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유통산업발전법 왜 개정 안 하나

논란은 계속되는데 해결되는 건 없다. 유통산업발전법 얘기다. 대형마트든 중소상공인이든 만족하는 편이 없는데도 개정안이 보이지 않는다. 개정안 발의가 없는 것도 아니다.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만 94건에 이른다. 하지만 가결률은 고작 7.4%(7건)에 불과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들의 자화상을 취재했다.

▲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결률은 현저히 낮다.[사진=뉴시스]

“금배지 달고 계신 그분들은 마트나 시장에 갈까요? 책상 앞에 앉아서 법을 만드니 이 모양이죠.” 어느 유통업계 종사자의 탄식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날선 비판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한 유통 전문가는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유통산업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유통산업의 발전을 저지하는 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왜일까. 국회의원들이 발의하고 처리한 법안들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정부는 2012년 1월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를 시행하면서 대형마트 규제를 본격화했다. 국회도 이에 발맞춰 관련 법안을 쏟아냈다. 그해 5월 개회한 19대 국회에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총 65건 발의됐고, 20대 국회에선 현재까지 29건이 발의됐다.

19대 국회에서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당시 새누리당 소속이던 손인춘 의원이다. 손 의원은 “전통산업보존구역 외에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무분별한 입점으로 지역 상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전통문화와 자연 보존이 필요한 중소도시를 정해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대규모점포 등의 개설ㆍ변경 등록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를 시작으로 19대 국회가 문을 닫은 2016년 5월 29일까지 관련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됐다. 이용섭(민주당) 의원 등 126인은 당시 오전 0시부터 오전 8시까지였던 영업시간 제한 범위를 오후 9시부터 오전 10시까지로 변경하고, 의무휴업일을 매월 3일 이상 4일 이내로 확대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나성린(자유한국당) 의원은 “대규모점포 및 준대규모점포의 포괄 범위를 확대하고 중규모점포의 경우에도 필요한 경우 전통상업보존구역 내 전통상점가의 경계로부터 500m 이내에서 입점을 제한하거나 영업시간 및 영업일수 등을 제한한다”는 개정안을 내놨다.

 

지금은 총리가 된 이낙연(민주당) 당시 의원도 동료의원들과 법안을 발의했다. 지역 상권에서 활동하는 대규모 및 준대규모점포에 일정한 책임을 부과해 상생방안을 마련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지역유통산업의 발전과 유통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대규모점포 또는 준대규모점포로부터 지역유통산업발전부담금을 부과ㆍ징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항도 새롭게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런 개정안들은 대부분 19대 국회가 문을 닫으며 함께 사라졌다. 19대 국회에서 통과된 유통산업발전법은 65건 중 6건뿐이다. 10%가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대안반영폐기(31건ㆍ47.7%) 됐거나 임기만료폐기(28건ㆍ43.1%) 됐다.

법안 쏟아내면 뭐하나

20대 국회에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관련 개정안이 봇물처럼 쏟아졌지만 대부분 낮잠을 자고 있다. 첫 발의는 조경태(자유한국당) 의원이었다. 조 의원은 “현행 등록제는 우후죽순처럼 개설되는 대규모점포 등의 입지를 제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등록제를 허가제로 변경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지역경제의 상생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전통상업보전구역의 입지제한 대상에 매장면적의 합계가 660㎡ 이상 3000㎡ 미만인 점포를 포함해야 한다는 항목도 새롭게 추가했다. 이 법안은 현재 소관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이언주(국민의당) 의원은 의무휴업일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10월 발의한 법안은 “지역상권과 중소유통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점포와 전통상업보존구역에 개설하려는 준대규모점포에 대해 등록제를 시행하고 한달에 2회 의무휴업일 지정하고 있지만, 실효성에 문제가 있어 허가제로 변경하고 의무휴업일을 4일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 역시 소관위에서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김종훈(새민중정당) 의원은 의무휴업 규제 대상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상생발전을 목적으로 대규모점포에 대한 의무휴업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중소상인들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면서 중소상인들을 더욱더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김 의원이 법안에 포함한 규제 대상은 백화점과 면세점, 농협하나로마트다. 농수산물의 매출액 비중이 55% 이상인 농협하나로마트에도 대형마트에 준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거다. 하지만 농민들에게 뭇매만 맞고 계류 중이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을 보면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꾸고, 규제 범위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19대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법안들이 반복적으로 발의되고 있는 거다. 최근 홍익표(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런 내용들을 정리해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그마저도 논란거리다.

홍 의원은 “대규모점포에 대한 입지와 영업 제한, 합리적인 등록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현행 전통상업보존구역과 일반구역을 ▲상업보호구역(규제강화) ▲상업진흥구역(규제완화) ▲일반구역(등록제도)로 개편해 대규모점포 및 준대규모점포의 입지를 제한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내놨다.

29건 중 통과된 건 고작 1건


하지만 유통업계 관계자는 “출점규제지역을 제한한다는 건 결국 이중규제를 한다는 거 아니냐”며 “산업을 정지시키는 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상생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유통산업발전법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29건의 안건 중 김기선(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만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논란이 되고 있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제가 아닌 대규모점포 개설자에 대한 선정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관리비가 투명하게 징수ㆍ사용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신설한다는 내용이다.

규제 관련 법안은 사실상 발의만 된 채 제대로 된 논의를 펼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유통산업을 발전시키고, 상생제도를 만들어야 할 국회가 논란만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김미란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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