게 뻔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박 사장이 ‘긍정적 검토’를 언급한 것이다. KT와 LG유플러스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 행보였다.

전문가들은 “아무런 계산 없이 꺼낸 발언이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찬성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거다. 먼저 단말기 완전자급제의 의미를 보자. 국내 대부분의 소비자는 이통사 대리점과 판매점에서 ‘단말기 구입’ ‘통신서비스 가입’을 함께 진행한다. 완전자급제는 이 둘을 분리하는 제도다. 단말기는 단말기 제조사에서, 이동통신 서비스는 이통사에서 취급한다는 거다. 이렇게 하면 서비스 요금경쟁(이통사)과 단말기 가격경쟁(제조사)을 더 유도할 수 있다.

분명 이통3사에는 좋을 게 없는 제도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찬성한다”는 박 사장의 말이 낯설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체 왜 일까. 전문가들은 “시장점유율 1위인 SK텔레콤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단말기 보조금에서 찾을 수 있다. 과점 상태인 우리나라 통신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방법은 딱 하나다. 다른 통신사에 가입한 고객을 뺏는 거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카드가 ‘단말기 보조금’이다. 이통3사는 매년 수조원의 돈을 이 단말기 보조금에 쏟는다. 이기정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팀장은 “소비자가 통신사를 옮기는 건 대부분 보조금 때문”이라면서 “과거에도 단말기 보조금 지급 규모가 줄어들면 번호이동자도 따라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완전자급제가 시행되면 이통3사는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시장점유율 1위인 SK텔레콤으로선 지금의 점유율을 유지하는 게 되레 쉬워진다는 얘기다. 이기정 팀장은 “현재의 시장구조를 굳히는 방법으로 단말기 완전자급제만한 이슈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연학 서강대(전문경영기술학)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내비쳤다. “‘최초상기 브랜드’라는 용어가 있다. 소비자들이 경쟁 브랜드 중 머릿속에서 맨 처음 떠올리는 브랜드라는 얘기다. 단말기 보조금마저 사라지면 추후 신규가입자는 시장점유율 1위인 SK텔레콤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SK텔레콤에 유리한 이유는 또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정책안案으로 통신비 인하를 압박해 왔다. 이중 ‘보편적 데이터 요금제(보편요금제)’는 이통3사가 가장 피하고 싶은 제도다. 기존 요금제에서 1만~1만2000원 더 싼 요금제를 출시해야 해서다. 그런데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시행되면 보편요금제 적용이 어려워진다.

정부가 개입해 요금을 책정하는 보편요금제와 달리, 완전자급제는 시장경쟁논리에 따라 가격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 사장의 발언은 뜻밖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계산을 끝낸 전략”이라고 말했다.
임종찬 더스쿠프기자 bellkic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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