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우대금리 논란

시중은행이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적금 상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기본금리는 낮고 충족하기 까다로운 우대금리만 높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라면 고객이 혹할 만한 이자율을 앞세워 금융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는 셈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우대금리의 불편한 민낯을 취재했다.

▲ 시중은행이 높은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적금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낚시성 상품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직장인 김병선(가명ㆍ38)씨는 최근 눈이 번쩍 뜨이는 적금 상품을 발견했다. 최고 연 2.9%의 이율을 제공하는 KEB하나은행 ‘셀프-기프팅’ 적금이다. 김씨는 높은 이자율만 보고 가입을 서둘렀다. 연 1%대 저금리 시대 2%를 넘는 은행적금 상품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2.9%의 이자율은 김씨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만기가 되면 모은 돈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올 수 있겠다는 기대도 가졌다.

하지만 김씨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했다. 기본금리는 낮고 우대금리를 받기 위한 조건은 까다로워 적금 가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상품의 기본금리는 연 1.1%다.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우대금리가 기본금리보다 높은 1.8%였다. 문제는 우대금리를 모두 챙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우선 1%의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선 4개월 동안 매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뱅킹에 접속해 ‘선물퍼즐’을 완성해야 한다.

한번이라도 놓칠 경우 받을 수 있는 우대금리는 0.6% 이하로 떨어진다. 신규고객에게 0.5%의 우대금리를 제공하지만 김씨는 해당하지 않았다. 다른 조건(우대금리 0.5%)은 거치식 또는 적립식예금에 추가로 가입해야 했다. 친구에게 상품을 소개한 뒤 가입해야 0.3%의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조건도 있었다. 그나마 제일 쉬운 게 자동이체(0.3%)를 신청하는 방법이었다.

국내 시중은행이 높은 금리를 앞세운 적금 상품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지만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기본금리가 낮은 데다 우대금리를 받기 위한 조건이 까다로워서다. KB국민은행이 8월 출시한 ‘KB티몬적금’은 최고 금리 2%를 제공한다. 이 중 우대금리는 0.6%다. 우대금리는 티켓몬스터의 금리 우대 쿠폰(0.3%)과 국민은행 첫 거래 고객 우대금리(0.3%)가 있다. KB국민은행을 처음 이용한 고객이 아니면 우대금리 중 절반은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고금리 적금 출시하는 시중은행

신한은행의 ‘주거래 우대적금(최고 금리 2.65%)’의 우대금리 1.6%를 받는 방법도 만만치 않다. 0.5%의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선 신한은행을 급여통장으로 지정, 연금거래 실적(50만원 이상), 입금실적(50만원 이상)과 신한카드 결제실적 또는 공과금 자동이체 실적 중 한가지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비대면 채널인 ‘신한S뱅크’로 가입 후 로그인(0.1%), 적립식 상품 자동이체 지정(0.2%), 신한카드 결제계좌지정(0.3%), 신한금융투자 증권거래실적 또는 신한생명 보험료 납부계좌 지정(0.2%)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신한카드ㆍ신한금융투자 증권계좌ㆍ신한생명 보험 등이 없으면 0.5%의 우대금리를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우리은행의 ‘위비라이프 G마켓ㆍ옥션 팡팡적금’은 시중은행 최고인 연 7%(우대금리 5.5%) 금리를 내걸었지만 이 역시 조건이 까다롭다. 5%의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선 G마켓이나 옥션에서 월 20만원 이상을 결제한 실적이 있어야 한다. 1회 충족 시 지급되는 우대금리는 1%포인트로 5개월 연속 결제해야 5%의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우대 조건에 비해 받을 수 있는 이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상품의 월 적립액 한도가 25만원으로 제한돼 있고 계약기간도 6개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5만원씩 6개월을 납입하고 7%의 최고 금리를 적용해도 받을 수 있는 이자는 2만5909원에 불과하다. 2만5909원의 이자를 받기 위해 5개월간 최소 100만원어치의 물건을 사야 한다는 얘기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인터넷전문은행의 돌풍에서 답을 찾는다. 올해 4월 출범한 케이뱅크와 7월 출범한 카카오뱅크는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복잡한 우대조건 없이 2%대의 적금 금리를 제공하는 게 유효했다. 그러자 은행 간 고객 유치경쟁에 불이 붙었고 높은 금리를 앞세운 적금 상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대면 채널 활성화에 따른 인터넷 쇼핑몰과의 협업 마케팅 강화도 우대금리 상품 출시에 한몫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인기가 시중은행의 우대상품으로 이어지는 ‘메기 효과’를 일으켰다는 거다. 시중은행의 우대금리 적금을 두고 전형적인 ‘낚시성 상품’이라고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중은행들은 마케팅 전략의 일환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신시장 포화, 비대면 거래 증가 등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라며 “우대금리를 통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고 기존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그는 “조건이 까다로운 경우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충족하기 쉬운 몇가지 조건만 달성해도 시중금리보다 높은 이자율을 적용 받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대금리 하늘의 별 따기

하지만 이 해명으로 얼마 되지 않는 이율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낮은 금리를 앞세워 고객을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최고 이율만 보고 가입하려다 실망한 고객이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금리는 올라가는 데 우대금리 상품을 제외하면 여전히 2%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면서 “금융환경이 변하고 있다고 우는 소리를 하지만 여전히 대출금리는 올리고 예금금리는 낮추는 예대마진 위주의 영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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